수정된 Double Helix 모델
조직문화 지향점을 수립하고, 구성원의 생각을 수집한 데이터와 변화 수준을 측정할 진단 도구 확보에 대한 고민을 마쳤다면, 그 다음으로 해야할 일은 조직문화 변화관리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조직이 나아갈 이상향인 '지향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아니면 (완전한 지향점 도달은 이상일 뿐일 수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그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어떤 방법을 시도하고, 구성원이 어떤 긍정경험을 하도록 노력할 것인지 고민하고 이를 구체화 해야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사실 조직문화 변화관리 전략은 각 회사마다 업의 특성이나 주류를 이루는 직무의 성격, 재정적 여건, 고유의 이슈 등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수립할 수 있다. 꼭 이 책에서 제시하는 내용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그 동안 조직문화 직무 분야에 몸 담고 일해 왔던 한 실무자의 시각과 의견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2011년 5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간한 <SERI형 조직문화 변화관리 모델> 연구보고서는 '지속적 체질개선(Continuous Improvement)'이라는 개념과 '전략적 문화혁신(Strategic Innovation)'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며, 이들이 상호작용하며 조직문화가 변화해 갈 수 있도록 하는 'Double Helix 모델'이라는 변화관리 모델을 소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정기적인 조직문화 진단을 실시하고, 진단 결과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개선과제를 발굴하여 이를 실행하는 프로세스를 매년 반복하면서 업무 현장에서 체감하는 일상적 조직문화를 개선한다는 의미의 '지속적 체질개선'과 CEO가 내세우는 비전을 공표하고, 변화관리를 전담할 변화관리팀의 구축 후, 인사제도, 조직구조, 교육, 직원참여, 커뮤니케이션, 리더 행동 등 전방위적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하는 '전략적 문화혁신'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얽히고 설켜 상호작용하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의미에서 Double Helix 모델이라 이름 붙인 듯 하다.
이 변화관리 모델은 오랜 기간동안 조직문화 또는 변화관리라는 분야에서 활용되어 오고 있으며, 국내외 컨설팅사와 미팅을 하다보면, 현재까지도 이 개념에 뿌리를 두고 컨설팅을 진행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만큼 잘 구조화되고 공신력을 얻고 있는 변화관리 모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직문화 담당자 입장에서 이 내용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진다. 기업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조직이 위의 내용을 모두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의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보려 해도, 실행할 수 있는 Action Plan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일부 조직문화에 진심인 기업의 경우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처럼 별도의 변화관리팀을 구축하고 이 팀에 전권을 부여하며 강력한 변화를 추진하기도 한다. 좀 오래 전의 사례이긴 하지만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인 'P&G'의 사례가 대표적인 경우다.
토론토 대학교 로저 마틴 교수가 <디자인씽킹 바이블(2021)>에서 소개한 P&G 사례를 아래에 간략히 요약해 봤다.
P&G는 2000년 전후로 월마트, 테스코 등의 기존 주요 고객사가 자체생산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이런 시기에 P&G의 CEO로 임명된 앨런 래플리는 이런 경영이슈를 타개해 나가고자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개념을 조직문화 깊숙히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전략방향으로 잡고, '디자인 전략 및 혁신 담당 부사장'이라는 기존에 없던 직책과 조직을 신설하고, 클라우디아 코치카라는 인물을 그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외부 디자인위원회'를 설립하여,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사인 IDEO의 팀 브라운 및 학계 주요인사를 위원으로 두며, 각 사업팀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조언을 구하고 검토와 비판을 하도록 했다.
클라우디아 코치카는 이 전략의 중요한 성공 요인을 '직원들의 경험'으로 믿고, 수 만명의 직원들이 디자인씽킹을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IDEO 공동창업자인 데이비드 캘리 및 로트만 경영대학원의 로저 마틴 등에게 도움을 청했고, 긴 연구 끝에 '디자인 웍스(Design Works)'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후, 이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훈련된 진행자 150명을 양성했고, 디자인 웍스와 관련된 일들이 거의 모든 부서에서 매일 이루어지는 일련의 행위체계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P&G는 확실한 경영실적의 J커브를 그리며, '디자인씽킹'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2~3년 전 정도에 디자인씽킹에 빠져 관련 서적을 여러권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실제 디자인씽킹과 관련된 어떤 책을 보더라도 P&G의 성공사례는 빠짐없이 등장했다. 조직문화의 대 혁신을 위해 조직구조를 개편하고, 경영진을 선임하고, 직원들의 경험 속에 스며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외부 전문가를 섭외하여 힘을 빌렸으며, 그들이 외부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전사에 Change Agent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고, 구성원의 일하는 방식에 디자인씽킹 프로세스가 녹아들 수 있게 하였다.
SERI형 조직문화 변화관리 모델에서 이야기하는 '전략적 문화 혁신'은 이 정도 규모 또는 거의 이와 유사한 수준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의 혁신을 추진하기에는 현실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다.
기업 내에서 이와 같은 일사분란한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CEO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인사, 전략, 재무(예산), 교육, 직원참여 등 전방위적 작업들이 동시에 Working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부서나 팀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범위와 권한을 넘어선다.
조직문화 담당자라 하면, HRM 또는 HRD 부서, People팀, People & Culture팀 등의 조직 안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Toss와 같이 조직문화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기업이 아니고서는 그런 팀 안에 조직문화를 담당하는 인력이 2~3명 정도 배치되어 있는 편이다. 그 2~3명이 조직문화에 매진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내가 만난 많은 조직문화 담당자들은 HRM 또 ESG, 교육 등의 메인 업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부수 업무로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기도 했다.
여러분이 조직문화 담당자로서 이러한 현실에 처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조직문화 변화관리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 역시 위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조직문화 담당자 중 한 사람이었기에, 현실적인 한계 안에서 어떤 전략을 수립하고 구성원의 긍정경험을 확대해 가야할지 끝없는 고민을 이어왔다. 여러해 이어진 고민에 더하여 나의 멘토이자 리더인 분과 지속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2008년 HBR 아티클에서 소개한 Service Profit Chain(서비스 수익 체인), SERI형 조직문화 변화관리 모델 등을 접목하여, 새로운 변화관리 모델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다소 쑥스럽지만 나름대로 내린 이 결론을 두고 '수정된 Double Helix 모델'이라 부르기로 했다.
서비스 수익 체인은 직원경험이 고객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기업이 목표로 하는 매출성장과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구조화하여 보여주는 모델이다. 개인적으로 '직원경험'이라는 개념에 관심이 높았을 때 이 모델과 관련한 내용을 접하고, 매우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추상적으로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개념을 잘 구조화하여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위 그림의 '서비스 수익 체인'은 원문을 참조하여 필자가 일부 재구성했다는 점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직원경험은 회사 내의 다양한 요인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에드거 샤인의 조직문화 3단계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인공물(Artifacts)', 즉 회사 내의 제도와 프로세스, 일하는 방식, 전산 환경과 같은 무형적인 요인과 사무 공간, 책상과 의자, PC, 집기 등과 같은 유형적인 요인들로부터 받는 영향을 말한다. 결국 회사에 출근하여 경험하게 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직원경험 중, '긍정적인 경험'은 직원들의 몰입감을 높이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더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생산성은 높아지고, 일과 관련한 학습 열의도 높아져 전문성이 깊어진다. 일이 잘 되는 경험, 성장에 대한 경험을 하며, 일에 대한 몰입과 주도성은 더욱 높아진다.
직원들의 높은 몰입도와 주도성, 생산성과 전문성은 결국 고객을 향한 차별화된 상품 생산과 서비스 제공으로 이어지며,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에 만족감을 느낀 고객은 가족과 지인에게 소개도 하고, 온라인 상에 리뷰의 글과 영상 등을 남기면서 레퍼럴 효과를 일으킨다.
그 결과 회사의 매출은 성장하고, 수익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회사가 높은 성과를 창출한 결과는 구성원으로 하여금 성취감과 자부심을 고취시켜 구성원의 긍정경험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며, 위의 프로세스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선순환을 일으킨다.
서비스 수익 체인의 '직원경험', '고객경험', '효과' 영역 중, 조직문화 담당자가 집중해야 하는 영역은 바로 '직원경험' 영역이다. 어떤 요인들에 개입(Intervention)하여 구성원의 긍정경험을 높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긍정경험이 직원의 몰입, 주도성, 생산성, 전문성의 제고로 이어지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직원경험' 영역을 펼쳐놓고 각 항목들을 뜯어보면 작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구성원의 니즈가 비교적 강한 항목과 회사의 니즈가 비교적 강한 항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직원경험 영역 안의 '직원경험 영향요인', '긍정적인 경험'은 회사보다는 구성원이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다. 회사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긍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이상적인 내용일 수 있지만 구성원의 니즈는 여기에 있을 것 같다.
반대로 회사는 구성원이 조직과 직무에 몰입하길 바라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자기 업무를 수행해줄 것을 바란다. 그리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지길 바라고, 일과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전문성을 높일 것 또한 희망한다.
이처럼 직원경험 영역 안의 항목들을 '구성원의 니즈가 강한 분야'와 '회사의 니즈가 강한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구성원이 움직일 수 있도록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하면서도,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부정적인 경험을 주는 요인이 있지는 않은지, 있다면 어떻게 개선을 할지 등을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 것이다.
'구성원의 니즈가 강한 분야'에 대해서는 진단을 통해 구성원의 생각을 확인하고, 부정적인 경험을 주는 요인이 있다면 이를 개선할 과제를 발굴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후, 개선 과제를 실행하면서 구성원의 피드백이 어떠한지 계속해서 소통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추진한 프로세스의 결과가 구성원의 인식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진단을 통해 확인하고, 그 이후의 프로세스를 반복하며 체계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큰 흐름의 전환이 아니라, 구성원의 생각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조금씩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조직문화의 모습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을 '지속적인 체질 개선'이라 부르고 싶다. (SERI형 조직문화 변화관리 모델의 '지속적 체질 개선' 개념과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략적 정렬은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구성원이 공감하고, 그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나아가는 원동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회사가 생각하는 방향과 구성원의 실행 방향이 일치하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에서 '전략정 정렬'이라 명명해 보았다.
전략적 정렬은 '인식 - 수용 - 실행'의 단계로 나뉜다. 실질적으로는 인식, 수용, 실행이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띠게 된다.
'인식' 단계는 구성원들에게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알게 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포스터나 대형 현수막 등을 제작하여 알릴 수도 있고, 내부 전산망을 통해 홍보할 수도 있다. 좀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캠페인이나 이벤트를 운영할 수도 있다.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홍보를 할 수도 있고, 간접적으로 스며들 수 있게 넛지(Nudge)방식의 수단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인식 단계와 관련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노출시키고 알리는 행위 자체는 수단일 뿐,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출과 홍보의 과정에서 구성원이 그들의 생활과 업무 수행에 불편함을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이 샘솟아 난다면, 이는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용' 단계는 구성원들이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공감하고, 그 방향을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 즉 내적동기를 움직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구성원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본인, 동료, 회사'에 대한 정서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들의 행동양식이 많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문화 담당자는 구성원들이 회사 안에서의 '나', 함께 일하는 동료, 본인이 속한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구성원의 수용성과 관련하여, '상호연결성'이라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세계적인 분쟁해결 전문가인 도나 힉스는 그의 책 <일터의 품격(Leading with Dignity, 2019)>에서 "존중받고, 가치를 인정받고, 자신보다 위대한 무언가와 연결돼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활짝 날개를 편다."고 말했다. 이 내용을 구성원의 수용성 측면과 연결시켜보면, "조직 내 구성원들은 자신보다 더 큰 규모의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자신을 존중하는 동료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회사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들의 마음을 활짝 연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실행' 단계는 인식과 수용의 단계를 거쳐 실제 변화와 도전, 그리고 성장에 대한 욕구가 충만해졌을 때, 실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반기 또는 분기 단위의 가벼운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교육과정이 될 수도 있고, 챌린지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동참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어렵게 불러일으켰는데, 정작 참여해볼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인식과 수용 단계에서 경주한 노력들이 빛을 바랠 수 있다. 때문에 구성원들이 변화에 대한 동기를 느꼈을 때,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Play Ground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