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변화
조직 안에서 리더는 조직문화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리더일수록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만, 구성원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밀접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는 부서장 내지는 팀장(D레벨장을 의미하며, 편의상 '팀장'이라 칭하고자 한다)이다.
특히 아직 근속기간이 짧은 주니어급 구성원들일수록, '회사'내에서의 경험이 많지 않아, 그들이 경험한 팀 문화를 회사 전체의 문화로 인식할 수 있고, 그들이 경험한 팀장을 그 회사 전체 리더의 표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시니어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매일같이 함께 생활하는 같은 팀의 리더로부터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며, 리더와 함께하는 직원경험이 누적되어 조직문화의 뿌리가 되는 암묵적 가정이 형성된다.
두 가지의 사례를 구성원 개인의 입장에서 상상하며 비교해보자. (여러분이라면 어떨지)
(1) 경영진이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속한 팀의 리더가 긍정경험을 제공하는 경우
(2) 경영진이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속한 팀의 리더가 긍정경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
물론 경영진과 팀 리더가 모두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최상의 상황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를 상상해보자는 것이다(상대적 비교). 사람마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사무실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고, 일을 하는 과정에 힘이 실리고,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지고, 내가 일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그런 경험들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1번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상황이 아닐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2번 사례의 경우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관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출근할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업무 수행에 대한 의욕이 많이 꺾일 것 같다. 나는 일과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환경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어 주도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팀 풍토를 원한다. 리더부터 막내 구성원까지 서로 존중하는 언어와 태도로 서로를 대하며, 따뜻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는 팀 분위기를 원한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1번 사례가 2번 사례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라 생각한다.
실제 똑같은 회사 안에서 팀만 서로 다르고,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일한 신분의 구성원들 대상으로 조직문화 진단 또는 인터뷰를 실시해 본 경우, 리더의 성향 또는 리더의 리더십 역량에 따라 팀별로 상당한 결과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동일 직무, 동일 신분을 전제로 설명한 이유는 (리더의 영향과는 별개로) 직무와 신분의 특성이 구성원의 직원경험에 강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 그룹을 굳이 경영진과 팀장으로 구분하여 예시로 든 이유가 이 둘의 경중을 따져보자는 의미는 아니다. 팀장, 즉 구성원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 있는 리더가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이해 해주었으면 한다.
구성원의 긍정경험에 가장 밀접한 거리에서 영향을 미치는 팀장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겠다는 생각에 크고 작은 시도들을 해보았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에 완성형은 있을 수 없고,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에도 지속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수 많은 리더들을 한 번에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작은 작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미한 시작이라도 그것이 점차 널리 퍼져나갈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팀장급 리더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변화의 물결에 참여할 의지를 샘솟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했다.
변화의 시작은 자발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스스로 변화에 대한 의지가 생기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불러 일으켜져야 한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윤대현 교수와 이머징리더십인터벤션즈의 장은지 대표가 공저한 <리더를 위한 멘탈 수업(2021)>에서는 리더의 변화가 올바른 '자기인식'과 '내적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하며, 능동적인 성장 의지의 발현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 큰 성인, 게다가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 오랜 기간 동안 성공 가도를 달려 리더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분들이 자기인식이 결여되고, 수동적인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 결국 '리더의 자발성'이 변화의 열쇠인 것인데, 수 년간 (내가 속한 회사의) 리더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실시해 본 결과, 전체 리더의 약 3분의 1정도만이 변화에 대해 능동적인 자세와 수용성 높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3분의 2정도의 리더는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거나, 현업이 너무 바빠 변화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는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 소수의 리더는 변화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으며, '변화'라는 키워드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리더의 변화 이슈를 리더에 대한 불신으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변화에 대해 수동적인 리더를 변화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솔루션은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분들의 마음에서 변화에 대한 동기가 스스로 피어나도록 해야 한다. 리더의 변화를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교육과 코칭인데, 이 역시 참여하는 리더의 자발성이 필수적인 요소다.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리더는 교육과 코칭에 참여해도 스스로 마음의 벽을 세우고 있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무언가 장기적,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수동적인 리더들의 마음에 자발성의 불씨를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 통해 수동적인 리더의 일부가 변화의 바람에 동참하게 하고, 조금씩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리더의 비중을 늘려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리더 관찰 카메라'였다.
먼저 변화에 대한 자발성이 높고, 어려운 미션을 장기간 함께 할 리더를 구해야 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 '리더 관찰 카메라'라는 미션을 함께할 리더를 구한다면 이 프로젝트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당시에 많은 리더들을 대상으로 1:1 인터뷰를 실시하고 있던 시기였고, 그 중 평소 능동적이고 신뢰가 가는 리더 몇 분에게 인터뷰 과정 중, 이 프로젝트에 대한 상세한 취지와 함께 참여 제안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나의 제안은 수 개월간 리더 관찰 카메라를 설치하고 운영하면서, 리더에게 전문 코치를 붙여 변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실제 의도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지켜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촬영한 영상을 적절한 길이로 편집하여, 회사 전체 구성원에게 공유하고자 했다.
평소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시는 리더 분도 손사레를 치며 고개를 저었던 어려운 프로젝트 제안이었다. 이를 제안하고 있는 나 역시도 정중히 거절하는 그 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하지만 또 다른 리더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화답을 들을 수 있었다. 두 손을 모아 내가 설명하는 프로젝트의 취지와 내용을 묵묵히 듣고 있던 그 분은 5초 정도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함께 해보자고 했다. 당시 그 분의 "네, 할게요! 한번 해보시죠!"라는 힘찬 대답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꼭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였고, 이 프로젝트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할 파트너가 되어 준 리더 분께 정말 감사했다.
다음으로 해야할 일은, 역시나 장기간 함께할 외부의 전문 코치를 섭외하는 일이었다.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함에 있어 코치의 역량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좋은 코치를 찾아야 했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공감하고 함께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분을 찾아야 했다. 여러 코치진을 물색해본 끝에, <원온원(2022)>의 저자인 백종화 코치님과 함께 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링크드인 메시지를 통해 백코치님께 정중히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프로젝트의 외부 전문 코치로 모시고 싶다는 제안을 드렸다. 다행히 백코치님은 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호기심을 표현하며, 꼭 함께 해보고 싶다는 피드백을 주셨다.
리더와 외부 전문 코치를 섭외했고, 그 다음은 담당 사내 PD에게 프로젝트의 기간과 취지, 어떤 내용들을 촬영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해야 했다. 담당 PD와 상의 후, 일정한 요일을 정하여 리더와 구성원간 보고가 주로 이루어지는 리더의 책상, 주간업무 회의나 아이디어 회의 등이 이루어지는 회의실 등 카메라를 설치해놓을 위치를 정했다. 그리고 대상 리더와 함께 일하는 구성원 분들께도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 동참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렸다. 흥미롭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카메라 촬영을 통해 본인 얼굴이 전사에 방송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시고, 의미있는 프로젝트이니만큼 부담되지만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프로젝트명은 '금쪽같은 우리 파트장'이었다(우리 회사는 D레벨장을 '파트장'이라 부른다). 프로젝트의 배를 띄우고 나니, 문득 뒤늦게 몰려오는 걱정이 하나 있었다. 오은영 박사님이 진행하시는 '금쪽같은 내새끼'라는 프로그램의 경우, 주인공인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역시 주인공인 리더에게 무슨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야 하는데, '혹시 별 문제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 주인공인 리더는 만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뛰어난 업무 역량을 보유하고 있고, 성품 역시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근심이 몰려왔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리더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리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과 개선했으면 하는 부분, 그 외 여러 문항들을 제시하며 설문 응답을 받아보았는데, 예상 외의 답변들이 보였다. 특히 대화와 소통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응답들이 눈에 띠었다. 리더 분께는 이와 같은 설문결과를 알리지 않고, 첫 번째 외부 전문 코치와의 코칭 세션을 시작했다. 물론 코치님께는 설문결과를 사전에 제공했다.
코칭세션은 오프라인과 온라인(화상)을 혼합한 방법으로 운영했고, 2가지의 측면으로 진행했다. 첫 번째는 리더 본인에게 몰입하며, 자기인식과 문제를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전문 코치가 관찰 카메라를 보며 발견한 특이점들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스스로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리더 본인도 카메라에 담긴 자신의 영상을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문제되는 지점을 인식할 수 있었고, 전문 코치의 도움을 받아 이슈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받아 볼 수 있었다. 리더는 제안받은 방법들을 꼼꼼히 메모하여 현업에서 실천해보았고, 그 실천 결과에 따라 구성원의 피드백과 부서 내 분위기가 변화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몇 주간 과제를 실천해본 결과 잘 되었던 것은 무엇인지, 잘 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다음 코칭 세션 때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그 동안 촬영한 새로운 영상들을 보며 그 다음 수행해볼 과제들을 논의했다.
프로젝트가 반 정도 지났을 무렵, 부서원 전체를 모아 반나절 워크샵을 진행했다. MBTI를 기반으로 하여 구성원들의 심리유형분석을 하고, 각 구성원의 심리유형에 기반하여 서로 어떤 부분을 조심하며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부서 전체를 대표하는 심리유형은 무엇인지, 그리고 리더의 심리유형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리더가 각 구성원과 소통시 유의해야 할 점, 반대로 구성원이 리더와 소통할 때 유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치님의 제안으로 이 워크샵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반나절 정도의 워크샵을 진행하자고 부서에 처음 알렸을 때, 구성원들 사이에서 '안그래도 해야할 일이 엄청 많은데, 이런 워크샵을 다 같이 3~4시간 정도씩 시간을 빼서 꼭 해야 하나'라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워크샵이 끝나고 나서는 '3~4시간은 너무 짧다. 하루는 온전히 시간을 빼서 해야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 부서의 구성원들도 굉장히 훌륭한 분들이라 생각되는 점이 있는데, 이 워크샵이 끝난 후 구성원들 스스로 메신저 쪽지를 돌려가며 이 워크샵의 내용을 복기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소통방식에 대한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갔다는 것이다.
워크샵 이후에도 앞서 진행했던 코칭 세션과 과제 수행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구성원들이 느낀 변화에 대해 인터뷰를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부분이 유의미하게 변화했음을 느꼈는지, 아직 남아있는 개선 과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부분의 구성원이 변화하고자 하는 리더의 진심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전에 거의 없었던 1:1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했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주니어급 직원들에게 특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는데, 약 6개월 간의 여정을 밟으면서 이 프로젝트의 시작 전과 종료 시점을 비교해보았을 때 리더 뿐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 등에서도 실질적인 변화가 많이 이루어졌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6개월이라는 기간이 길다고 보면 길 수도 있지만, 많은 것이 변화하기에는 짧은 기간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에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며 실천해야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남은 과제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과정들을 모두 정리하는 차원에서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진행자인 나와 외부 전문 코치, 그리고 주인공인 금쪽이 리더까지해서 방송 촬영을 했는데, 그 동안 촬영했던 관찰 카메라와 코칭 세션 녹화 화면들을 보면서, 그간의 변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느낀 점을 서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기간이 길었기에, 담을 내용이 방대해서 총 3부작으로 제작하여 회사 전체에 방영했으며,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에 많은 구성원들이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고, '코칭'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으며, 방송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본인도 해보고 싶다는 리더들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주 작긴 하지만, 변화의 불씨가 켜진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는 주인공인 리더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본인의 업무시간 중 일상의 모습이 모두 드러나는 것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본인의 리더십에 상당한 챌린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프로젝트였기에, 용기내어 참여해준 리더 분과 도움의 손길을 내어 주신 백코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변화의 불씨를 발견했다면 그 다음은 이를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조금씩 변화에 대한 의지와 동기가 생기기 시작한 분들도 있지만, 아직도 변화에 대해 관심 없는 분들의 비중이 더 큰 상황에서 전체적으로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무언가 변화를 시도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 분들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했다. 즉, 전체적으로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고,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분들이 실제 변화 액션을 취할 수 있도록 개별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논의한 끝에 '리더십 특강과 연계한 코칭 프로그램'을 추진해보기로 했다. 특강만 실시하는 경우, 잠시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이내 현업으로 돌아가며 특강을 통해 배운 내용과 감흥이 금세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편 코칭 프로그램을 바로 실시하는 경우, 평소 변화에 대한 동기가 별로 없는 리더나 '코칭'이라는 개념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리더의 경우 코칭 프로그램에 바로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실제 코칭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나를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나' , '나의 리더십을 의심하는가'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다. 코칭이라는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반응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그게 아니라, 이거에요'라는 방식으로 설명을 한다고 해서 그 분들의 마음을 쉽게 변화시킬 수도 없고, 설득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의 특강을 통해 부담없이 리더십 역량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심이 생긴 분들이 변화의 의지를 피력했을 때, 그에 대한 지원을 즉시 해주는 방식을 생각한 것이다.
특강의 내용은 일반론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리더들이 가장 간지러워하고, 어려움을 느끼는 주제에 대해 다루고자 했다. 두리뭉실한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업에서 바로 적용하여 써먹어 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이길 원했다. 그래야 리더로 하여금 현업에서 무언가 실행해볼 수 있는 변화의 시작을 떠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를 첫 주제로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답은 실제 리더로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중요했다. 가장 먼저 나와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리더 분께 의견을 물었다. 나의 리더는 리더로 일하면서 '평가'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특히 리더로서 누군가에게 높은 평가를 줄 수 있는 반면, 낮은 평가를 주어야 하는 구성원도 생길 수 밖에 없는데, 낮은 평가를 주어야 하는 구성원과의 면담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 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다른 리더 몇 분들로부터도 이 부분이 리더로서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특강의 주제는 '효과적인 평가 피드백'으로 정했다.
전체 리더 대상으로 실시한 특강을 마치고, 설문과 인터뷰를 해보았다. 특강에 대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업에서 적용해볼 수 있을지, 현업 적용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는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여전히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리더십 코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치는 분들도 더러 있었지만, 약 20% 정도의 리더가 코칭 프로그램 참여의 의지를 내비쳤다. 특강 내용에 공감하는 분들의 수는 훨씬 많았다. 단순히 '공감'하는 것을 넘어, 후속으로 이어지는 코칭 프로그램에 대해 '참여'의 의지를 보인 리더가 20% 정도의 비중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놀라웠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여의사를 밝힐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5%만 넘어도 성공이라 생각했었다. 참여의사를 밝힌 리더 분들 중에는 과거 '리더 관찰 카메라'의 주인공인 분도 계셨고, 그 분과 친분이 있는 리더 분들도 있었다. 리더 관찰 카메라를 경험한 당사자와 그로부터 비교적 더 많은 영향을 받은 분들이 당시의 긍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변화의 파도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정 기간을 정하여 코칭 프로그램에 대한 참여의사를 밝힌 분들 중 해당 기간에 참여가 가능하신 분들을 모집하여, 2~3명씩 그룹 코칭을 시작했다. 1:1 코칭이 가장 좋겠지만, 그룹 코칭이 줄 수 있는 효과도 분명히 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리더들이 함께 코칭을 받으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더 있었구나'라는 안도감을 얻으며,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했던 다른 리더의 사례를 들으며 통찰을 얻어가기도 한다. 게다가 이런 긍정경험을 하는 리더의 수가 같은 시간에 2~3배 더 생겨나는 것이다. 비용 절감 효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대로 된 (5~6회 이상, 수 개월간 이루어지는) 코칭 프로그램을 즉시 런칭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비교적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코칭 프로그램에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만점에 가까웠다). 긍정 의견을 많이 주셨는데, 그 중에서도 '코칭을 시작하기 전에는 코칭 시간이 길다고 느꼈지만, 실제 참여해보니 너무 짧게 느껴졌고, 계속해서 코칭을 받고 싶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런 긍정경험을 한 리더들은 아직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은 다른 리더들에게 레퍼럴 효과를 일으킨다. 리더들이 모이는 회의나 식사자리에서 본인이 경험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는지 공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칭에 대한 긍정의견이 확산이 시작되고, 변화의 불씨가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5~6회씩 진행하는 코칭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면, 부담스러워서 참여의사를 밝히지 못한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아직 이런 경험을 대대적으로 해보지 못한 조직이라면,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참여자들이 부담되지 않고, 의사결정권자 역시 어렵지 않게 런칭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가볍게 시작하며 긍정경험을 확산시키고, 이러한 경험들을 스노우볼을 굴리듯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