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빌딩 프로그램
조직문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바로 '소통'이다. 조직문화 진단에서도, 개선 과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경영진이 강조하는 메시지에서도, '소통'이라는 키워드는 항상 등장한다.
회사 내에서 말하는 소통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회사와 구성원 간 소통
리더와 구성원 간 소통
리더 그룹 간 소통
구성원 개인 간 소통
팀과 팀 간 소통
팀 내 소통
등등등...
'소통을 강화하자!'라고 했을 때, 위의 리스트 중 어떤 소통을 강화할 것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룰 수 없다면, 먼저 어느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 역시 앞에 언급한 '리더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어디서부터 변화의 불씨를 피울 것인지 정해야 한다. 물론 실제 조직문화 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할 수 있다(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담당자 본인이 어디에 집중하여 시간과 리소스를 사용할 것인지 정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제 내가 속한 회사에서는 D레벨의 '부서' 단위였지만, 다른 회사 기준으로는 리더 1명과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팀' 단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팀은 한 명의 리더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소단위 조직이다. 같은 팀의 구성원들은 그들만의 작은 세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한 해를 보낸다. 그들은 보통 같은 공간에서 일하거나, 회사에 출근하여 퇴근하는 시점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일상생활의 희로애락을 나누기도 하며, 뜨겁게 논쟁하기도 하고, 저녁에 기울이는 술 한잔에 추억을 담기도 한다. 가장 격렬하면서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다른 종류의 소통 역시 중요성을 따지면 뒤지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팀 단위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가장 많은 소통이 일어나고, 그 소통 속에서 긍정경험과 부정경험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처음 나의 리더로부터 팀 단위 소통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걱정스러운 부분(모자란 나의 역량...)도 있었지만, 내심 기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약 한 달간 밤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면서 만들어 갔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기분은 피곤함을 잊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다.
개발 중인 팀 단위 소통 프로그램에 심리유형 검사 도구 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MBTI를 활용해 보기로 했다. MBTI를 활용해 진단을 하고,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주)한국MBTI연구소' 또는 '(주)어세스타' 중 한 군데에서 일정기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여 자격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주)어세스타에서 개설한 자격과정을 이수하고 MBTI 진단 및 강의 자격을 취득했다.
오래전에 '무한도전'과 같은 인기 TV프로그램들에서 다루기도 했고, SNS 등을 통해 MBTI가 상당히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게 되며 대중적인 심리유형 검사 도구로 자리 잡았다. 다만, MBTI는 유료검사 도구인데, 이와 같은 대중화 과정에서 MBTI를 모방한 가짜 무료검사들이 양산되고, 오히려 본래의 MBTI보다 모방 도구들이 훨씬 유명해지고 급기야 그 모방 도구가 오리지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지점이다.
MBTI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전에는 MBTI 검사가 흥미 위주의 소재에 불과하다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도구를 통해 나와 상대방의 심리유형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효과적인 소통을 이끌어내는 도구로 활용하기에 적절하겠다'는 것(대중성)이었다.
물론 사람의 심리유형을 칼로 무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으나, MBTI는 대극지표인 [E-I], [S-N], [T-F], [J-P]를 통해 수검자가 상대적으로 어떤 것을 편하게 느끼는지, 어떤 것을 상대적으로 불편하게 느끼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심리검사 도구들 역시 많은 장점들이 있고, 검사를 받고 진단 리포트를 받아보았을 때 공감 가고 좋은 내용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경우가 많은데, MBTI는 이 8가지 알파벳으로 조합된 나의 심리유형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되는 장점(각인성)이 있다.
이와 같이 MBTI의 대중성, 각인성 등과 같은 특별한 장점 때문에, 팀빌딩 프로그램에 활용했을 때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평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떤 구성원의 행동과 말들에 대해 '아, 그래서 그 상황에서 그런 반응을 보였구나' 하며 무릎을 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서도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할 때, 어떤 방법으로 대화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생각해 볼 수 있고, 팀 안에서 어떤 구성원을 눈 여겨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특정 구성원이 팀 유형 또는 리더 유형으로 인해 유독 힘들어할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것은 구성원 상호 간에 협업하고 대화할 때 어떤 부분을 유념하며 소통해야 할지 개인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문화 담당자 또는 교육 담당자라면, MBTI 자격을 취득해 놓을 것을 추천드린다. 사내 팀 빌딩에 활용할 수도 있지만, 가족 간 또는 친구와 지인 간 소통 방향에 대해서도 평소와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고, 더 깊이 있게 공부해서 나중에 MBTI 전문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빌딩 프로그램은 보통 1일 과정으로 진행한다. 반나절 또는 2일 이상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1일, 즉 7~8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이 일반적이다. 1일짜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나서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여 생활을 하다 보면, 그날 알게 되었던 정보들, 느꼈던 감정들이 금세 잊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끔씩 꺼내어 볼 수 있게, 또는 휴대폰에 저장해 두거나 책상 앞에 붙여놓고 볼 수 있게 결과물을 정리하여 공유해 주는 것이 좋다.
팀빌딩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사용하기 좋은 Tool 중에 많이 알려진 Padlet이라는 Tool이 있다. 팀빌딩뿐 아니라 다양한 교육이나 워크숍 활동에서 사용하는 Tool인데, 팀빌딩 과정 중 개인별 발표 장면에서 활용할 수도 있고, 결과물을 손쉽게 정리하여 참여자들에게 공유해 줄 수도 있어 팀빌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분들께 꼭 사용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결과물이 남는 워크숍은 구성원들에게도 물론 좋겠지만, 특히 리더 입장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팀원 전체를 파악해야 하고, 가장 다이나믹하게 팀원들과 소통해야 하는 리더 입장에서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된 이런 결과물은 두고두고 꺼내볼 참고자료가 된다.
특히 구성원들에게 양식만 나누어주고 작성하라고 해서 받은 결과물이 아니라, 하루 종일 서로 웃고 소통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볼 때면 당시 즐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게 되는 효과도 있다. 우리가 사진첩을 뒤지다 예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 속에 담긴 추억들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느낌을 받듯이 말이다.
팀빌딩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전후에 꼭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팀빌딩을 이끄는 퍼실리테이터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함이고, 사후에 확인하는 것은 계속해서 팀빌딩에 참여할 참여자들에게 보다 나은 긍정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함이다.
[사전에 확인할 것]
팀 내에 갈등관계가 있는지
갈등관계가 있는 대상자가 누구인지, 이유는 무엇인지
성별, 연령, 직무 등의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팀 특성상 협업이 많이 이루어지는 조직인지, 아니면 개인화된 업무가 주로 이루어지는 조직인지
팀 내 빅마우스가 누구인지
[사후에 확인할 것]
팀빌딩의 효과가 있는지
특히 어떤 부분에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별다른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팀빌딩 프로그램(다른 교육이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을 기획하고 운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 '수단이 목적을 앞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에서 MBTI라는 심리유형 검사 도구와 Padlet이라는 Tool을 소개해 드렸지만, 이들은 결국 팀빌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활용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팀빌딩 프로그램의 목적은 'Team Building'이다. 즉, 팀이 전보다 더 원활히 소통하고 일을 즐겁게 더 잘할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가끔씩 활용하고자 하는 수단에 매몰되어, 어느새 목적이 후순위로 밀려나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는 항상 이런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목적보다 수단이 앞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본래의 목적을 고려해야 할 최우선 순위로 두고 적절한 수단을 재검토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적을 앞서는 수단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