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중요한 시간대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였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아빠랑 제대로 놀아보기 위해 대기하던 귀염둥이 아들을 집에서 만나게 된다. 아이와 놀기도 하고, 같이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하다보면 어느새 9시가 훌쩍 지난다. 아이의 취침시간은 대략 9시 30분 정도로 하고 있다. 아이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10시 가까이 되어 겨우 잠이 든 아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아이가 잠든걸 확인하고 나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온다.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고민이 많아졌던 것 같다. 회사 생활을 10년 정도 해왔고, 대략 50세 이후부터는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나이인 것을 감안하면, 나는 회사생활을 반 정도 해온 것이라 생각했다. 회사 내에서는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넘어가는 시기다. 시니어로 넘어가는 구성원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그리고 10년 후 은퇴 준비를 미리 당겨서 한다는 의미에서, 매일 밤 무엇이라도 공부를 해오고 있었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다양해서, 이것 저것 많이 건드려 보았다. 하나만 깊게 파야 할 것 같기도 한데, 관심이 가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그게 맘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주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는 독서, 글쓰기와 같이 문과스러운 부분도 있고, 요새 한창 핫한 생성형AI, 코딩, 노코드 등과 같이 이과스러운 분야도 있고, 문과도 이과도 아닌 것 같은 디지털 마케팅 관련 분야도 있다(다시 생각해 봐도 많다).
밤 10시 이후부터 이런 것들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데, 와이프가 집에 있는 날이면, 와이프와 대화도 나누고 간식들을 주워 먹고 해서, 11시가 넘어야 시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와이프는 항공사 승무원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다.)
하고 싶은 공부들을 하다보면, 2~3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보통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잠을 청하곤 했다. 최근에는 Bubble.io라는 노코드 플랫폼으로 웹앱을 만드는데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2시가 넘은 줄도 모르고 하다가, 너무 늦은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잠을 청했다. 하지만 역시나 피로감이 가득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고, 저녁에 퇴근했을 때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아이와 놀고 함께 샤워한 뒤에 아이를 재우기 위해 침대에 같이 누웠는데, 너무 피곤했는지 그대로 함께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평소보다 너무 일찍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 3시 반 경에 눈이 떠졌다.
가끔씩 아이와 신나게 놀고 일찍 잠들면 이렇게 새벽에 눈이 떠질 때가 있었다.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상당히 말똥말똥한 상태로 잠이 깼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고 아침에 설정해놓은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잠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정신이 맑은 것 같은 느낌이었고, 다시 잠을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제 공부를 못하고 잔 것도 있고, 그냥 일찍 일어난 김에 공부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시원하게 물 한컵을 들이키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을 열고 오랜만에 브런치 사이트에 들어가보았는데, 12회 브런치북 공모전을 홍보하는 배너가 눈에 들어왔다. 공모전 작품 제출기한은 10월 27일까지였고, 이 배너를 확인한 시기가 이 기한이 되기까지 약 1달 가량 남아 있던 9월 말이었다.
한 번 해볼까
예전부터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권을 출판해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있어서 몇 년 전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글을 열심히 쓰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 외에도 관심있는 분야가 많다보니, 어느새 글쓰기에 손을 놓고 다른 분야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었다. 브런치북 공모전 공지글을 한참 읽어 내려가다가 내 '작가의 서랍'으로 돌아와 먼지와 함께 쌓여 있던(?) 글들을 꺼내어 읽어 보았다. 조금 더 살을 붙히고, 목차를 잡으면 브런치북 하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이왕 새벽 일찍 눈이 떠진 김에 이 시간에 글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잡고 앉아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던 생각들이 많아서였는지, 새벽이라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 힘을 준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글도 잘 써지고, 좋은 내용도 많이 담기는 것 같았다.
의도치 않게 일찍 잠이 깬 그날 새벽, 그렇게 새로운 글들을 신나게 쓰다보니 금세 아침을 알리는 해가 뜨고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한 상태라 많이 피곤하진 않을지 걱정했는데, 무언가에 깊이 몰입한 정신이 회사로까지 이어져서인지, 피곤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머리가 맑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퇴근 무렵에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이와 다시 신나는 저녁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침대에 함께 누웠는데... 다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다시 새벽 4시였다.
하... 또 잠들고 말았네... 일어난 김에 오늘도 그냥 지금 글을 쓰자...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는 어쩌다 새벽작문인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