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힘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 맞이한 밤은 눈꺼풀을 계속 아래로 잡아당긴다. 특히 맛있는 저녁식사와 함께 따뜻한 온수 샤워를 곁들이면, 나른해진 몸뚱이는 한시바삐 꿈나라로 날아가고자 한다.
피로감 넘치는 몸을 침대로 향하지 못하게 하고, 우격다짐으로 책상 앞에 앉혀 놓는다. 아직 눈에 졸음이 가득하고, 정신은 혼탁하다.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바로 시작하기 어렵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열어 손이 가는 영상 몇개를 보게 된다. 가끔은 초개인화된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만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어느새 잠이 깼다는 신호를 받게 되면, 어렵게 유튜브 페이지를 닫고 본래 하고자 했던 공부나 작업들을 하나씩 열어 시작한다.
밤이 깊어 갈수록 졸음이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조금씩 몰입의 상태로 접어든다. 깊어가는 어둠과 함께 2~3시간 골똘히 집중하고 나면, 금세 다음날 출근을 걱정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생각에 얼른 잠들 채비를 마치고 침대에 몸을 눕힌다.
하지만 한껏 청량해진 정신은 자야할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직 꿈나라에 갈 시간이 아니라며 나를 잡아 놓는다. 그냥 자기 아쉽지 않냐며, 열심히 하루를 보냈는데 유튜브 좀 봐도 되지 않냐며 손짓을 한다. 침대에 누운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휴대폰을 잡고 유튜브를 연다. 그렇게 유튜브 영상이나 숏츠를 보다 보면, 30분~1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계속 영상만 보다가는 내일이 힘들어질 것 같아, 억지로 휴대폰을 닫고 잠을 청한다. 그대로 잠이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종종 있다.
공부를 하든 다른 작업을 하든, 밤에 무언가를 하는 생활 패턴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또는 자연스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그냥 자고 싶어하는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깨우고, 그렇게 깨어난 몸을 다시 재우는 것 같은, 잠이 깨서 안자려고 하는 몸을 계속 설득해 재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든 어울린다.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도 어울리지만, 그 시간에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행동도 어울리고, 그 시간에 무엇을 하든 즐겁다. 그리고 마치 오늘 하루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나에 대해 작은 보답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그래서 조금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즐길 거리를 향유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휴식'을 위해 쓰는 자투리 시간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밤에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 수면과의 관계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등의 시간의 양이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정작 몰입하고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고, 매일같이 수면에 대한 불안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새벽은 다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세수와 양치를 하고 책상에 앉으면, 앉는 즉시 몰입할 수 있는 차분한 환경이 제공된다. 세상에 마치 나 혼자 존재하는 듯한 기분좋은 고요함이 곁에 있다. 이미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일어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내 몸의 휴식'을 위해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없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유튜브를 켜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고개를 내밀지 않는다. 누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유튜브를 보고 싶을까? 그 시간에 그런 행동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나의 내면에 더 깊게, 더 깊게,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훌륭한 시간이 된다.
공부를 하거나 독서를 할 수도 있다. 새벽 독서를 즐기시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새벽시간에 그저 공부나 독서만을 했을 때, 금세 하품이 나오고 졸음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히 새벽 시간에 눈이 떠진 그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수개월간 덮어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해볼까. 그렇게 노트북을 열고 '작가의 서랍' 안에 먼지 가득히 쌓여 있던 쓰다 만 글들을 들춰내어 보고, 이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면 중간중간 생각의 흐름에 높은 벽이 생겨 진행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나에게 영감을 줄만한 책들을 꺼내어 읽어본다. 그렇게 읽는 책들은 나에게 졸음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책들을 읽다 보면, 나의 생각 속에 높다랗게 세워진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다시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 내려간다. 꺼내 본 책에 좋은 문구가 있으면 주석을 달아 인용하기도 하고, 나의 생각을 더해 더 풍부한 글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글을 쓰고, 책을 꺼내어 읽고, 다시 글을 쓰고, 다시 책을 열고, 다시 글을 쓰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둑했던 창가에 조금씩 진한 주황 빛이 스며든다. 시계를 쳐다보면, 아직 출근 준비를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자칫 준비 시간을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출근준비 시작시간을 울리는 알람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 아닌, 준비 시작 시간을 알리는 알람을.
다시 몰입하여 글쓰기를 계속 하다보면, 언제 그 시간이 금세 다 흘러버린건지 출근 준비 시간을 알리는 래디얼 사운드의 알람이 울린다. 만약 이 알람이 기상을 알리는 알람이었다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잠이 덜깬 눈을 하고 화장실로 향했을테지만, 이미 기상 후 세면한지 3시간 이상이 지난 나는 아주 청명한 상태로 간단한 아침 식사와 함께 환복을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조금 전 읽다가 덮었던 책 뒷부분을 조금 더 읽다가 출근길에 나선다.
아침 공기가 맑다. 주차장을 바라보며 걷지 않는다. 하늘을 보며 걷는다. 파란 하늘이 마치 출근 길에 나서는 나를 한참이라도 기다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머리는 맑고, 마음은 여유롭다. 발걸음이 가볍다.
[새벽작문인간 생활의 장점]
1. 새벽에는 유튜브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든다. 한 가지에 집중이 가능하다.
2. 점점 몰입하며 잠이 깨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3. 특히 '글쓰기' 좋은 정신 상태가 형성된다.
4.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몰입 시간을 가질 수 있다.
5. 출근 준비 시간이 여유롭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