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꿈이 하나 있다.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책을 만들어 보는 것.
그리고 그 책을 아들과 함께 간 서점에서 발견하고 읽어보는 것.
글쓰기에 그리 큰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만들 정도로 장문의 글을 써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막연히 가지고 있는 뜬구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다 2~3년 전,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알게 되었고, '이곳에 평소 글을 하나씩 남기다 보면 나중에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수년간 조직문화와 직원교육 관련한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글들을 주로 썼다. 평소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들, 책을 보며 다시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 잠들기 전 뭉게뭉게 피어오른 잡생각 중 기록해놓고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30여 개의 글을 썼을 때, 당시 회사 일이 상당히 바빠졌고, 일거리를 집에 싸들고 와 처리해야 하는 상황까지 되어 글쓰기를 잠시 미뤄두게 되었다. 두세 달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진이 빠져 집에 오면 노트북 앞에 앉기가 싫어졌고, 잠시 휴식기간을 가지자는 혼자만의 변명으로 시간을 보냈다.
휴식기간은 한 달 정도 보내려 생각했으나, 어느새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브런치에서 보내는 '글쓰기는 근육과 같아서...' 계속해서 글을 쓰라는 독촉 메시지를 잔뜩 받으며...
그러던 어느 날, 리더 그룹 특강을 진행하기 위해 모신 한 연사분으로부터 본인이 쓰신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일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자서전 형식의 책이었는데, 그 책에서는 글쓰기의 중요성, 글들을 모아 책으로 하나씩 편찬해 냈을 때의 기쁨 등의 내용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책의 내용에 감화되어, 다시 한번 글쓰기를 이어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즈음 마침 (우연의 일치로...)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스토리(예전에는 그냥 '브런치'였는데, 이름도 '브런치스토리'로 바뀌어 있었다.)에 로그인하고, 과거에 썼던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고작 2년 전에 쓴 글인데, 낯 부끄러운 글 솜씨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앞뒤 맥락 없이 장황하게 펼쳐진 여러 글들이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먼지가 자욱이 쌓여 있는 '작가의 서랍'도 열어보았다. 그때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목에만 새겨놓은 것도 있었고, 한참 써 내려가다 멈춘 글들도 있었다.
요즘 브런치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오는지 궁금해서 홈 화면으로 가서 이런저런 글들을 조금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홈 화면을 보다가 '제12회 작가지원 프로젝트', 다시 말해 브런치북 공모전을 하고 있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2년 전에 이미 써진 아무 글들이나 짜깁기해서 제출해 보았던 그 공모전...(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제출했었다.)
제출 마감 기한을 보니, 공지를 발견한 날로부터 한 달 정도 남아있었다.
'한 달이라...'
과거 써 놓았던 글들과 작가의 서랍을 다시 뒤져보며 어떤 글들을 엮어 책을 만들어 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산만하게 흩어진 내용들로 가득한 글들이라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노션(Notion)을 열어 메인 키워드가 될 제목과 목차 구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책의 제목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조직문화와 관련한 철학이 명확했기 때문에...
책의 제목은 '긍정경험'으로 정했다. '직원경험'이라는 키워드는 이미 조직문화 생태계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단어여서 이것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고, 직원경험 중에서도 그들의 '긍정경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다.
목차를 잡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목차 초안을 잡는 것만으로 이틀을 소비했고, 초안을 잡은 후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목차는 계속해서 수정해야 했다. (사실 글을 다 쓰는 시점까지도 목차를 수정해야 할 이슈가 계속해서 생겨났다.)
(초안) 목차를 잡은 후, 각 목차에 알맞은 글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은 기존에 써놓았던 글을 활용할 수 있었고, 어떤 부분은 새롭게 작성해야 했다. 그렇게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집을 새로운 벽돌로 메우는 기분으로 브런치북 작업을 해나갔다.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 하루 3시간을 한 달 가까이 투여하니, 겨우 목표했던 브런치북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다. 쓰다 보니 더 추가해야 할 목차가 생각나기도 하고, 설명이 부족해서 보완하고 싶은 부분도 계속해서 눈에 띄었다. 브런치북이 아니라 종이책을 쓰시는 분들은 이런 고충이 훨씬 더 크셨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마감기한이 거의 다 되었고, 고민은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사족을 달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브런치북 작업을 마치기로 하고, 그동안 작업한 작품을 브런치북 공모전에 제출했다.
우연히 생긴 새벽 글쓰기 습관과 우연히 초빙한 연사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이 2년간 멈춰있던 나의 글쓰기 시계를 다시 움직여준 것이다.
공모전 결과 발표가 어제 있었다. 아쉽게도 대상 수상작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성과는 있었다. (예전에는 특별상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대상 10편만 선정하고 끝인가 보다...)
비록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릴 순 없었지만, 하나의 주제로 작은 책 한 권을 만들어 보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내 안에 흩어져있던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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