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나를 버려보는 사람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를 품으며,

by Maybe


세상에는 참 많은 ‘나’가 존재하고 속해 있다.
딸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며느리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 이웃으로서의 나.

사회 속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는 나,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혼자 마주하는 내 안의 깊은 나.

그렇다면 이 많은 ‘나’들 중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일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고,
어쩌면 모두 다일지도 모른다.

그 질문 앞에서, 문득 장자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吾喪我.


내가 나를 잃는다.

한자를 하나씩 풀어보면 이렇다.

吾(오) : 나

喪(상) : 잃다

我(아) : 나

곧, 내가 나를 잃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나가 아니다.
장자가 말하는 ‘나’는
분별하는 자아,
판단하고 계산하며
정체성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고정된 자아다.

그 자아를 버리라는 말.
도무지 무슨 뜻일까.

나를 버리라고?
한동안 그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채찍질하고 괴롭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잊고 있던 이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어떤 나여야 한다’는 생각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마땅히 해내야 한다는 압박,
아니면 안 된다는 자기 검열.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어쩌면 나인 듯 아닌 듯한

애매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좋아 보이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게 옳은 줄로만 알았다.
희생과 양보를 당연한 의무처럼 여겼으며,

타인의 기대를 따르며 살아가다 보니
진짜 내가 무엇 때문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는지
감정이 왜 그렇게 너덜너덜해졌는지도
알 수 없는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나는 쓸데없는 주파수를 너무 많이 열어두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라디오처럼
정확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모든 주파수가 얽히고설켜 있었던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내가 나를 버리면,

비로소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 타자의 리듬,
진리의 미세한 진동.

어쩌면 이 말은 나에게 성경 말씀처럼,
가슴 깊이 울리는 하나의 완성형

인생문장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그 시작은,
미국에서의 삶이었다.

익숙한 언어, 문화, 관계가 사라진 공간에서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작아진 나’를 만났다.

그런데 그 작아진 나를 통해
이전보다 더 살아 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살아야 하니까 배우는 것들이
비로소 진짜 배움이 되어왔다.

이 낯선 삶을 통해
진짜 내가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자기다움’, ‘셀프 어필’이
생존의 조건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그 자기다움조차
타인의 기준 속에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다르지 않았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괜찮은 부분만 보이기 위해
애쓰는 부분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안다.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까지도
나의 일부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어느 날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약함 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날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안다.

내 속도를 믿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소리에 아파하고,
무엇에 눈물 흘리는지.

그 모든 걸 알아가는 시간.
그게 곧 ‘나’를 알아가고 또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다.



이제는 누군가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나로 살아가고 싶다.

대신 내가 바라는 내 모습으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나를
스스로 관찰하고, 지켜보고,
귀 기울이는 삶을 살고자 한다.

비워야 할 것은 비우고,
흘려보낼 것은 보내면서도
나 자신에게 갇히지 않고

내 생각에 고립되지 않는 유연한 나.

그게 내가 이해한 오상아다.

속도가 더디더라도
나를 믿고 함께 걸어가는 나.

나를 버리라는 건
스스로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 주변에 덧입혀진
시선의 허물과 껍데기를 하나하나

용기를 내어 정성스럽게 벗겨내어 “버리고”,
진짜 내가 알을 깨고 나오게 하는 일이다.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대신,
매 순간 깨어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가 모르던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일에

진심을 다해 살다 보면,

그게 가장 나다움에ㅡ

가까워지는 길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