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어떤 노인으로 나이들어갈까 생각해보는 사람

아흔살엔 단단한 근육의 할머니가 되길!

by Maybe





혼자 남은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자꾸 애달파진다.

부모님도 어느덧 연세가 들어가셨지만,
두 분 모두 여전히 정정하시다.

하지만 아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작년에 할머니를 먼저 보내시고
지금은 집에 홀로 계신다고 생각하면,
그 외로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나는 젊은 나이에 외로움과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고독 속에서 때론 버티고, 때론 즐기며,
혼자 밥을 먹는 일이나 낯선 거리를 걷는 일쯤은
이젠 그다지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외로움은
내가 아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나조차 따라가기 버겁다 느껴지는
빠르게 변하는 요즘, 이 문명 속에서,
노인의 시야에선 1차적인 장벽이 버겁게 느껴질 것 같다.
여기에 몸의 한계까지 겹쳐오는 외로움이라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운전을 하시지만,
우리 모두가 걱정되어 말리게 되었다.
그래서 마트에 가시거나, 병원에 가시거나,
노인대학에 가실 땐 버스를 타셔야 하는데—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할아버지 댁은 꽤나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버스정류장은 언덕 아래에 있어서
왕복하려면 그 경사를 오르내려야 한다.

아흔을 넘긴 몸으로
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으셔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마음에 걸린다.

특히 한국의 여름.
좋은 날 걸어도 턱턱 힘에 부칠 언덕에서
숨이 막히는 듯한 폭염 속을 걷고 계실 걸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연세의 누군가에겐 하루의 큰 결심이자
고독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다며
직접 동네 마트나 백화점 푸드코트에 가서 장을 보시고,
좋아하는 불고기 소스도 미리미리 사 두신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께는
본인의 취향에 맞는 요리를 부탁하시고,
쿠팡으로 생필품을 주문하시기도 한다.

온라인 뱅킹은 어려워하시지만,
폰뱅킹을 통해 손주인 나에게
용돈을 보내주신 적도 있다.

이 모든 장면에서
‘아흔 살의 위엄’이 느껴진다.

나는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았기에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불편할지,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죽음 앞에서
불안이 엄습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내가 할아버지를 대단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배움에 게을러지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배우려는 용기와
빛나는 호기심이 있는 분.
어쩌면 그게,
아흔 살의 할아버지를 더 젊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비밀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셨던 분이지만
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노인대학에 입학하셔서 함께 배움의 친구들을 사귀며 지내신다.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아는 멋쟁이시며,
삶을 어떻게 채워가야 풍요로운지 잘 알고 계신다.

붓글씨를 쓰고, 식물을 키우고,
새로 나온 휴대폰 기능도
어두워진 시야와 무거워진 눈꺼풀에 힘을 주어
익히려는 그 모습.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적어도 나보다 반세기는 먼저 사신 분인데,
‘노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늙어가시는 나의 외할아버지.

자신을 스스로 꾸준히 관리해오신 시간,
그 깊은 연륜이 삶에서 툭툭 배어나온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보다
가장 먹먹했던 건—
가장 사랑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슬픔에 잠기기보다
장례를 도와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담담히 고마움을 전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어른 중
가장 멋진 어른이자
가장 단단한 노인으로
할아버지를 존경한다.

할아버지가 그리운 날이면
문득 나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노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 걸까.

어쩌면 무척이나 피상적인 이야기지만,
내 꿈은 어느 순간
근육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되었다.

내가 말하는 ‘근육’은 실제로 몸에 붙은 근육이기도 하지만
내면이 단단하고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누군가에게 함부로 상처주는 어른이 아니라,
근육질의 미소가 자연스러운 사람.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거저 그렇게 살아지는 삶은 없을 것이다.

순리대로 살아가려는 태도 속에서
나는 강인함과 의연함,
담대함과 초연함을 함께 품고 살고 싶다.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 없이,
오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들로 채워나간다.”

그런 태도로, 그런 하루들로 살아가고 있는
아흔 살의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
나는 슬픔에 삼켜져 회색빛의 노인이 아니라
빛나는 존재를 본다.

물론,
그 안에 내가 미처 다 알 수 없는
깊은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 결코 없을리 없다.

그래서 더 애처롭고, 더 존경스럽다.

내가 사랑하는 이 노인이
그 어떤 슬픔도 아픔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그런 할아버지를 닮아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으로

오늘 나는 어떤 노인으로 늙고싶은지에 대한 글을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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