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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 클레어 Oct 21. 2023

무한히 반복되는 유한한 우리

「아침 그리고 저녁」ㅣ 욘 포세 ㅣ 문학동네

 



 아침 그리고 저녁. 이것은 요한네스의 하루, 한 생, 한 권의 책이다. 그의 시작엔 아버지 올라이가, 마지막엔 딸 싱네가 있었다. 요한네스는 그들에게 목격되었으므로 그의 의식을 초월한 시간과 연결되었고, 사라지되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하루는 올라이와 싱네의 하루와 중첩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연장된다. 페테르와 에르나, 페테르센의 하루가 그러했듯.


 열 살 무렵, 아파트 놀이터 앞 비릿한 냄새와 혈흔으로 최초의 실체적 죽음을 마주했다. 나 이후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존재 소멸의 공포, 그것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낭떠러지 같은 두려움이었다. 어느덧 한낮 무렵의 나이에 가까운 내게 욘 포세의 관점으로 바라본 죽음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을 떠올리게 했다. 언제일지 모를 죽음을 선고받은 그대, 생의 찰나를 바라 오직 지금인 현재의 아름다움을 잊지 말라는 충고. 중요한 것은 죽음 그 순간만이 아니다. 소중한 이들과 진심을 주고받으며 공유한 시간의 축적은 물리적 죽음을 초월하고 우리를 저녁 너머의 차원으로 인도한다.


 요한네스는 올라이의 아버지이자 아들이고, 올라이 또한 요한네스의 아버지이자 아들이다. 서로의 의식 속에 살아있는 영혼은 이름이란 육신을 빌어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같고도 다른 시간의 바다에 그물을 던지며 무한루프처럼 맴도는 아버지와 아들. 우리는 누구나 유한한 그 삶을 무한히 반복하며 결국 서로가 된다.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초조함이 담긴 구절들은 또 한 번의 아침을 향한 신탁을 닮았다. '앞으로 모든 것이 그저 나아가며 더 이상 그 무엇도 구별할 수 없는' 내던져진 세상.


 최고의 자본이 된 시간을 숭상하여 언택트가 일상인 요즘, 죽음 마저 넘어서는 컨택트의 힘을 곱씹는다. 그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은 채 홀로 독점한 시간을 움켜쥐고 있다면, 그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하루는 궤도를 이탈하고 아침도 저녁도 아닌 시간 안에 멈춘다.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동안 순수하게 목격되는 존재가 될 것, 그리고 다른 존재를 힘껏 목격할 것. 그럼으로써 무한히 팽창할 거대한 세계를 생각하니 비로소 안심이다. 물안개 자욱한 피오르의 바다만큼이나 우리 이후의 세계는 아득하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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