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버스 타기

작심하고, 내 일상의 유리창에 던지는 돌

by Ring finger



인생에 가끔은, 모르는 버스타기


근 6년을 빨간 버스와 함께 했다. 회사는 명동, 집은 분당에서 용인으로 더 멀어져 갔다. 거의 램수면 상태로 버스에 올랐고 퇴근 길엔 이미 한참을 지나친 목적지에서 허무하게 내렸다. 매일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번호를 기다리는 삶. 카드가 스칠 때 올라가는 전광판 숫자에 아쉽던 그 기나긴 대열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앉아서 가겠다는 일념으로 유리한 정거장을 갈팡질팡하고, 이미 모퉁이를 돌아버린 버스 대기줄에 지하철로 뒤늦은 발을 돌리기도 했다. 일상에 지쳐가던 그때 문득 스무살의 그녀 생각이 났다.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 칭찬받던, 그러나 지난했던 고등학생 시절 뒤의 대학생활은 기대만큼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 파도처럼 몰려왔던 방대한 ‘자유’ 속에 맥없이 휩쓸렸고 어딘지도 모를 망망대해를 부유했다. 어리숙함 그 자체에 가까웠던 대학 새내기 시절은 즐기고 싶으나 즐길 수 없는 초조함과 어색함, 내 것이 아닌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의 연속이었다. 어디 나 같은 얘는 없나 두리번거리기 일수였고 점차 빠르게 적응해가는 동기들과 멀어져 가던 그곳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아담한 키에, 새내기 특유의 과한 화장도 없이 수수했던 그녀의 첫인상은 내가 다 챙겨주고 싶을 만큼 여리고 온순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 달랐다. 동기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대학 적응력에 조급해하며 쉽게 낙담하던 나와 달리,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초연했고 침착했다. 나만큼 소심할 줄 알았던 그녀는, 그러나 그 작은 체구와 목소리로 연극 무대에 올랐고, 대담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났으며, 아무도 듣지 않을 것 같은 금요일 1교시의 희귀한 음악, 체육 수업을 찾아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간극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날 무렵, 같이 듣던 오전 수업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수업을 빼먹는 얘는 아닌데, 아니 더 솔직히는 내가 점심시간에 곤란할 걸 알아야 할 텐데 싶었다. 어디니? 어디 아파? 무슨 일 있어? 내 조바심의 SOS를 읽어주길 바랬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답장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나, 모르는 버스를 타고 있어. 어디까지 갈지, 어디서 내릴지 몰라. 그냥 오늘은 이러고 싶어.


아, 그때 내가 그녀에게 어떤 답장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꽤 오랫동안 멍해졌다는 것뿐. 이렇게 내 일상의 유리창에 돌을 던져볼 수 있다는 것, 그 새로운 균열을 즐겨봐도 된다는 걸 그 전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게 바로 망망대해 속에서 한 움큼도 쥐지 못했던 ‘자유’가 아닐까. 그 누구도 아닌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걸, 그렇게 나만의 규칙과 게임과 세계를 만들어가도 된다는 걸, 그랬던 그녀를 스무 살의 나는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보내지 못한 편지처럼 고이 접힌 추억은 졸업과 취업, 동기들의 릴레이 결혼식과 내 오랜 연애의 마침표를 따라 심란하고 절망스럽던 30대의 초입에 이르러 다시 펼쳐졌다.



결혼 상대는 내가 직접 구하겠다는 야망


내 생물학적 기록의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던 그 무렵, 무엇인지도 모를 일에 파묻힌 솔로였던 내게 가해진 주변 세계와 스스로의 압박은 다시 돌이켜봐도 꽤 숨 막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은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어머니의 경고음, 소개팅을 계기로 까탈스러움만 남기던 평판,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반쪽, 인풋 대비 처참한 업무 성과. 그 어느 본전도 챙기지 못한, 탈탈 털린 영혼을 자각하던 그때, 이 보다 더 나쁠 순 없다는 허탈함으로 생의 첫 번째, 모르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의 이름은 결혼정보업체였다.


이 버스의 탑승은 부모님의 조언이나 지인의 추천도 아닌 오로지 내 선택이었다. 내 기준의 비슷함에 대한 요구가 타인에게는 눈이 참 높다는 평가를 낳는 당혹스러운 경험이 반복되면서 피로한 동시에 화도 났다. 결국 자본주의에 입각하여 상호 객관적인 필터링을 요청하는 것이 내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당당해질 수 있는 최후의 수단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돌진한 강남역 센터에서 성인이 된 자녀가 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피부며, 머리며 아름답게 관리된 매니저님과의 상담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떤 이유로 왔든 지간에 이미 당당할 수 없는 연령군에 포지셔닝되어 있음을 일깨우셨고, 고퀄의 프로필을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여성이라면 메이크업과 3벌가량의 의상을 바꿔가는 스튜디오 촬영을 권한다고 했다. 남성들은 그렇게까지 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여성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동참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비교가 많이 될 거라는 이유였다. 그동안 쌓아 온 소신과 대립되는 많은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말 어색했던 청담동 스튜디오 촬영의 부담을 이겨내고 나인지 아닌지 모를 프로필을 창조하여 그 전장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어디가 종착점 일지, 혹은 적당한 중도 하차점일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탑승한 이상, 달려야만이 최악의 지금보다 나은 내가 보일 것 같았다.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던 첫 번째 버스의 경험


내가 직접 경험했던 몇 년 전의 방식에 따르면, 계약금액에 따라 만남의 대상과 횟수가 달라지고 쌍방 프로필 승인에 따라 만남이 성사되니 계약 완료에 소요되는 기간은 차이가 있었다. 여기서 계약 완료란 기본적으로 내게 허락된 모든 만남의 횟수를 채우는 것이지만, 만약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상대를 초반에 만나 성혼에까지 이른다면 아직 남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계약이 완료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모든 횟수를 채우는 약 8개월의 대장정을 거쳤고 가장 마지막에 만난 분과는 꽤 오래 산발적인 만남을 가졌지만 결과적으로 그뿐이었다.


오히려 이 버스의 종착역에서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깨달은 것은 결혼 ’정보업’이라는 산업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익숙함 혹은 허술함이었다. 성격이나 성향 같은 세심한 영역까지 고도의 빅데이터 분석을 바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정확한 ‘정보’에 대한 신뢰를 기대했다. 그런데 애매하게도 출신학교의 지역이 프로필에 제공되지 않았고, 그렇게 만난 상대의 말이나 뒤늦은 매니저님의 고백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경우가 2번 있었다. 이렇게 매니저님께 추천받은 프로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갈등이 생길 땐, 나와 비슷한 계약을 맺은 몇 천명의 회원들의 프로필을 직접 찾아 헤매볼 수 있는 온라인 열람실이 있었다. 하나씩 클릭하고 열어보지 않는 한 거의 어떤 필터링 기능을 찾을 수 없었던 그곳에서, 매니저님들의 탐색 정신에 대한 경외심을 느껴야 할지 업체가 제공하는 매칭 메커니즘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야 할지 꽤 혼란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성혼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던 첫 번째 모르는 버스 탑승이었다. 검증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원하는 상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설을 직접 실행해보았고 그 효용과 한계를 경험했다. 어떤 경로를 통했든 만남은 시작이고 그 순간부터는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이해와 상대의 다름에 대한 포용력에 의지해야 함을 오늘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두 번째 버스의 정차 버튼을 누르고 잠시 서행 중에 있다. 아직 세 번째 버스의 모습도, 환승 시점도 막연한 이 안갯속에서 내 지난 버스 여행의 역사를 회고한다. 내 두 번째 버스는 무엇이었고, 왜 올라탔으며 다시 내리려고 하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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