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km 이탈, 마침내 독립

마음껏 청승 떨 자유를 향한 도피

by Ring finger

말은 씨가 정말 된다


제시카 차스테인 배우가 열연한 ‘미스 슬로운’ 영화를 보며 고독한 천재 로비스트의 삶에 매혹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내 동경의 포인트는 그녀의 직업이나 업무 능력도 아닌, '호텔이 집이 되어' 잠만 자고 나오는 극히 건조한 삶이었다. '나도 성공해서 호텔에서 살고 싶다, 집안일도 없고 얼마나 좋을까, 호캉스가 아니라 내 집이 아예 호텔이면 좋겠다.’ 영화의 메시지와 무관한 이런 극단적 감상평을 내 연애 근황을 묻는 이들에게 부메랑처럼 돌려주었다. 그렇게 몇 년 뒤, 매일 눈 뜨는 지금 나의 공간은 바로 그 호텔이 되었다.


정확히 서비스 레지던스라고 불리는 이곳을 한국에서도 이따금 바라보았다. 서울 오피스 밀집지역을 순환하는 나의 빨간 버스 안에서 유난히 빛나던 고층건물 안의 누군가를 상상했었다. 그러던 내가 마침내 입성한 이곳은 엄마의 표현대로 폭탄 맞은 마냥 온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뛰쳐나와도 돌아오면 말끔해진 이불 시트와, 뽀송뽀송한 수건이, 가지런해진 살림살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요정의 공간이었다. 비록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어지름의 죄의식에 무뎌지고 잔소리가 소멸된 이곳에서 온전한 나만의 자유를 갈구했다.


내게만 보이던 두 번째 모르는 버스에 올랐던 그날로부터 이곳에 머문지도 어언 700박이 넘었다. 미친 짓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단순한 마음으로 성큼 탑승했다. 나는 지금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있다.



크로노스는 카이로스가 될 수 있을까


베트남어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다낭, 나짱 같은 휴양도시가 제법 인기를 끌던 시절에도 베트남을 휴가지로 떠올려본 적도 없었다. 다만 회사에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자 TF팀으로 전출되기 시작했고 중국을 향할 줄 알았던 방향키는 어느새 베트남으로 돌려졌다. 2017년 11월 마침내 첫 해외출장으로 마주한 하노이의 공기는 아직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었다. 카드 사용이 잘 안된다니 식사 후엔 되도록 넉넉히 잔돈을 챙겨봤지만, 지폐에 그려진 동그라미 개수를 헤아리는 나의 어설픔에 대뜸 돈을 낚아채버리는 택시기사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겐 기회의 땅이라는 이곳이 당시의 내겐 가끔의 출장지, 일로 만난 사이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 살아보겠다며 다시 찾은 시점은 코로나 발발로부터 몇 달 전의 가을이었다. 좀 더 같이 방황할 줄 알았던 이들마저 가정을 이뤘다는 소식에 열등감을 느꼈다. 아빠의 은퇴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엄마의 경고등은 내겐 사랑보다 채무에 가까웠다. 성장의 자신감과 열정으로 충만했던 직장인으로서의 지난 8년이 결국 제때 결혼 못한 철부지로 평가절하되는 듯한 배신감과 무력감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그러다 '주재원'이라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어떤 버스가 나타났다.


거주증을 발급받기 위한 여러 서류들을 공증받아 왔건만 건강검진만큼은 현지에서 받아야 했다. 도시에서 손꼽힌다는 프랑스계 병원이었는데 갑자기 베트남인 의사 선생님이 가까이 오더니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당혹감을 가라앉히며 집중해보니 들릴 듯 말듯한 소리의 정체는 'Where are you from?'이었다. 그것이 베트남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청력검사였다. 어쩌면 이것이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 너머 내가 살아가야 할 이곳의 현주소 일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떠나는 내게 누군가는 부동산을, 주식을, 작은 사업을 권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를 사로잡은 건 청승에의 자유였다. 누구의 간섭도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마음껏 뻔뻔하게 즐기고 싶었다. 그런 꿈속의 삶에 충실했던 첫 일 년도 있었다. 그러다 잠시 적을 두었던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따금 마음에 새기게 되는 문장을 만났다. '통제할 수 없는 물리적 시간 (크로노스)을 살 것인가, 통제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 (카이로스)를 살 것인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앞으로 정말 불려 가고 싶은 자산은 '시간'이라는 걸 깨달은 때가.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오롯이 내 손안에 하루 24시간이 주어졌다. 직장에 저당 잡힌 8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한참인 시간이다. 그리고 이곳엔 램수면 상태로 오르던 빨간 버스도 없다.




더 이상 영어에 울지 않기


혼자서도 잘하는 베트남 생활을 위한 첫 번째 미션은 '친구 만들기'였다. 혼자인 내가 외로울까 봐 이미 주재 경험이 있던 동료들이 맛집 탐사와 일일 시티투어에 동행하는 등 많은 배려를 해주셨지만 내게도 조금은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필요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공부를 하러 영국을 거쳐 독일로 향하는 언니가 생각났다. 짧지 않은 해외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내게 몇 가지 앱들을 일러주었다. SNS도 잘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녀의 조언대로 'meet up'이라는 앱에서 하노이에 살고 있는 국제 여성들의 모임을 찾았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베트남 여성이 호스트였고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에서 온 다국적의 여성들이 게스트로 등록된 첫 모임 전날까지 취소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많이 망설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스스로를 영어의 피해자로 규정하며 만들어진 상처들이 적지 않았다. 원래도 생각만큼 실행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교환학생, 단기 해외 활동 등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할 때마다 영어가 걸렸다. 그래도 중국어는 조금 하니까 괜찮을 거라며 신청했던 중국 대학의 국제캠프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30대가 된 나는 스스로를 책임지고 싶었고 홀로 서려는 자신에게 친구를 찾아주고 싶었다. 돌아오는 순서에 맞춰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고 호스트가 준비한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면서 예정된 2시간이 지나갔다. 서로 자라온 환경도 문화도 달랐지만 같은 시간 같은 타지에서 외국인으로서 적응해야 하는 공동의 미션을 나눴기에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하노이 인맥의 8할을 책임져준 말레이시아에서 온 첫 번째 하노이 친구 Ann을 만났다.


이미 나보다 2년을 앞서 하노이에 살고 있던 쾌활한 성격의 Ann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내게도 노력이 필요했다. 화상영어 앱을 찾았고 대담하게도 주 5일 서비스를 신청했다. 조금이라도 공통의 화제를 찾기 위해 한국에 살아봤거나 관심이 있는 튜터를 중심으로 검색했고 30분 동안 할 말이 없을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시작하기 10분 전부터 떨리고 걱정되던 그 시간의 긴장에 무뎌지고 호흡이 편안해지기까지 당연한 연습의 축적이 필요했다. 조심스럽게 3달씩 연장해보던 서비스를 아예 1년 치로 끊어놓고 되든 안되든 스피킹도 결국 ‘입 근육 운동'이라는 생각으로 지속한 지가 이곳에 머문 시간만큼 되어가고 있다. 이따금 자신감에 충만하여 영어권 네이티브들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노골적인 질문과 반응에 서러워 난파당한 배처럼 침대에 쓰러지는 밤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껏 청승 떨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나를 둘러싼 벽들을 하나씩 넘어뜨리고 싶었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는 TBWA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메시지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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