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저는 이유는 몰라도 왠지 성가정 축일이 좋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성탄 대축일보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된 성가정 안에 머물렀을 사랑과 평화를 되뇌고, 닮고자 합니다.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에는 자녀로서의 예수님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도 함께 계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자녀로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이 맡기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기억하며 믿고, 존중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신앙과 사랑을 바탕으로 시작되고,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고, 서로 사랑하면 성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제 생각에는 아이보다 제가 더 중심에 있었고, 제 사랑은 받는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주는 사람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구나, 아니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느낀 그날까지는 그랬습니다. 어느 순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이와 다툼이 늘어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고, 지나가는 의미 없는 말 한마디가 부정적인 감정에 더해져 비수가 되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공유하는 따뜻한 감정은 줄어들고,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비난하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저를 바꿔보고자 아버지학교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바로 효과가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효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다 내려놓은 다음이었습니다. ”100살까지 산다는데 10년 후부터 시작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는데, 사지가 멀쩡한데 뭐라도 하면서 살겠지. “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 생각으로 제 힘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작게는 밥 먹어라라고 하던 것을, 언제 밥 먹을래라고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방문이 닫혀 있으면 노크를 하고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모이는 가족 모임이라도 같이 갈 수 있니, 같이 가자라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도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싫어요. 나중에요. 이번은 안 갈래요 등등. 그러면 한번 더 묻기도 했지만, 그럼 배고플 때 이야기해, 다음에는 같이 가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냥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존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었기에,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좀 더 쉽게 존중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아내와 아이에 대한 존중이 사랑의 표현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지금 성당에 나가지 않지만, 저는 존중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우리 가정은 성가정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루카 2,35
오늘 복음 말씀에서 시메온이 한 말입니다. 어떤 의미로 성서에 기록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안에서 자꾸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려면 마음속 생각을 꺼내야 하는 것인지,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살던 사람들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인지, 겉으로는 함께 하지만 사실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길 사람 속을 모른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겉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 보시기에 그분 앞에서는 모든 것을 감출 수 없다는 말처럼도 들립니다.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것은 어쩌면 그때까지는 감춰져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말입니다. 비밀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님은 마음속 생각을 알고 계시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입을 열고, 생각을 말해준 다음에야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예수님처럼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없기에, 저와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 마음속 생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먼저 제 마음을 열고, 그들을 존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