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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Dec 24. 2023

주님 성탄 대축일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새 생명이 태어나면, 축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새로 가족을 맞이한다는 것은 정말 축하받을 일입니다. 부모들은 책임과 희생이 따를 것을 알지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희생하고 항상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사랑의 결실인 아이와 가족을 다 같이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축하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축하를 건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축복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서로 축하를 건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을 서로 축하하고 축하를 받습니다. 2000여 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또다시 우리 죄를 대신하기 위하여 태어나신 것을 축하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해합니다. 아직도 우리 죄를 대신하러 오셔야 하는 그 사실에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더 이상 우리를 구원하려 오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하시는 친구 같은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루카 2,15


오늘 밤미사 복음에서는 천사가 목동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새벽미사 복음에서 목동들은 주님께서 알려 주신 그 일을 보러 갑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경배드리러 갑니다. 그리고,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냥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주님의 놀라운 약속을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입으로 전합니다.


오늘 말씀에 있는 많은 성탄 축하 이야기 중에 가서 봅시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남은 것은 완고해진 저를 다시 돌아볼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과거의 지식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내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나서,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애써서 무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합니다. 사실 제가 완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잘 듣고, 저와 다른 의견이라도 객관적인 시선에서 받아들일 것과 버릴 것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완고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나이 먹지 말아야지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주관적이었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많고, 경험도 했고, 새로운 것도 공부하고 있고, 다른 사람 말도 잘 듣기 때문에 제가 옳다는 생각을 바탕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제 판단 없이 가서 봅시다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번 해봅시다라고 하지 못했었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를 저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참 어리석었지요.


예수님은 왜 항상 세상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그분들 앞에 나타나시고, 그분들과 함께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과연 2000년 전의 예수님이 제 앞에 나타나시어 같이 가자라고 하시면 저는 말없이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가진 것을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실 때 슬퍼했던 부자처럼 바로 따르지 못함에 슬퍼했을까요? 아니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처럼 그냥 무시하고 지냈을까요? 바로 답을 못하겠습니다.


아이들처럼 순수함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만이 선택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예”, 성모님의 “예”, 성요셉의 “예”, 제자들의 “예”에서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죄를 대신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성탄에 한 번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예”라고 말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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