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번 대림은 성탄절이 월요일이어서인지, 삶이 바빠서인지, 관심이 줄어든 것인지 모르겠으나 참 빠르게 지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그냥 하루의 휴일이 되어 연말연시의 화려함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매년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계십니까?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웃고, 울고, 생각을 나누고 계십니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갑자기 힘든 일을 마주할 때 누가 먼저 생각이 나십니까?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엄마는 항상 내편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잔소리가 아무리 많아도, 엄마는 내가 힘들 때는 같이 힘들어해 주시고, 내가 기뻐할 때는 본인의 일보다 더 기뻐해주시는 분입니다. 어린 시절 항상 내편인 엄마는 내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이겨내며,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항상 자신의 편인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고, 할머니였을 수도 있고, 선생님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항상 내편인 사람이 없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었다고.
저는 고등학교 시절을 조금 어렵게 보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시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이 급격하게 경제적으로 어려워졌고, 집마저 처분한 이후에는 부모님은 말다툼을 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항상 제 편이 되어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계셨기에 다행이었지만, 그 시절 가족들과 즐거웠던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 세례를 받고 주일 미사만 다니던 제게 그 시절 교회가 힘들다고 매달릴 곳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이 제 엄마가 되었던 것입니다. 야간 자율학습이 한창이던 그 시절에 저녁시간에 밥을 먹는 대신 성당을 찾아 저녁 미사를 드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때로는 혼자 앉아 울기도 했습니다.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1단 묵주는 기도할 때는 기도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성모님의 표상이었습니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만지고 다녔기에 묵주에 달린 십자가는 각이 하나도 없이 둥글둥글하게 닳았고, 묵주알은 제 손때와 함께 짙은 갈색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한 사람의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 성인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보니, 항상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던 시기에는 한 사람 발자국 밖에 없어서 하느님께 불평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 성인이 제가 가장 힘든 시기에 주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고 묻자 하느님은 ‘그 발자국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다. 네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업고 갔단다.’라고 대답을 하셨다는 이야기말입니다.
아마도 제가 하늘나라에 가서 제가 살아온 길에 발자국을 돌아본다면, 그 시절에는 한 사람 발자국만 있지 않을까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혼자 힘으로 뚫고 지나왔다고 생각되는 순간조차도 하느님은 저와 함께 항상 저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내가 같이 가줄게.
힘들면 언제든지 도와줄게.
무슨 일이든지 연락해.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아무에게나 해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없던 용기가 나고, 없던 자신감도 자존감도 함께 올라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 루카 1,28
오늘 복음에서 처녀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브리엘 대천사는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주십니다. 주님은 사실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에 계실 거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면 우리를 업고 함께 가실 겁니다. 그저 우리는 믿고 의지하면 됩니다.
주님, 주님이 항상 함께 하고 계심을 제가 믿고 의지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