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동방박사 이야기는 누구나 신앙을 가지게 되고, 성탄절을 한 번만 지나게 되면 다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시절 성극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동방에서 박사 3명이 별을 따라 세상에 태어난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 옵니다. 별이 멈춘 곳, 마구간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며, 임금을 상징하는 황금과 사제를 상징하는 유황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동방박사의 방문을 통해 이제까지는 베들레헴의 목동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난 시메온과 한나에게만 드러나셨던 메시아의 탄생이 이스라엘 밖의 이방인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들의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탄생이 유대 민족 안에서만 알려졌다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유대인의 왕 예수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저는 구약성경에서 유대 민족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은 유대인의 편에서 지극히 편파적인 모습으로 유대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이방인이 하느님 구원 계획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읽으면서는 동방박사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먼저 왕이시면 사제인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모든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실 것이라는 것과 함께 말입니다. 구약은 유대인을 통해서 하느님이 역사하셨지만, 신약은 그 시작부터 이 세상 모든 백성을 위해 예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할 수 없나 봅니다.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 마태오 2,12
동박박사들은 예물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며칠을 머물지도 않고, 목동들처럼 성전의 예언자들처럼 천사의 말을 전하거나, 예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경배만 하고 돌아갑니다. 임금이시며 사제이시면서 우리를 위한 어린양이신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예물만 드리고 돌아갑니다. 어련히 잘 성장해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 할 것은 이게 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기다리지 못하고 본인의 판단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연인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자기도 그 자리를 떠나게 됩니다. 자녀가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대신해주게 됩니다. 동방박사들은 지금은 구유에 누워 계시지만,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시라는 것을 정말 믿고 있었지 않을까요? 그래서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언제 집을 나서 별을 쫓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이방인들인 그들이 별을 따라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게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서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그렇게 힘들게 찾아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인사를 드리고 떠날 수 있었는지도 신기합니다.
오늘은 동방박사 3명의 믿음이 지금 저는 무엇을 쫓고 있는지, 무엇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