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가는대로 Apr 05. 2024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시나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잘 있었어요.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오늘 하루 어땠어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어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각기 다른 표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단순한 관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도 사람들을 만나면, 오랜만이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곤 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좀 다르게 인사를 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


두려움에 떨며 문을 잠그고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시신마저 누가 가져간 줄 모르는 상황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순간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보다도 평화가 더 절실했을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모든 것을 잃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불안과 두려움에 믿을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평화의 인사를 건네신 것은 아닐까요?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눈앞에 계신 예수님이 보였을 것입니다.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 정말로 자신들이 믿고 따르던 바로 그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평화를 먼저 찾을 수 있도록 해주신 덕분일 겁니다. 긴장과 두려움은 진실을 가리게 합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걱정에 사로잡히는 순간,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기를 당하는 것을 그 사람의 경솔함이나 무지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 나는 절대로 그런 사기는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할 수도 없는 것처럼 제자들도 바로 그런 상황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평화의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 말입니다.


제게 신앙은 예수님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평화와 같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에 순간순간 떨고 있을 때, 제 손을 잡아주고 저를 안아준 것이 신앙이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하면서 집안이 급격하게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살던 집에서도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고, 집 안에서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하루하루를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은 그 순간에는 제가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셨습니다. 그때 제 손을 잡아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보다는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마치 제 아픔을 대신하고 계신 것처럼 고통에 이겨내고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10시 넘어까지 남아있어야 했던 시절에 저는 저녁을 먹는 대신에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미사를 드리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제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달라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정말 그 순간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얻은 것이 평화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저를 대신해서 더 큰 고통을 당하셨던 예수님 덕분에 지금의 건강한 모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활이라는 너무나 놀라운 선물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평화로 다시는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까지도 이겨내신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평화를 오늘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세상의 많은 아픔과 유혹으로 두려움에 떨고 숨어 있는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항상 우리 곁에서 함께 하고 계심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 말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전 19화 주님 부활 대축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