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맘가는대로 Apr 19. 2024

부활 제4주일

나는 착한 목자다

목장이라고 하면 저는 평화로움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대관령에 있는 양 떼 목장이든, 해외여행 중에 만나는 초원 위에 풀어져 있는 양이나 소, 말을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그 목장에는 분명 경계가 있고,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러한 제한 요소는 잘 보이지 않고, 그저 풀을 뜯거나 뛰어다니거나 자리에 앉아 있는 양들만이 보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몽골 여행 중에 만난 양 떼들은 도로를 점검하고 한가로이 주변의 풀을 뜯거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양들에게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몽골 여행 중에는 잠시 차를 세우고 양들이 길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동안은 그 길의 주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양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양들을 지켜주고 관리하는 사람이 양치기이고 목자입니다. 제가 직접 양을 쳐본 일이 없기 때문에 양치기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있습니다. 아침에 우리를 열어 양들을 밖으로 내보내 줍니다. 우리 근처에 풀밭이 없다면 풀밭이 있는 곳으로 양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양들이 풀밭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지내는 동안 양들에게 위험이 될 것이 있는지를 살피며 주변에서 머무릅니다. 위험 요소가 전혀 없다면 좀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해가 질 시간이 되면 다시 양들을 숙소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양들이 이미 풀이 있는 곳을 알고 있고, 우리의 위치도 잘 알고 있어서 양치기는 그저 따라가면 됩니다. 가끔 길을 잃는 양이 있다면, 그 양들을 다시 무리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 할 일입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끌고 가는 양치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두 명의 목동들이 수십 수백 마리의 양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요한 10,11


예수님은 여러 비유에서 스스로를 목자라고 하십니다.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나, 나라를 이끄는 임금이 아니고 양 떼를 몰고 다니는 목자라고 하십니다. 나를 위해 가진 것을 내어 놓고, 목숨을 바치라고 하지 않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의 의지를 존중하고 지켜주셨습니다. 길을 벗어난다고 내치지 않으시고, 다시 그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때로는 집을 떠난 탕자의 아버지처럼 하념 없이 언덕 너머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아들의 모습이 보이자 맨발로 뛰어갑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십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 합니다. 중학교 시절 항상 말없이 구석 자리에 있었던 제 이름을 처음 불러주신 선생님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아니셨는데, 제 이름을 아실 수가 없었을 것 같은데, 그날 이름을 불렸을 때 저분은 나를 알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께는 여러 명의 학생들 중 한 명이었겠지만, 저는 제가 특별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국어선생님이셨는데, 그날부터 국어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으로 장군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신들을 알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지켜 봐주는 그런 분이 아니라, 앞으로 끌고 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임금이나 장군 앞에서는 우리는 변하지 않아도 됩니다. 임금이나 장군이 원하는 것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임금이나 장군은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에 아파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것,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잘난 모습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못난 모습까지 모든 것을 알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양들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 품으로 찾아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다가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목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너무 좋습니다. 저를 잘 알고 계셔서 너무 좋습니다. 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지 제가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곳에 계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지켜봐 주실 것이라 믿으니 너무 든든합니다. 그저 제가 할 일은 그분의 품을 떠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이전 21화 부활 제3주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