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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May 03. 2024

부활 제6주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논쟁을 하다 보면 상대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증거를 대거나, 증인을 찾아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어야 합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도 때로는 증거를 요구받습니다. 범죄를 입증할 때만 증거가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으면, 여권이나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됩니다. 신분증이 증거를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증명서 만으로 그 사실을 보여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사용할 수도 있으나, 운전면허증은 그저 운전을 해도 된다는 것이지, 운전을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책임지는 문서는 아닙니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때로는 운전하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할 수도 있습니다. 여권으로 한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말을 하지 못하고, 우리의 역사도 모르는 사람이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다면, 겉으로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한국 사람의 보편적 정서를 가지고 있어야 한국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가끔 TV에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외국 사람들 보면, 그 사람 한국 사람 다 되었네라고 하면서 정서적으로는 한국 사람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단체나 모임에 참여한다면, 모임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것보다 그 모임의 핵심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야구를 좋아하다고 하면, 야구장에 자주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나 팀, 경기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필요하기도 하고, 선수나 팀의 성적에 흥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는 모습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LG Twins를 좋아하는 저는 소위 찐팬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실시간으로 경기 정보를 확인해야 맘이 편하고, 승리하는 날은 여기저기 방송사의 하이라이트를 다 찾아보고, 경기에 지면 모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화가 나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지나간 경기의 특정 순간이 언급되면, 무의식 중에 감정적으로 그 대화에 끼어들어 있는 저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제가 LG Twins 팬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는 삶의 태도가 있어야만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매주일마다 미사를 참례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신앙인의 의무이지만, 미사에 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는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신앙인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식당에서 성호를 긋고 손가락에 묵주 반지를 끼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 성당 다니네라고 생각하겠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신앙인들을 세상 속에서 구분되게 만드는 것은 미사참례나 묵주 반지가 아니라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 17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유일한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구분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증거는 미사에 빠지지 않느냐, 성사 생활을 잘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느냐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서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랑입니다. 에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목숨을 내어주신 그런 사랑을 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들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성인들의 삶을 보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신앙의 본질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여기까지면 될 거야라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랑도 쉽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매번 깨닫곤 합니다. 그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되새기고, 부족한 저를 인정하고, 작은 사랑이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를 드립니다. 부족한 제가 항상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의 등불이 되어달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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