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별 역할
역할에 맞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더 큰 역할을 가져옵니다.
회사마다 규모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어느 정도 조직이 갖춰진 경우라면, 유사한 직급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사원, 선임, 책임, 팀장, 담당, 총괄, 센터장, 부문장 (사업부장/C-level), CEO 이렇게 직급(직책)이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담당 이상의 직급은 임원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직급을 나눠 놓은 것은 각각의 직급과 직책은 그에 맞는 역할과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과 기대치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사원에게는 지시에 대한 정확한 이행을 기대합니다. 혼자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회사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보니, 사원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을 기대하기 이전에 시키는 일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사원에게는 보통 어쩌면 너무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 많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풀어낼 것을 기대하기보다 한번 배운 것은 잘 해낼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방금 배운 것도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고, 자세한 설명을 들었으나 실행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원은 누구보다도 잘 물어보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모르는 것을 일단 해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모르면 명확한 실행을 위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사원의 능력에 대한 판단은 맡겨진 일의 실행 결과를 기반으로 할 것이 때문입니다.
선임에게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업무의 자율적인 실행을 기대합니다. 사원은 물어볼 권리가 있다고 하면, 이제 선임은 가르쳐줄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기반으로 스스로 주어진 일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을 한다고 하면, 축적된 회사의 지식을 설계에 적용할 수 있고, 무슨 시험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상위자가 다음 단계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량과 경험에 따라 아직 배움이 더 필요할 수도 있고, 스스로 판단하고 다음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분도 있겠지만, 본인의 역량에 따라 다음을 잘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책임은 주어진 과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완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 대응을 하는 부서라면, 고객의 요구 사항을 명확히 이해하고, 과거 이력과 경험 등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새로운 과제를 접했을 때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시도도 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후배들의 질문에 본인의 판단을 더해서 답을 해주셔야 합니다. 후배들이 자신에게 특별히 많이 질문을 한다면, 본인이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선배들의 입장에서 후배의 잦은 질문은 업무의 흐름을 끊거나, 자신의 시간을 빼앗는 불편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을 놓고 보면, 후배들이 정확한 실행을 하는 것이 본인과 팀의 업무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팀장이 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팀장부터는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술적으로 팀이 맡은 분야를 가장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개별적인 업무의 구체적인 지시도 필요하지만, 과제의 전체를 보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말 어려운 자리의 시작입니다. 이제까지 개인의 뛰어난 업무 역량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제부터는 자신의 역량에 팀원의 성과를 더해서 평가를 받게 됩니다. 또한 일 뿐 아니라 사람도 챙겨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스스로 생각한 대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팀장이 되면 팀원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좌절하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어디까지는 맡기고, 어디부터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개입과 기다림의 균형이 팀장으로서 본인의 색깔이 될 것입니다. 팀장은 귀와 눈을 더 열어야 합니다. 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은 팀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인지 믿고 맡겨주기를 원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고 맡겨달라는 팀원은 믿고 맡겨주십시오. 도움을 요청하는 팀원이 있다면 무시하지 말고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귀는 직접 팀원에게 듣는 것을 말한다면 눈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팀원이 믿고 맡겨달라고 했더라도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판단해서 계속 맡길 것인지, 이제는 개입할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더 어려운 것은 팀장이 되면서부터 사람도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챙기는 시작은 다름을 인정하고 개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팀장님과 같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담당 자리는 일과 사람에 전략을 더해지는 자리입니다. 담당부터는 자신이 전문이 아닌 분야도 관리해야 할 수도 있고, 회사 내에서 자신의 조직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고, 어느 조직과 어떤 관계를 통해서 업무가 진행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그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을 익숙해져야 합니다. 여러 팀을 함께 맡고 나면, 어떤 팀의 업무는 매우 익숙하지만, 한두 팀의 업무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많은 분들이 익숙한 업무에 더 쉽게 마음이 갑니다. 그러나, 이제 익숙한 업무일수록 후배 팀장에게 맡기셔야 합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팀장님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래야 적어도 담당 내 팀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귀를 기울여야만 더 관심을 가져야만, 결정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본인이 결정할 수 없는 역할을 하는 팀이 있다면, 그 팀에는 영향력을 미칠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조직 내의 모든 업무를 정확히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전문 분야가 아니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적어도 팀장의 제안을 바탕으로 결정을 할 수 있는 만큼은 지식을 갖춰야 합니다. 완성도가 더 중요한 일과 완료 또는 적용 시점이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완성도가 중요하다면 목표한 완성도를 하루라도 빨리 달성하고, 일정이 중요하다면 주어진 일정 안에 최대한의 성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말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담당이라면 조직 내에서 업무 우선순위를 시급성과 완성도 사이에서 판단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여기에 사람을 챙기셔야 합니다. 사람을 챙기는 것은 조직문화 개선과 적정 자원 분배를 포함합니다. 조직문화에는 많은 것이 있겠지만, 특히 사실에 기반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원이 되고, 센터장 이상이 되시면, 이제는 결정과 함께 책임을 기꺼이 지셔야 합니다. 사원도, 팀장도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가지겠지만, 책임은 무조건 최종 결정권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윗사람에게 적정시점에 보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즉시 상위자와 논의하고, 판단을 받아주십시오. Escalation이 되는 순간 책임은 상위자에게 넘어갑니다. 때로는 최적의 결정을 하기 위해 임원들이 결정하지 못하고, 자료만 리뷰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자료를 가지고도 확률 높은 결정을 하는 것이 임원의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fast fail이 차라리 실행할 시점을 놓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행을 하고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수정하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는데 뒤집지 못할 결정은 없습니다. 여기에 전략적 사고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전문성은 임원이 되기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시야를 넓히는 것은 임원이 되고 난 후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상위자가 지시한 일이 본인 업무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본인이 담당하는 업무의 전후방을 항상 고려하고, 작은 변화가 전체에 가져올 영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CEO는 미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CEO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CEO의 생각에 따라 회사의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 많은 역할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CEO는 더 이상 오늘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결과도 CEO의 책임이기에 단기 성과를 관리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끊임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함께 되어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잘해서 승진을 시켰는데, 얼마 뒤에는 일을 못해서 비난을 받는 일을 많이 봅니다. 실무자로 일을 잘했지만, 관리자로 자리가 바뀌면 그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장을 하고, 더 큰일을 맡고자 한다면, 직급이나 직책이 요구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그릇이 더 커져야 합니다. 아무리 멋진 옷이라고 해도 자신의 몸에 맞지 않으면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