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보고 싶지는 않지만, 자주 보는 광경이 있습니다. 비난을 받거나 지적을 받는 상황이 오면 그 상황을 피하게 됩니다. 피하는 수준을 넘어서면 숨게 됩니다. 해외로 도피를 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어쩔 수 없이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저는 모릅니다. “, “제 의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라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합니다. 피하기 어려운 증거가 드러나도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보다는 본인은 아무 권한이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던가, 그 상황에서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왜 자신에게만 책임을 지우냐고도 합니다. 드러난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도 하고, 또 다른 거짓으로 문제를 덮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어떤 것도 과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잠시 그 문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더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창세기 3,13
이러한 변명과 회피, 책임전가는 세상의 시작과 함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숨기려고 하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며 자신은 죄가 없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아담은 심지어 당신께서 저와 살라고 주신 여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하느님도 마치 책임이 있는 것 같은 변명을 합니다. 자신은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먹게 한 것이 더 큰 잘못이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와는 뱀에게 다시 책임을 넘깁니다. 뱀의 간교한 꼬임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뱀이 가장 먼저 벌을 받지만, 뱀이 벌을 받는다고 해서 아담과 하와의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도 낙원에서 추방당하는 더 큰 벌을 받고야 맙니다.
세상은 변명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나열됩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예가 크면 클수록, 잃을 것이 늘어날 때마다 변명도 함께 늘어납니다. 잠시만 버티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법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것을 빼앗기도 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세상의 비난을 피하려고 합니다. 마치 세상을 그렇게 해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핑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변명으로 하느님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씩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제대 앞에 서면, 고해소에 들어가면 다시 신앙인이 되기도 하지만, 하느님과의 약속이 교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시간 속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잊기도 합니다.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의 계명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변명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약한 저는 자주 하느님과의 약속을 잊습니다. 일부러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죄를 짓게 됩니다.
가톨릭 전례 중에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잘 가르쳐주는 것이 고해성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하느님 앞에서 입을 열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의 성찰하고, 통회하고,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고, 고백하고, 보속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변명과 핑계로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통회와 고백으로 죄를 드러내는 것이 신앙인으로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살다 보면,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로 용서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책임이 더 커지는 경험도 합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인정했던 때를 돌아보면, 저도 좋은 기억과 함께 불편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제게 책임지겠다는 말을 그만하라고도 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솔직했던 것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하려고 했던 기억이 저를 창피하게 합니다. 세상은 그런지 몰라도,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을 덮기 위해 뒷걸음질 치고,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며 어딘가에 몸을 숨기는 대신에 우리의 나약함은 알고, 하느님께 손을 내밀고, 잡아달라고 할 때, 바로 그때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고린토 2서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