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링 법칙과 루이스 베텐코트
Written by 김세훈
도시의 성장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치 거대한 세포가 그 숫자를 늘리는 것과 비슷한 자가증식 패턴을 보입니다. 인구 증가보다 부와 혁신 창출의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죠. 베텐코트는 이를 "스케일링 법칙"으로 설명했습니다.
1980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제3의 물결≫에서 '정보화 혁명'을 예견했습니다. 토플러는 지식과 정보가 사회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며, 컴퓨터와 휴대폰, IT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일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죠. 노동의 탈중앙화, 혁신의 탈장소화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전자 오두막(electronic cottage)'을 짓고 살게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예측이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우리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기술을 몸에 장착한 채 도시와 그 주변에 더 깊이 뿌리내렸죠. 여전히 도시는 인류 문명의 베이스 캠프입니다. 삶의 본진은 도시에 두고, 필요할 때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도시 On-and-off'의 삶이 더 보편적입니다.
물론 도시에서의 생활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너무 많고, 주택과 업무공간은 늘 부족하죠. 출퇴근 교통난과 대인관계 스트레스로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우수한 일자리와 산업 혁신, 창의적인 문화 활동은 여전히 도시 집중성이 강합니다. 특히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는 인구 성장이 멈춘 뒤에도 계속 발전하면서 글로벌 혁신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주목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미국 시카고대학의 루이스 베텐코트입니다. 그는 전 세계 도시의 빅데이터를 모아 분석함으로써 세상을 거대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 같은 통찰을 얻게 되었죠.
베텐코트는 도시들의 인구 규모(X축)와 혁신 및 경제적 성과(Y축)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분석에 포함된 지표에는 특허 건수, R&D 투자, 가계소득, 1인당 임금, 기업 생산성, GDP 등이 있죠. 한 도시의 인구 규모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인프라 지표들이 일정한 패턴으로 변화함을 보여줍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지표 Y는 도시 인구 P에 따라 아래와 같은 스케일링을 보여줍니다.
다음은 베텐코트가 밝힌 스케일링 지수의 일부입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부분은 Y 지표와 스케일링 지수 β 입니다. 지역/국가에 따라 지수의 베타값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출처: Bettencourt, Luís MA, et al. 2007. "Growth, innovation, scaling, and the pace of life in citi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4(17): 7301-7306)
복잡해 보입니다만, 실은 아주 단순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Table 1 에서 총 GDP의 경우 중국 사례에서 발견한 스케일링 지수 β = 1.15입니다. 이는 도시의 인구가 두 배 증가하면 그 도시의 GDP는 대략 2^1.15 ≈2.23배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르면, 도시 규모가 커지면서 증가한 인구보다 GDP가 더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이렇게 도시에서 사람의 수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부와 혁신은 복리로 쌓이게 되죠.
아래선형 성장의 예도 들어보겠습니다. Table 1 에서 전력선의 길이의 경우 스케일링 지수 β = 0.87입니다. 한 도시의 인구가 두 배 증가하면 그곳의 기업과 가구를 서비스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선의 길이는 2^0.87 ≈1.83배 정도 증가합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양보다 전력선을 포함한 인프라의 길이는 다소 덜 늘어나도 괜찮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용하면 인프라 서비스의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내 집의 면적이 가구원수 증가에 비례해서 커질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죠.
이 내용을 보다 일반화해서 정리해 볼까요? 아래 세 가지로 말이죠.
첫째,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혁신과 경제 성과도 함께 증가합니다. 대도시는 소도시에 비해 1인당 특허 건수가 월등히 많고, 근로자의 평균 생산성과 가계소득도 높으며, 창조적 인재의 풀과 일자리의 다양성, 사회적 상호작용의 양과 질도 훨씬 큽니다. 데이터의 전반적인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소도시나 농어촌의 생활환경이 도시보다 열등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둘째, 더 흥미로운 발견은 도시 규모와 혁신의 관계가 단순 비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도시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면 혁신과 경제 성과는 2.5배나 3배, 혹은 그 이상으로 증가하는 비선형성, 즉 슈퍼리니어(초선형, superlinear)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도시가 커질 때마다 혁신과 경제 성과가 비선형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베텐코트는 '스케일링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의 협력, 거래, 교환 등 네트워크가 폭발적으로 확장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과 조직, 행정, 심지어 데이터도 이러한 연결망의 구성원이 되면서 상호작용의 질과 양이 모두 급증하는 것이죠.
이런 작용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치 거대한 세포가 그 숫자를 늘리는 것과 비슷한 자가증식 패턴을 보입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그 속에서 개인과 기업이 활동을 통해 얻는 시간당 효용은 가파르게 증가합니다. 사실 이런 스케일링 프로세스를 가속화하기 위해서 도시를 지능화, 집약화하는 것이 요즘 말하는 스마트 시티의 핵심입니다.
셋째, 도시가 커지면 또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인프라와 서비스 제공의 효율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보죠. 단위 길이당 도로나 상하수도의 서비스, 또는 단위 인구당 학교나 편의점 운영의 효율은 이용자가 많은 곳에서 더 높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규모의 경제' 효과입니다. 기반시설은 한번 공급되면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일정 수준까지 늘어나도 고정 비용이 바뀌지 않습니다. 제한된 기반시설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공동구매 효과로 1인당 부담하는 비용은 더 낮아지고 서비스 효율은 더욱 높아집니다.
반면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수도, 전기, 가스, 치안 서비스 등의 1인당 공급 비용이 큰 도시보다 더 많이 듭니다. 작은 도시나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가 세수입 적자로 허덕이고 재정을 투입해야 할 곳에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 부의 축적과 효율성 향상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대도시가 소도시보다 많은 이점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나, 규모가 커질수록 새로운 문제들도 발생합니다. 도시가 이러한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세계 대부분의 도시들이 규모 확장과 다양성에 따른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교통체증, 주거비용 상승, 범죄율 증가, 질병 확산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 문제들의 스케일링 지수 β는 1보다 큽니다. 이는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 빈도와 심각성이 인구 증가율을 상회한다는 의미입니다. 베텐코트의 연구에 따르면, 에이즈 발생의 β값은 1.23이며, 강력범죄의 β값은 1.16입니다. 이러한 지수의 실제 영향을 코로나19 초기 상황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 4월 말 기준, 미국 전체 코로나19 확진자의 16.2%가 뉴욕시에서 발생했으며, 뉴욕과 뉴저지주를 합하면 이 비율은 40.8%에 달했습니다. 이는 두 지역의 인구가 미국 전체의 8.6%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이들 도시는 규모가 크고 인적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신천지 집단 감염이 발생한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 부산, 성남, 인천 등 대도시들이 초기 확진자 수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나아가 도시 규모의 증가가 인프라 효율성을 높인다고 했지만, 실제 에너지와 수자원 등의 소비량은 인구 증가율을 초과하여 증가합니다. PNAS 저널에 게재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 인구의 40%가 상위 1%에 해당하는 50개 도시에 거주하며, 이들 도시가 교통 부문 에너지 수요의 80%를 차지합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아프리카의 한 도시가 인구 1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성장할 때, 에너지 수요는 34배나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Prieto-Curiel et al., 2023).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 아프리카 카의 도시 성장은 자원 소비 측면에서는 지속가능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전 지구적 도시화를 촉진한 핵심 요인은 인재, 자본, 인프라의 공간적 집중입니다. 1800년대를 기점으로 생산방식이 변화하면서 이러한 요소들이 도시에 집중되었고, 이는 전례 없는 규모의 부를 창출했습니다. 도시 규모가 확대될수록 네트워크 연결성과 혁신 활동이 인구 증가율 이상으로 늘어나는 비선형적 성장이 나타나며, 이것이 바로 스케일링 법칙입니다. 이로 인해 도시는 혁신의 중심지이자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성장은 심각한 문제들도 동반하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도시 성장의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를 상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