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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나를 위로하는 법 (1)

낡거나, 기다리거나, 욕망하거나

by 도시관측소
반려동물은 이름을 붙이는데, 내가 살아온 집들은 왜 이름이 없을까요?


오늘은 "제1의 공간", 집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집을 구한다는 것은 설레고 멋진 일입니다. 특히 서울 같이 큰 도시에는 여러 취향을 담은 다양한 평면과 입지의 집들이 있죠. 하지만 집 구하기는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마음 놓고 "내 집"이라 부를만한 보금자리는 참 드물고 비쌉니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그릇된 정보와 힘든 계약 관행을 만납니다. 각종 집 계약 사고나 유지관리 이슈로 시달리거나 지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집을 대충 골랐다가는 나다움을 갉아먹는 끔찍한 박스 속에 갖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특히 대규모 신축 아파트가 아닌 작은 필지에 지어진 단독이나 다가구 주택, 중저층 빌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거친 민낯은 더욱 가깝게 느껴집니다.


여기서는 서울과 그 근처에서 집을 찾고 집을 가꾸기 위해 공간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보았습니다.




우선 공간 디렉터이자 작가인 최고요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반려동물은 이름을 붙이는데, 집은 왜 이름이 없을까요?" 이 말을 듣고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저도 반려견(드래곤)과 자동차에 이름을 붙이지만, 매일 사는 집을 특별하게 부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최고요 작가는 지금까지 살아온 집에 '고요의 집' 시즌 1, 2, 3, 4 같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내 집이 아니어도 나다운 집에 살겠다는 투지와 결심이 느껴집니다. 집은 내 몸과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죠. 머릿속이 어지러운 사람은 집 또한 정돈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집은 나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잘 어울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 집에서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립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이런 느낌을 좀처럼 갖기 어렵습니다.


원래 나라는 사람 안에는 낡고 익숙한 것들이 많습니다. 정작 '새것'은 드물죠. 그래서 오래된 집에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런 집은 걸을 때마다 창문의 흔들거림이 느껴지고 추운 겨울에는 화장실에 난로를 틀어야 겨우 살만하죠. 그렇게 낡아서 나의 손길이 세심하게 닿아야 비로소 살만한 집의 모양새를 띱니다. 낡음이라는 시간을 잘 견뎌낸 집이 멋진 집입니다.


지금까지 '고요의 집'들은 대체로 낡은 집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한데 크기는 크고 나의 취향을 반영할 여유도 있습니다. 최고요 작가에게 집이란 미학을 떠나 사는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멋스럽게 낡아가는 집입니다. 이런 집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집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최고요 작가에 따르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집을 가질 자격을 획득하는 길입니다.


영화 <집 이야기> 속 아버지와 은서의 이야기는 집이 가진, 조금은 슬프지만 단단한 치유의 힘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디지털 도어록 대신 아날로그 자물쇠만 고집하는 출장 열쇠공이고, 딸 은서는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종이 신문에 글을 쓰는 기자입니다. 현기증 나는 세상의 속도에서 한발 밀려난 두 사람은 서로의 거울인 줄 모른 채 등을 돌리며 각자 살아갑니다. 가족이 모두 떠나버린 텅 빈 집. 아버지는 그곳에서 창문도 없는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시간이 멈춘 박제처럼 집을 지킵니다. 은서는 그런 아버지의 고집이, 가족 해체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은 그 낡은 집이 싫어 도망치듯 떠났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갈 곳 잃은 은서는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슬리퍼 신지 마라, 무좀 옮는다"라는 아버지의 투박한 한마디.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은서는 아버지의 진심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토록 미련하게 집을 지켰던 이유는, 흩어진 가족이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를 실낱같은 희망, 그 미세한 온기를 유지하기 위함이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지킨 것은 주택이 아니라, 가족이 하나가 될 가능성이었습니다.


"집이 어디로 가. 거기 그대로 있지..."

"그렇네, 떠나는 건 사람인데."


죽음을 앞두고도 집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말처럼, 남겨진 채 변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것이 집입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은서는 텅 빈 집에서 아버지가 남긴 김치에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집을 지킨다는 건 사실 무척 미련하고 티가 나지 않는, 또 고집스러운 일입니다. 서로 참 달라 보여도 가족은 서로 닮습니다. 미련하게 지켜야 가까스로 가족의 무늬를 이어볼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이 영화 속 집입니다.


방송인 박나래의 집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강렬한 울림을 줍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나래바’라고 부릅니다. 가장 사적인 나만의 공간이 집인데, 남들이 와서 술을 마시는 바(bar)라니요. “남들은 심플한 게 좋다지만, 저는 ‘투 머치(Too Much)’가 좋아요. 다들 집을 비우라고 할 때, 저는 욕망으로 꽉 채우고 싶거든요.” 그녀는 세상이 예찬하는 미니멀리즘을 거부합니다. 집에서 술을 마셔도 밖에서 마시는 분위기를 내고 싶고, 집은 연출된 분위기가 최우선이며 인테리어의 완성은 조명발이기 때문이죠.


“홍콩 영화 <화양연화> 속 술집처럼 야릇하고 붉게”, “발리 리조트처럼 나른하고 이국적으로” 집을 꾸몄습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화려한 조명이 감도는 그녀의 집은 조용한 집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낯설지 모르지만, 그녀에겐 나래바가 "나만의 병원이자 주유소"입니다. 그녀에게 좋은 집이란 나와 내가 초대한 게스트의 흥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해방구이자 나를 표현하는 궁극의 무대입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기에 어떤 가식도 없이 나다움을 펼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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