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공간 - 개념과 특징

by 도시관측소
제4의 공간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게 만든다. 단절이 곧 성장이 된다.



저는 『도시 관측소』에서 용감하게도 '제4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비록 설익은 측면이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여러 독자들이 응원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나 커뮤니티 공간이 바로 제4의 공간이었다는 깨달음을 나눠준 분도 계셨습니다. 책을 쓰니 이런 점이 좋습니다. 생각에 반응을 해주는 분들이 생기고, 저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4의 공간을 보다 분명한 개념이자 공간적 실체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바로 오늘, 부산의 한 고등학생에게 이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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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희는 '제4의 공간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게 된 부산국제고등학교 OOO입니다. 저희는 이번에 교수님의 『도시 관측소』라는 책을 읽고 위와 같은 주제를 선정하여 교과 융합 주제 탐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서 외에는 관련 자료를 찾기가 어려워 조심스럽지만 이메일을 남겨봅니다. 제4의 공간과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나 책을 쓰실 때 참고하신 자료 또는 생각하셨던 바를 답장 주시면 저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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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고등학생들의 탐구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제4의 공간과 관련한 자료나 생각했던 바를 적어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책 출판 후 반년간 미뤄두었던 숙제를 이번 연재로 마무리해 보고자 합니다. 아래는 제4의 공간에 대한, 더 구체적이고 훨씬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두 편의 글로 나눠서 써볼 요량입니다.



해방촌 꽃집과 북촌 아파트멘토


제4의 공간이란 개념을 처음 떠올린 건 해방촌의 한 꽃집 때문입니다.


해방촌은 사고파는 일 모두 쉽지 않은 곳입니다. 상당한 수고를 감내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역에서도 한참을 걸어 언덕을 올라야 하고, 좁은 골목은 차 한두 대가 겨우 지나갑니다. 주차는 늘 골칫거리죠. 이태원과 맞닿아 있지만 번화함은 언덕 너머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유동인구가 적고, 손님 발길이 뜸한 날도 많으며, 이웃 가게들은 예고 없이 문을 닫기 일쑤입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은 어쩌면 장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손님이 뜸한 시간, 가게의 여백으로 주인의 시간이 스며듭니다. 어쨌든 모든 가게는 주인을 닮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생계를 위한 일과 마음이 향하는 일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어느 겨울날, 저는 해방촌을 찾았습니다.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골목을 서성이다 우연히 한 꽃집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연말이 가까워 꽃다발 하나쯤 사고 싶었습니다. 가게 내부는 주인 혼자 가꾸기 알맞을 만큼 아담했습니다. 폭은 겨우 3미터. 사방에 꽃 소재와 소품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저에게, 바쁘게 다발을 만들던 사장님은 무심한 투로 툭 말을 건넸습니다. 위층으로 한번 올라가 보라는 손짓과 함께.


“위층이요?”


그가 가리킨 좁다란 회전 계단에 발을 디뎠습니다. 계단 폭이 좁고 층고가 낮아 몸을 웅크려야 했습니다. 가게에 딸린 공간이니 꽃 자재나 샘플이 쌓여 있지 않을까, 아니면 주인의 쉼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단을 한 바퀴 반쯤 돌아 2층에 도착하자 분주한 아래층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깨끗하게 정리된 바닥과 새하얀 벽, 그리고 그 벽을 비추는 조명 아래 몇 점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오렌지 자스민과 소엽맥문동 화분이 네댓 개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여기… 뭐 하는 데야?”


비밀스러운 갤러리에 초대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벽의 사진들에는 거대한 나무가 선 들판, 안개 낀 호숫가의 실루엣이 사람의 형체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자연의 원초적 감성과 인간의 관계를 포착한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꽃집에 이런 사진 전시라니.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공간에 관한 궁금함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는 원래 꽃보다 자연과 사람을 예술적 구도로 바라보는 일에 더 마음이 갔다고 했습니다. 운 좋게 해방촌 언덕에 자리를 얻었고 생계를 위해 꽃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2층에서는 마음 맞는 사진작가나 예술가 지망생들과 작은 전시를 열거나 사진 촬영법을 나눈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명확했습니다. 꽃집은 생계를 위한 루틴, 갤러리는 하고 싶었던 일을 펼치는 몰입과 실험의 장소. 정해진 룰은 없습니다. 대중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작업에 집중하는 공간입니다. 전시를 하다 작업실로 쓰고 다시 사진 도구를 점검하는 가변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처음 온 손님이 2층의 존재를 알 턱이 없습니다. 간판도 없고, 영업장을 가로질러 좁은 회전 계단을 오를 마음을 먹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주인의 초대를 받아야 비로소 엿볼 수 있는 한정판 갤러리이자, 취향이 맞는 이들이 모여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적 성장의 공간입니다. 꽃 판매에는 별 도움이 안 될, 비경제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곳 주인은 사회가 규정하는 '꽃집 사장님'이란 틀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는 꽃을 팔고 사진을 찍고 작품을 전시하는 자신만의 실존으로 공간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꽃집은 무릇 이래야 한다는 규범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진짜 업(業)은 소박한 공간을 유지하며 배우고 실험하고 자아를 확장하는 일입니다. 그 수고를 온전히 감당하며, 공간과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비슷한 경험을 북촌에서도 했습니다. '아파트멘토(Apartmento Seoul)'라는 공간을 만나면서 말입니다.


이곳 역시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과 언덕, 한옥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길을 지나 북촌 골목 깊숙이 자리합니다. '라이프 큐레이션 살롱'을 표방하는 이곳은 커뮤니티 공간이자 북클럽이고, 피치업 무대이며, 전시장이자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뉴스쿨(New School)이기도 합니다.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층성을 갖고 있습니다.


반층 내려온 공간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밀조밀 공간이 꽤 많습니다. 현관에서 한번 꺾어 들어가면 큰 홀이 있습니다. 그곳에 한 권 한 권 선택된 책들, 벽에 걸린 작품들, 소규모 모임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 새로운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구석의 또 다른 방. 이들 공간과 소품 모두 '누군가의 깊은 취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북클럽이 열립니다. 단순히 책을 같이 읽는 게 아닙니다. 매달 선정된 책을 읽거나 저자의 북토크를 들으며 생각을 나눕니다. 피치업 세션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디자이너, 건축가, 아티스트 등—을 초대해 그들의 삶과 철학에 대해 듣습니다. 뉴스쿨 프로그램에서는 건축, 미술, 라이프스타일을 체계적으로 배웁니다. 모든 활동이 '성장'을 지향합니다.


해방촌 꽃집처럼, 아파트멘토도 선별된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누구나 머무르게끔 허락되진 않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혹은 매주 같은 시간에, 때로는 계절마다 한 번씩 모입니다. 반복 속에서 관계가 깊어지고, 생각이 축적됩니다. 이곳의 운영자는 성장 커뮤니티의 빌더입니다.


북촌 깊숙이 숨어 있는 이 공간은 찾아오는 수고를 감내한 이들에게만 열립니다. 저녁 시간에 깊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책과 생각을 마주하고,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이들과 연결되는 경험으로. 이곳은 소수의 진지한 참여자들과 깊이를 만들어가는 성장 살롱입니다.


우리에게는 집, 직장, 카페를 넘어선 새로운 공간이 필요합니다. 타인과의 교류에 앞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곳. 생계와 성장, 휴식과 놀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선택된 이들과 느슨하게 연대하는 공간. 그것이 바로 '제4의 공간'입니다.



제3의 공간은 왜 밀려났는가


제4의 공간 이전에 제3의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는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가 1989년 저서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집과 직장 사이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수다를 떨고 관계를 맺는 카페나 펍이 공동체를 살찌운다고 주장했습니다. 스타벅스가 이를 차용해 '제3의 공간'이란 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전통적 제3의 공간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올덴버그 자신도 서구 사회 전반에서 제3의 공간이 쇠퇴하며 고립과 분열이 심화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우연성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느슨하고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공간도 영향받은 것입니다. 멈춰 서서 이웃과 이야기하고, 타인과 사소하게 부딪히는 일이 점차 불편한 마찰이 되었습니다. UCL 노리나 허츠가 말했듯,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 접촉 없는 세계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디지털 기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메신저는 물리적 만남 없이도 무수히 많은 소통을 가능케 했고, '가상 공간'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 현존감과 비언어적 교감을 결여해 전통적 공간의 완전한 대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제3의 공간이 가진 교류와 휴식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변화된 니즈—프라이버시, 안전, 생산성, 취향—를 충족하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해졌습니다. 대중 소비와 문화에 스스로를 타협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대 들어 상황은 더욱 극명해졌습니다. 초연결 사회지만, 정작 사람들은 과도한 연결에 이미 지쳐 있습니다. 조사마다 다르지만, 직장인 4분의 3 이상이 항상 상사나 동료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저도 늦은 밤이나 주말에 학생 연구원들에게 톡을 보내는 것을 자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압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됩니다. 회사에서는 꽤 많은 직원이 승진이나 팀워크보다 혼자 일할 수 있는 재택근무를 선택합니다. 우리 시대 디지털 기술과 함께 가능해진 "Always-on" 문화의 폐해가 심각합니다.


SNS에 사진을 올릴 때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제3의 공간마저 '인스타그래머블'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이쯤 되면 휴식과 취미마저 또 다른 노동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제 연결 피로를 넘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내면을 키우는 공간을 찾습니다.


제3의 공간이 타인과의 교류와 소속감을 중시했다면, 제4의 공간은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물리적으론 타인과 함께 있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나에게 집중합니다. 요즘 관심 자체가 희귀자원입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관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집이 안식과 프라이버시를, 직장이 생산과 업무를, 카페가 교류와 환기를 제공한다면, 제4의 공간은 몰입과 축적의 장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공적 자아를 내려놓고 사적 자아를 재충전합니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땀 흘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능동적 성장의 공간입니다.


제4의 공간은 의미있는 루틴과 자율적 몰입을 통해 더 가치 있는 '나'를 만드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도한 사회적 기대나 관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내면의 욕구에 귀 기울입니다. 사적 자아인 나의 육체적, 정신적 단단함을 다집니다. 내 몸과 마음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이를 통해 주체적으로 나의 재능을 발휘합니다.


제4의 공간을 만드는 특징들


제4의 공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는 반복성(Ritual)입니다. 한 번 가보고 마는 곳이 아닙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 요가 수업, 토요일 오전 도자기 공방처럼, 삶에 리듬을 만드는 의미 있는 루틴이 자리 잡은 곳입니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는 이런 반복적 행위를 '상호작용 의례'라 불렀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활동을 반복하며 교감할 때 우리 안에 정서적 에너지가 쌓인다고 설명합니다. 반복을 통해 우리는 자기 효능감과 활력을 얻습니다.


이 반복성은 단순한 습관과 다릅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개찰구를 찍거나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는 게 거의 무의식적이고 자동화된 행동이라면, 제4의 공간의 반복은 '나는 왜 여기 오는가'에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나를 돌보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함께 성장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동기화합니다. 반복 속에서 우리는 내 안의 에너지를 채우고 진짜 나를 만납니다. 북촌 아파트멘토의 북클럽 멤버들처럼, 매달 같은 날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 반복이 곧 성장의 리듬이 됩니다.


둘째, 축적성(Accumulation)입니다. 소비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쌓입니다. 러닝 크루에서 달릴수록 체력과 지구력이 늘고, 목공방에서 나무를 깎을수록 손의 감각과 도구를 다루는 기술이 정교해집니다.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면 텍스트를 읽는 깊이와 생각을 표현하는 언어가 풍부해집니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의 인적자본론을 개인 내면으로 확장하면, 제4의 공간은 '내적 자본' 축적을 위한 시간 투자입니다. 이건 돈으로 환산되지 않을 수 있지만, 삶의 만족도와 재능이란 무형 자산으로 쌓입니다. 러닝 크루에서 50회 달린 사람과 5회 달린 사람의 차이는 기록만이 아닙니다.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는 지혜, 고통의 순간을 견디는 정신력, 완주 후 느끼는 성취감 등 다층적 역량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목공방에서 의자를 만들어본 사람은 단순히 기술만 배우는 게 아닙니다. 나무의 결을 읽는 감각, 실패한 작품을 대하는 태도,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는 자부심—이 모든 것이 쌓여 '나는 이런 사람'이란 내면의 힘이 됩니다. 아파트멘토에서 6개월간 북클럽에 참여한 사람은 단순히 책 6권을 읽은 게 아닙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렌즈,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포용력,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는 언어—이 모든 것이 축적됩니다.


셋째, 몰입을 위한 단절(Immersion)입니다. 제4의 공간은 외부 방해를 최소화합니다. 창문을 없애 오직 책에만 집중하게 하거나, 어두운 조명 아래 차의 향에 빠져들게 만듭니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 상태에 이르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하나는 명확한 목표입니다. 제4의 공간은 '깊은 집중 독서', '완벽한 도자기 한 점 완성', '10km 러닝 기록 단축'처럼 명확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다음은 즉각적 피드백입니다. 목공방에서 나무를 깎는 순간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 요가 동작에서 몸의 균형이 잡히는 느낌, 그림을 그리며 색이 캔버스에 스며드는 변화—이 모든 것이 '지금 잘하고 있다' 혹은 '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실시간으로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도전과 기술의 균형입니다. 제4의 공간은 너무 쉬워 지루하지도, 너무 어려워 좌절하지도 않도록 개인 역량에 맞는 과제를 제공합니다. 초보자에겐 간단한 접시 만들기부터, 숙련자에겐 복잡한 형태의 작품까지 각자에 맞는 도전이 준비됩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면, 제4의 공간은 깊은 몰입을 촉진하는 물리적 장치가 됩니다.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고, 내가 집중하는 일과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넷째, 모호한 경계 속 선별된 커뮤니티입니다. 제4의 공간은 이중의 특성을 지닙니다. 먼저, 경계의 모호함입니다. 이완과 몰입, 재미와 성장, 취미와 전문성, 노동과 놀이—기존의 명확했던 구분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집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를 "자발적이며 목적 그 자체인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제4의 공간에서의 활동은 노동이나 단순 소비, 혹은 킬링 타임과 다릅니다. 진지한 놀이에 더 가깝습니다.


도자기를 빚는 행위가 여가인지 예술인지, 러닝이 운동인지 사교인지, 명상이 휴식인지 수련인지의 구분이 흐려집니다. 해방촌 꽃집 주인처럼, 생계를 위한 일과 마음이 향하는 일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레 섞입니다. 이 모호함 속에서 사람들은 목적 지향적 휴식을 경험합니다.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쉬는 게 아니라, 구체적 활동을 통해 자아를 충전하는 생산적 휴식입니다.


동시에, 제4의 공간은 선별된 커뮤니티를 형성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입니다. 제3의 공간이 우연한 만남과 사회적 다양성의 교차를 강조했다면, 제4의 공간은 선택된 동질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폐쇄나 배타성이 아니라, 같은 관심사와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 간의 느슨하지만 의미 있는 연대입니다.


해방촌 꽃집 2층에 초대받은 사진작가들, 북촌 아파트멘토의 북클럽 멤버들, 도자기 공방에서 함께 흙을 빚는 사람들은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닙니다. 비슷한 삶의 방식과 분위기에 나의 관심을 두기로 선택한 이들입니다. 이런 커뮤니티는 개방적이면서도, 안전한 심리적 울타리를 제공합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 과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숫자나 데이터로 그날의 성취를 간직합니다. "오늘 ooo을 하며 8시간 집중했다", "이번 달 도자기 작품 5개를 완성했다", "러닝 기록이 5분 단축되었다." 이는 성취를 가시화하고 성장의 징표를 확인하는 잣대가 됩니다. 더 나아가 사용자는 공간을 실험실 삼아 자신에게 최적화된 루틴을 실험하고, 제4의 공간 운영자는 이런 실험을 지원하는 '성장 조교'이자 '질적 데이터 분석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다섯째, 응집력(Agglomeration)입니다. 제4의 공간은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자석처럼, 다른 제4의 공간들을 끌어당기며 군집을 형성합니다. 성수동과 연남동 골목, 제주 탑동로, 뉴욕 플랫아이언 지구가 특별한 이유는 하나의 멋진 공간 때문이 아닙니다. 누군가 마스터플랜을 세우지 않았지만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과 공간들이 모여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도시 이론가 리처드 플로리다는 창조계급 이론을 통해,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같은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이면 그 지역이 문화적·경제적으로 활성화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보헤미안 지수(Bohemian Index)'란 개념을 제시하며, 한 지역에 예술가와 창작자가 많이 모일수록 개방적 환경이 조성되어 더 많은 인재를 끌어들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제4의 공간의 응집력도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깊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입니다. 자기 내면을 탐구하고, 진정성 있는 삶을 추구하며, 지속 가능한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모이면,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비즈니스와 리테일도 자연스럽게 모여듭니다. 도예 공방 옆에 독립 서점이 생기고, 그 근처에 명상 센터가 들어서며, 길 건너편에 유기농 카페가 자리 잡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장과 내면', '지속 가능성', '진정성'이란 공통 가치를 공유하며, 방문객에게 단일 공간을 넘어선 성장 생태계를 제공합니다.


단순히 휴식이나 업무 효율을 위한 공간이라면 굳이 가까이 모일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4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몰입하면서도, 비슷한 감성을 가진 이들과 은은하게 연결되고 싶어 합니다. 오전엔 명상 센터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오후엔 도자기 공방에서 흙을 빚고, 저녁엔 독립 서점에서 책을 고릅니다. 연속된 경험의 흐름을 원합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말하는 취향 공동체 현상입니다. 그 결과 사람과 공간이 서로를 부르는 '스페이스 바이럴' 효과가 나타나고, 어느 임계점을 넘으면 새로운 지역성을 창조합니다.


뉴욕 플랫아이언 지구는 이런 응집력의 대표 사례입니다. 고급 헬스장 에퀴녹스, 실내 사이클링 소울사이클, 명상 앱 헤드스페이스의 오프라인 공간, 요가복 브랜드 알로 요가의 스튜디오, 홈 피트니스 페로톤의 체험관이 한 지역에 밀집하며 웰니스 허브로 부상했습니다. 제주 탑동로 역시 2014년 아라리오 뮤지엄을 시작으로 디앤디파트먼트, 프라이탁, ABC 베이커리, 프로젝트 목욕탕, 리플로우 등이 연쇄적으로 들어서며 '제주다운 감성의 재생 지역'을 만들었습니다.


제4의 공간은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더 강력해집니다. 다음 글에서는 사례 몇 곳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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