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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n 24. 2024

<인간실격>의 철학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아마도 나는 언젠가 마흔이 넘으면 서울이 아닌 어느 곳에 작은 내 집이 있고 빨래를 널어 말릴 마당이나 그게 아니면 작은 서재가 있고 아이는 하나 아니면 둘. 운이 좋으면 내 이름의 책, 전혀 안 팔리는 책이어도 좋은 그런 책이 서점 구석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런 사람이 돼있을 거라고 그게 실패하지 않는 삶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전부 다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중에 하나 아니면 두 개쯤 손에 쥐고서 다른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는 그런 인생 그게 내 마흔 때쯤의 모습이라고 그게 아니면 안된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무엇이 이토록 두려운 걸까요?

아버지 어쩌면 나는 아버지한테 언젠가 이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사는 내내 가장 두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 나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인간실격>의 여주 역을 맡은 전도연의 독백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거실을 지나던 중 TV에서 흘러나오는 이 독백을 들었는데,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나 역시 마흔이 넘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차마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이 드라마를 소개해준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넘긴 것으로 소임을 다 했다는 듯이 시청을 멈췄고 나는 정주행 모드에 돌입했습니다. 진도는 더디고 이렇다할 스토리도 없으며 내내 우울한 드라마, 이런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도저히 멈출 재간이 없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도 가수 김윤아가 부른 OST '붉은꽃 그늘 아래서'의 멜로디만 귀에 맴돌고, 꽤 오랜 시간을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알고 지내던 교수 친구에게 고백했습니다.

"나,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 같애."

"니가 아무것도 아니면, 나는 지렁이냐?"

"농담 아니야. 나 진지해."

"그럼 뭐가 됐어야 하는데?"

"글쎄.."


나는 무엇이 됐어야 할까요? 무엇이 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걸까요? 인생의 어느 순간에 길을 잘못 들은 것일까요?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려면 가장 첫 번째 질문, 무엇이 됐어야 했는지부터 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막연히 인기소설가라고 답하고 싶지만, 인기소설가가 됐으면 어떤 무력감에도 빠지지 않고 성공했다고 자부하며 매일이 행복할까요?


게다가 되고 싶은 것과 됐어야 하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 가지가 일치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두 가지 길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습니다. 되고 싶은 것은 야구선수, 됐어야 하는 건 농구선수인 마이클 조던처럼요.  

되고 싶은 건 욕망이지만, 되어야 하는 건 운명에 가깝습니다. 만약 운명이 확실히 있다면 이미 모든 사람들은 '되어야 하는 것'으로 다가가는 중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도, 불만일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운명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되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되고 싶은 것만 남습니다. 끝인가요? 아닙니다. 되고 싶은 것은 계속 변합니다. 1억을 모으면 10억이 모으고 싶은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1차 되고 싶은 것이 됐다고 만족하고 내내 행복한 인간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뇌는 만족과 행복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뭣하나 부족할 게 없어 보이는 거부들이 익스트림 게임에 심취하고,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고, 남극 탐험을 하고, 우주여행에 도전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고 말했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평안한 상태가 되면 곧 권태에 사로잡힌다는 겁니다. 되고 싶은 것은 많은데 그게 끝나지 않는다는 딜레마가 있는 것이죠. 원래 욕망이라는게 끝이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아무 이유없이 돈이 아닌 어떤 것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돈도 아니고 이기고 지는 것도 아닌 작고 이상한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처음 만나는 세상을 들어가 보았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무슨 기대를 했던 걸까요? 어디서부터 잘못 걸어온 걸까요?

마음을 따라 열심히 따라가보았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단 한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한걸음도 멀어지지 못한 채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인간실격>의 남주 류준열의 독백입니다. 뭔가 나아진 삶을 기대하고 노력해봐도 늘 제자리를 맴돌 뿐이라는 슬픈 고백입니다. 역시 내 처지와 똑같습니다. 이런 저런 노력을 해봤지만 조금도 나아진 기분이 들지 않습니다. 한 계단 올라가기는 커녕, 계단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이제 불가능하게 보일 뿐입니다.


행복은 성취가 아니라 만족에 있고 삶의 의미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하지만, 이런 명언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실패자의 자기만족, 정신승리로 보일 뿐입니다.

실제 심리학 분야에서는 긍정적 마인드나 자기만족이 실제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정신승리는 정신승리일뿐, 해피이즘과 같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만들어낸다는 가설입니다.


심리학 교수이자 주관적 행복의 권위자인 에드 디너는 '행복 점수가 높은 대학생이 학점도 높은 경우는 드물다'면서 기쁨에도 그늘이 있다는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심지어 주관적 행복이 행복의 척도로 타당한지 의심합니다. 매일 100대씩 맞던 사람이 10대씩 맞게 돼서 과거보다 행복해졌다고 주장한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어떤 모습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이를 달성할 경우 행복해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행복에 대한 인식 자체가 틀린 것이라면 '되고 싶은 모습' 역시 왜곡돼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한정 되고 싶은 것을 향해 노력하지도 말고, 자기만족에 안주하지도 말라면 뭘 어쩌라고?


"너무 애쓰지 마라. 내가 살아봤는데 그렇게 애쓸 필요 없더라."


영화 <퍼멕트맨>에서 설경구가 조진웅에게 던진 말입니다. 핵심은 '너무'입니다. 인생인데 당연히 애쓰고 살아야죠. 하지만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 여기에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노력하다가 어느 지점에서는 포기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사람들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지 또는 불행하게 할지 예측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되고 싶은 것에 지나치게 몰두하다가 완전히 엉뚱한 곳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아무것도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되고 싶은 것, 꼭 그게 아닐 수 있으니 초조해 할 필요 없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된다. 무슨 일이든 마음 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일본의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입니다. 이 잠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존경하는 까뮈 선배님의 말씀으로 긴 글을 마치겠습니다.


"행복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자꾸 파헤치려 하는 한 당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자꾸 찾으려고 하는 한, 당신은 절대 살아갈 수 없다."



그래도 저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습니다. ㅠㅠ 아래 링크는 '붉은꽃 그늘 아래서' 인간실격 Ost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US6onU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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