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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08. 2024

연약한 영혼이라도 있는 게 좋은 이유

'얼터드 카본(Altered Carbon)' 과 '공각기동대' 

학교 다닐 때 심리철학 시간 첫 수업은 팀 대 팀 토론으로 시작됐다. 수강생을 반으로 갈라, 영혼이 있다고 믿는 학생과 없다는 학생들이 '공격적으로' 서로를 반박하는 게임이었다. 고작 학생들의 논리가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만은 나름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모여든 전공자들이어서 논쟁은 꽤 흥미진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승패가 있는 게임은 아니었다. 하지만 3시간이 넘어 양쪽이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던지고 나니 강의실에는 어색한 고요가 흘렀다. 이때 교수님이 말했다.


"더 할 말 없지? 오늘 너네들이 한 말 중에 새로운 논리는 하나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야. 왜냐하면 심신이원론에 대한 논쟁은 이미 해소되었거든."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할 수 있는 논증은 끝난 상태, 어떤 논리를 펼치든 새로울 게 없는 상태를 철학적으로 '해소'되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자유의지 논쟁이고, 육체와 별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혼이 있느냐의 문제도 이에 속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발달과 AI의 출현으로 영혼의 문제는 다른 각도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미드 '얼터드 카본'의 핵심 설정은 영혼을 담는 디지털 장치 '스택'이다. 200년 후쯤 인간이 성인이 되면 왼쪽 사진과 같은 장치에 인간의 영혼을 옮겨 담아 오른쪽 사진과 같이 체내에 이식한다. 이렇게 되면 스택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지 않는한 인간은 죽지 않는다. 다만 육체가 쓸모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육체가 '카본'이다.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육체를 바꿔 탈 수 있다보니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인공적인 살인도 쉽지 않다. 그래서 폭행을 당해 심장이 뛰지 않아도 스택을 박살내지 않는한 가해자는 살인죄를 받지 않는다. 유기물손상죄가 성립할 뿐이다. 


이러한 설정은 여러 개의 부가적인 논쟁거리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스택이 복제되면 하나였던 영혼이 둘이 되는 것인데 내 영혼이 두 개라는 것이 납득이 되나? 실제 이 드라마에서는 한 범죄인이 스스로를 복제해 둘이서 협동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닌다. 그리고 하나가 죽임을 당하자 나머지가 스스로의 복수를 하겠다고 덤벼든다.


둘 때, 부자들은 정기적으로 공중에 떠있는 클라우드기지에 자신의 영혼을 백업해 둔다. 갑자기 스택이 손상돼 죽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대형사고로 죽게 돼도 몇 시간 정도의 기억만 잃게 된다. 이 경우 죽기 전의 '나'와 백업된 영혼을 가진 '나'는 자기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인가?


셋 째, 영혼이 복제되고 백업되다 보니 인공지능과 휴먼을 구분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인간과 디지털 지성체와 차이는 뭘까? 


 물론 이런 논쟁거리들은 잘못된 전제를 가정하고 있으니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술로 영혼의 백업이나 복제는 불가능하고 앞으로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너무 다행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술이 하루아침에 등장하는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영혼이 백업된다면? 여러 윤리학적 문제들을 미리 고민해 둬야 하지 않을까? 


'얼터드 카본'에 비하면 '공각기동대'는 훨씬 인간적인 픽션이다. 주인공 쿠사나기는 어려서 두뇌를 인공두뇌(전뇌)로 교체하고 전신이 로봇인 신체를 가지고 있다. 핵심 설정은 '전뇌'다. 

전뇌는 인간의 두뇌를 디지털화하여 사이버 공간과 연결할 수 있게 한 장치로 기존의 유기적 두뇌와 고도의 전자장치가 하이브리드된 개념이다. 전뇌를 가진 사람은 목 뒤에 코드를 꽂아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고 증강 현실(AR)과 가상 현실(VR)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렇다보니 전뇌는 해킹을 당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시각정보가 왜곡되고 의사에 반해 이상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영혼이 해킹 당하는 것이다. 


주인공 쿠사나기를 제외한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교체했기 때문에 전뇌를 가지고 있다해도 스스로 인간임을 확신하고 산다. 하지만 전신이 사이버네틱 기계로 만들어진 쿠사나기는 그녀의 신체 중에 유일한 유기체인 두뇌의 일부 속에 정말 영혼이 담겨 있는지 의심한다. 그래서 영어 제목이 'Ghost in the shell'이다. 


힐러리 퍼트남의 '통 속의 뇌'라는 사고실험이 있다. 인간의 두뇌가 몸에서 분리돼 생명유지장치에 의해 유지되면서 모든 신경이 컴퓨터에 연결돼 가상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 '뇌'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할 수 있을까? 없다. 하나 더, 실재와 가상을 구분하는 게 의미있을까? 


'통 속의 뇌'는 '고스트 인 더 쉘'과 거의 유사한 개념이다. 둘 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불편한 진실이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실제로는 거대한 기계에 종속돼 꿀꿀이죽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러나 불편해도 가능한 가설이다. 월등한 외계문명이 이미 지구를 정복했고 모든 인간들을 종속시키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우리를 관리하고 있다면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얼터드 카본'이나 '공각기동대' 모두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 영혼의 취약성을 드러낸 픽션들이다. 복제되고 해킹되고 오염된다면 그게 영혼이라 할 수 있나? 지금 테크닉으로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미 두뇌에 칩을 심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얼터드 카본'처럼 스택에 영혼을 입력하지는 못해도 '공각기동대'의 전뇌와 유사한 장치는 개발될지도 모른다. 기억의 확장이라든지, 네트워크에 직접 접속한다든지.. 


그러니 영원불멸하는 영혼은 믿지 말라고? 아니다. 해킹되고 복제될 정도로 취약한 영혼일지라도 있기만 하다면 좋을 것 같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왜?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면 뭐가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반론은 없다. 그래서 질문을 바꾼다. 나는 왜 영혼에 집착하나? 영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뭐가 다른데?


나의 삶은 의미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영화 드라마를 보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생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시간을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보냈다. 그런데 이 모든 작업은 '이유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애초에 없다면, 나의 모든 노력이 허사며 쓸데 없는 짓이 된다.


수학자가 난제를 풀때 가장 기막힌 장애물은 '답이 없을 수 있다'는 가정이다. 답이 있다는 확신만 있어도 그 과정은 훨씬 쉽다고 한다. 내 여정도 마찬가지다. 의미와 이유, 나의 우둔함으로 영원히 찾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있기만 하다면 내 모든 노력은 가치있다. 


나에게 영혼이란 죽고 나서 구천을 떠돌다 다른 육신으로 들어가 윤회하는 귀신 같은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모양새면 더 좋겠지만 그런 건 감히 바라지도 않는다. 믿지도 않는다.


나에게 영혼이란, 이유와 의미 그 자체와 비슷하다. 더 없이 많이 실패하고 굴복할지라도 결국에는 다시 일어나 완성되고자하는 노력과 욕망의 주체다. 


혹자는 묻는다. 영혼이 있다치고 그게 있다는 것을 알면 뭐가 좋으냐고?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냐고? 

모두가 좋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의 인생이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상관없다. 나한테 중요하고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프란츠 카프카


스스로 문학이어서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카프카처럼, 나는 영혼과 상관없이 존재하고 살아갈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당신의 세계가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재였으면 좋겠는가? 그 둘은 경험적으로 아무 차이가 없는데도? 그렇다면 당신은 영혼이 필요한 사람이다. 영혼은 그런 것이다. 진실이 의미를 찾게 된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것이다. 그것은 불멸하며,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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