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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Jul 05. 2024

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5

그라츠 바에 남은 손님은 시영과 영호 둘뿐이었다. 영호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바텐더에게 물었다.

"여기 몇 시까지 해요?"

바텐더가 못 듣는 것 같자 시영이 대신 대답했다.

"손님 없을 때까지. 갈래?"

"아니. 그러니까 좀 부담된다. 우리 때문에 퇴근 못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

"늦게까지 일하면 돈 더 주겠지?"

"솔직히 자신 없어."

"왜 니가 자신 없어? 니가 여기 사장이야? 혹시 여기도 샀냐?"

"아니. 그녀하고 잘 돼도 또 잘 안될 것 같다고."

"아, 그 얘기? 야, 이시영, 그런 건 일단 사귀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아."

"아니야. 미리 고민하는 게 맞아."

"네 결혼 때문에 그래?"

"응. 결과적으로 잘 안됐잖아."

"미리 고민하면 다 잘 될 것 같아?"

"좀 낫지 않을까?"

"XX한다. 그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겠니? 너 말이야. 내가 1시간 후에 뭘 할지 알아?"

"몰라."

"당연히 모르지. 그럼 그녀가 10분 후에 뭐하고 있을지 알아?"

"모르는데. 자고 있지 않을까? 논문 쓰려나?"

"거봐. 10분 후에 사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지금 고민한다고 안될 인연이 잘 되겠냐고?"

"..."

"그건 그렇고, 너 결혼한 거 말했어?"

"아니. 그런 말하면 부담 되잖아."

"요즘 세상에 한번 다녀온게 뭐 대수라고 부담이 돼. 그래도 잘 안 했다. 그거 말하면 말하는 대로 유세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솔직히 돌씽이 훈장은 아니지. 그런데 그냥 알 수도 있겠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말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뉴스에서 봤을 수도 있고."

"설마."

"모르는 일이다. 너한테 관심있으면 인터넷에 검색할 수도 있고 검색하면 네 이름 나오잖아. 인터넷 뉴스에 너 결혼한 것도 나왔고."

"그런 것도 검색돼?"

"당연하지. 너 결혼할 때 인터넷 언론사 왔다며?"

"이름도 모르는 곳인데."

"요즘 누가 언론사 이름보고 기사 보냐? 여튼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 쓰라고."

"어떻게?"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런데 혹시 너 결혼한 것만 알고 이혼한 건 모르는 거 아닐까? 그래서 철벽 치는 걸 수도 있잖아."

"아니야.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아니긴, 딱 보니 그렇네. 그런 거에 엄청 민감한 사람들 있어. 이상한 점 없었어?"

"전에 이런 말을 하기는 했어. 날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그래서?"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이 바보가? 그랬더니, 뭐라고 불러?"

"그냥 안 불러. 보니까 딱히 호칭이 필요없어도 되더라구. 멀리서 부를 일만 없으면."

"너는 뭐라고 부르는데?"

"나도 별로, 그냥 선생님."

"선생님 같은 소리한다. 너네가 무슨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냐? 이선생님, 김선생님 하게?"

"김씨인거 어떻게 알았어?"

"김씨야?"

"응."

"이름은?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닐 듯."

"누군데?"

"이름까지 말하는 건. 여튼 넌 모르는 사람이야."

"내 생각에는 말이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 너네 관계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 같아. 역으로 좀 더 진행하고 싶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일단은 말이야. 너 이혼한 것부터 말하는게 낫겠다."

"결혼도 말 안 했는데."

"그니까 한번 다녀왔다, 이런 식으로 가볍게 툭. 결혼해 봤는데 금세 끝났다. 혹시 알아? 그쪽도 한번 다녀왔는지."

"그럴 수도 있나?"

"당연하지. 요즘 결혼하고 3년 되기 전까지는 혼인신고도 안 한다더라."

"난 했는데."

"너네는 인수합병이나 다름없으니까 계약서 쓰는 거고. 어차피 집안끼리 정한 정략결혼이었잖아."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럼 연애한 적 있어? 썸 탄적은, 없지?"

"좋았을 때도 있어. 나 처음 책 냈을 때 그게 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더라구. 잠시지만."

"그런 적이 있었어? 하긴, 네 책이 은근 읽는 맛이 있지. 그래서 나도 완독했잖아."

"정말? 다 읽었어?"

"전부 다는 아니고. 대충은 봤어. 그리고 평상시 네가 했던 말들이 많아서... 여튼 그게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거지?"

"알고보니 와이프가 사람들 시켜서 아름아름 사 모으게 했던 거더라구. 눈치 못 채게 조금씩, 여러 곳에서."

"헐. 진짜?"

"요즘 책이 너무 안 팔리니까 1주에 몇 백 권만 팔려도 인터넷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른다고 하더라. 나도 몰랐어. 그래도 감동이었어. 그 정도로 내 생각해 준 사람은 와이프가 처음이었거든."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알게 됐어."

"그래서, 말했어?"

"왜 그랬냐고 물었지."

"뭐라는데?"

"책이 좋은데 너무 안 팔려서 화나서 그랬대."

"대박. 역시 스케일이 남 달라. 인정. 그 정도면 감동할 만하다."

"맞아. 그때 좋았어."

"결혼 잘 했네. 근데 왜 헤어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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