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미인계

by 시sy

박민혁은 날 때부터 부자였다. 할아버지가 미리 나눠준 유산 때문이다. 박민혁의 아버지, 박장우는 박민혁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부자다. 부친의 유산을 부동산에 투자해 수십 배로 불렸다.


만약 포에버월드만 없었다면 그 모든 재산은 대부분 박민혁의 차지였다. 하지만 박장우는 죽어도 죽지 않았다. 법적으로 사망신고까지 마쳤지만 그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지 못했다. 망할 스위스 은행 때문이다.


“미쳐버리겠네. 지사장님 정말 방법이 없어요?”


박민혁은 모털 컴퍼니 한국지사장 주인호에게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있다면 벌써 알려드렸을 겁니다.”


주인호는 VVIP고객인 박민혁에게 솔직하게 답했다.


“하나만 확실히 하죠. 지사장님은 누구편입니까? 아버지에요? 나에요?”

“박장우 회장님은 포에버월드 거주민이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데요. 그런데 누구편이라니요? 굳이 그걸 제 입으로 말한다는 게...”


“하지만 죽은 것도 아니에요. 최소한 나한테는. 죽은 사람이 저렇게 살아있는 아들을 불러다가 호통을 치나요? 꿈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전화를 걸어서. 기술이 인류를 망친다니까. 이딴 건 왜 개발해서.”

박민혁은 흥분했다. 그러나 곧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여유를 찾아야 한다.

“커피 좀 주세요.”


주인호가 호출기를 눌러 음료를 주문하자 곧 차가운 덧치커피가 얼음잔에 서빙됐다.


“어떻게 속 터지는 건 아시고. 흐흐.”


차가운 유리잔에 담긴 커피를 꿀꺽 마시니 머리가 리셋되는 느낌이다.


“내가 몰라서 그러는데요. 아버지 의식이 포에버월드로 전송될 때 모든 기억도 같이 수퍼컴퓨터에 업로드된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러면 스위스 은행계좌하고 패스워드도 다 거기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시스템 관리자가 보면 되는 거 아닌가? 혹시 거주민의 기억을 보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민혁은 나름 나이스한 솔루션을 제시했다고 생각하고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지현우 팀장이 설명할 겁니다.”


주인호 지사장은 비전문가가 대충 설명하기보다 시스템 엔지니어가 직접 설명하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도 낫다고 판단했다.

곧 지현우가 불려왔다. 박민혁은 지사장실에서 아는 얼굴을 보자 겸연쩍게 웃었다.


“현우씨 또 보네? 이러다 정들겠어. 그러지 말고 우리 나가서 간지나게 한잔 할까?”


분위기나 좋게 해보자는 취지였지만 지현우는 근무 중이다. 지사장 앞에서 틈을 보일 수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에버월드 거주민의 기억이 수퍼컴퓨터에 업로드되는 건 맞지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지 복사라는 용어 들어보셨죠? 인간의 기억은 수십억 개의 뉴런이 상호작용으로 생성하고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수퍼컴퓨터라 해도 그것을 해독해 데이터로 변환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기억을 업로드하는데?”


박민혁이 물었다.


“피시술자의 뇌구조를 뉴런 단위까지 스캔해 그 상태 그대로 이미지를 떠서 업로드합니다. 그러면 ST칩 안에 생체이식된 코어 뉴런이 살아생전에 했던 방식대로 그 이미지를 해독합니다. 코어 뉴런이 일종의 암호키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현우는 박민혁의 속셈을 뻔히 들여다보면서 있는 대로 설명했다.


“이게 사실이에요?”


민혁은 안 믿어진다는 표정으로 주인호 지사장을 돌아봤다. 주인호는 끄덕였다.


“100% 사실입니다. 우리로서는 거주민의 방대한 기억을 일일이 데이터 처리하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포에버월드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거든요.”


민혁은 고개를 숙였다. 또 실패다.


“에이, 기술 좋아도 아무 소용없네. 쓸데없는 데로만 발달해서. 현우씨 퇴근 후에 뭐해? 아니다. 지사장님, 이 친구 내가 좀 빌려도 되죠? 그건 가능하잖아.”


주인호가 당황한다.


“지금요?”

“네, 지금.”


뻔뻔스럽다. 이젠 지현우도 당황스럽다.


“아직 퇴근시간 전인데요.”

“그러니까 빌리는 거지. 퇴근 후에는 자유의지니까. 안 그래요? 지사장님?”


주인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짓으로 지현우에게 퇴근해도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박민혁이 지현우를 데려간 곳은 나름 소박한 술집이었다. 건물 외형에 어울리지 않게 실내는 레트로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현우씨, 이런 데 처음 와 보지? 이게 실내 포장마차라는 곳인데 과거 우리 같은 청춘들이 이런 곳에서 낭만을 불태우곤 했지. 복고주의라고 할까.”


현우는 처음 와본 곳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동그란 테이블하며, 종이에 써 놓은 메뉴판, 가스불에 돼지고기를 굽는다.


“그럼 여기서 뭘 먹어야...”


현우가 메뉴판을 뒤적여 보지만 온통 모르는 음식들뿐이다. 민혁은 종업원을 부른다.


“오늘 닭똥집 있어?”


민혁의 주문을 들은 지현우가 기겁한다. ‘닭똥이 집이 있어?’ 그 모습을 보고 민혁이 뻐기면서 웃는다.


“현우씨, 그런 거 아니야. 닭의 모래주머니로 만든 쫄깃쫄깃한 고기야. 식감이 끝내준다고.”

“아. 네.”


“소주 좋지?”

“네. 네.”


자리가 무르익자 박민혁이 자신이 마신 소주잔을 지현우에게 건넸다. 현우는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걸 왜 저에게...?”

“현우씨 아무것도 모르네. 옛날에는 우정을 다지기 위해서 다 이렇게 했어. 자기가 마신 잔에 술을 따라주면,

그걸 마시고 다시 나한테 똑같이 술을 따라주는 거야.”


“그럼 비위생적인데요.”

“걱정하지마. 안 죽어. 요즘 이게 얼마나 핫한 트렌드인데. 원래 너무 위생 따지는 놈들이 꼭 먼저 전염병 걸려서 죽거든. 옛부터 이어져 오는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하고 내 잔 받아.”


지현우는 내키지 않지만 박민혁이 하는 대로 술을 받아마시고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민혁은 현우가 소주잔을 돌려주자 냉큼 잡아 꿀꺽 마셨다. 그리고 소주잔을 알루미늄 테이블 위에 탁 소리 나게 놓는다.


“크으.. 원래 소주는 이렇게 마시는 거야. 잘 봤지? 현우씨도 해봐.”


현우가 마지못해 또 시키는 대로 따라한다. 소주잔이 알루미늄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준다.


“신나지?”

“그런 것 같네요.”


분위기는 갖춰졌다.


“현우씨.”

“네.”


“내가 왜 아버지의 기억을 보고 싶어하는지 알지?”


본론이 나왔다. 지현우는 민혁이 언제쯤 이 얘기를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압니다.”

“대충 알면 다 아는 거야. 그 노인네가 자기만 아는 스위스 은행계좌에 엄청난 돈을 꿍쳐놓고 있거든. 어차피 죽었으면 다 내껀데, 그거 나 주면 내가 자기를 잘 안 보살필까 봐 계좌번호고 비밀번호고 하나도 안 가르쳐주고 있어. 어쩌면 내가 죽어도 그 돈으로 자기만 포에버월드에서 영원히 살려고 하는지도 모르지. 웃기는 세상이야.”


“그렇군요.”


현우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는 정답이 아니야.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겠어? 현우씨가 우리나라에서 포에버월드 시스템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 맞지?”


사실이다. 모털 컴퍼티 기술팀의 최고참이며 팀장이니까.


“사장님 말씀은 계좌번호를 알아낼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묻는 것이군요.”

“당연하지. 그거 아니면 내가 왜 따로 보자고 했겠어? 그리고 사장님 말고, 형이라고 불러. 맨날 노는데 사장님 소리는 내가 쪽팔려서 그래. 우리 두 살 차이밖에 안 나.”


어지간하면 좋은 말로 돌려 말할 것 같은데 박민혁은 그러지 않는다. 이상할 정도로.


“네. 그럼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


“사장님은, 아니 형님은 돈이 충분히 많지 않습니까? 제가 볼 때는 그 돈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쓸 것 같은데 스위스 은행에 있는 재산이 왜 필요합니까?”

“오 질문 좋은데? 현우씨 말은 스위스 은행 포기하면 아버지 눈치 안 보고 잘 살 텐데 왜 없는 효도까지 하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하냐는 거지?”

“그렇습니다.”


현우는 눈치를 보며 어렵게 물었지만 민혁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크게 두 가지야. 첫째, 노인네가 포에버월드에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 이건 뭐 살아있을 때보다 죽어서 몇 배는 더 쓰는 거지. 포에버월드 물가 알잖아? 종신계약이야 원래 자기 돈으로 하고 들어갔으니까 그렇다 치고, 툭하면 이사하고, 쓰지도 않을 거 쇼핑하고, 포에버월드에서 자선사업이라도 하는지 F머니는 왜 맨날 땡그랑이야? 이제는, 현우씨도 들었지만, 죽어놓고 나보다도 더 젊게 만들어달란다.”

“아, 그거 해주시려고요?”


대답을 알면서도 지현우가 되물었다. 박장우에게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안 해줘? 아까 지사장한테 물었더니 조그맣게 말하더라. 모털 컴퍼니 본사가 운영하는 사회재단에 기부금 수억 내면 은밀하게 해줄 수 있다고.”


됐다. 박장우가 원했던 전신 업그레이드는 시간문제고 그렇게 되면 지호를 위해 약속 받았던 F머니를 사례로 받는다.


“둘째는 뭡니까?”

“기분 나빠서.”


“네?”

“생각해봐. 노인네는 이미 죽은 거잖아. 그런데 죽은 망령이 마땅히 나에게 돌아와야 할 돈을 저승에서 꽉 쥐고 안 주고 있다는 게 기분 나쁘잖아. 그러다 큰 정전이라도 나서 의식이 소멸되면, 스위스 돈은 어떡해? 스위스 놈들이 꿀꺽해?”


생각과 달리 박민혁은 ST시스템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포에버월드 거주민은 살아있는 영혼이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저승을 헤매고 있는 전자기장 더미에 가깝다.


“네.”


마땅한 대답이 없어서 한 말이 ‘네’였는데 박민혁은 현우의 대답이 불만이다.


“겨우, ‘네’야? 뭐 다른 방법 없어? 지현우 팀장. 내가 잘만 되면 크게 쏠게. 알잖아. 나 나름 신의는 지켜.”


알고 있다. 박민혁 사장, 졸부집 아들로 태어나 막사는 것처럼 보여도 약속은 지킨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도 안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요.”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뭔데?”


“미인계요.”

“뭐? 미인계? 이미 죽은 인간한테 어떻게 미인계를 써? 알았다. 포에버월드 거주민 중 하나를 섭외하자는 거지? 그게 될까? 이미 죽은 놈들이 뭐 아쉽다고 내 말을 듣겠어? 게다가 그쪽에는 미인은 커녕 젊은 애들도 별로 없다면서?”

“있습니다. 젊고 미인이면서 말 들을 사람. 아직 죽지 않았고 곧 죽을 사람.”


박민혁의 눈이 반짝인다. 지현우는 각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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