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back to young

by 시sy

박장우는 눈을 떴다. 죽어서도 잠을 자야 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지만 자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살아있을 때처럼 하루 7~8시간씩 자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40분, 어떨 때는 20분만 자도 충분히 머리가 맑은 기분이 들었다.


다만, 포에버월드에서도 시간은 똑같이 흐르기 때문에 깨어있어 봐야 밤에 할 일이 없어 9시간씩 자는 무지렁뱅이들도 있다. 영화라도 보지. 죽어서도 시간을 허비하다니, 그런 놈들에게 영생은 낭비다.


특별할 게 없는 포에버월드의 생활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박장우는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다. ‘어떻게 변해 있으려나?’


전신 업그레이드는 수면 중에 이뤄진다고 했다. 때문에 어제 수면시간은 평상시보다 긴 2시간이었다. 이제 확인의 시간이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다. 첫 느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낯설다. 내 얼굴이 이리 낯설다니..’


곰곰이 뜯어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원래 얼굴을 기준으로 젊음을 되돌렸다는 것이다. 만약 꽃미남 영화배우 같은 얼굴로 싹 바꿨다면 자기 얼굴에 적응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잘했다.


확실히 젊어졌다. 게다가 컴플렉스였던 작은 눈은 커졌고 꺼칠했던 피부도 포토샵으로 만진 것처럼 뽀얗게 변했다. 마음에 든다. 30대 중반, 마음 같아서는 20대로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포에버월드의 평균 연령은 60이 넘는다. 30대 중반만 해도 한국 네트워크에서는 최연소 톱10에 들어갈 것이었다.


표정을 지어봤다. 자연스럽지 않다. 자연스럽게 표정을 못 짓는 건지, 시스템 버그인지, 아니면 젊은 자신이 웃는 모습이 어색한 것인지 몰라도, 젊어진 얼굴로 웃는 표정은 연습이 필요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살아 있을 때도 그닥 웃어본 기억이 없다. 늘 불만, 불만. 그 깐깐한 성격 덕에 수백억 원의 재산을 모았지만, 그럼 뭐하


나? 남들 다 사는 일흔도 못 넘기고 자연수명이 끝났는데.


포에버월드가 없었다면 크게 억울할 뻔했다. 가진 돈의 만분의 일도 쓰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래서 이곳에서는 펑펑 쓴다. 생전 해보지 않았던 기부도 하고, 없어 보이는 거주민이 눈에 띄면 F머니를 팍팍 쏴준다. 쇼핑몰 가서 옷이나 하나 사 입으라고.


때문에 박장우는 한국 네트워크에서 최고 인기맨이었다. 모두가 인사하고, 아부하는 만큼 F머니를 받아간다. 마음에 없는 아부면 어떤가? 포에버월드에서 진실과 거짓의 구분은 무의미한데. 어차피 0과 1. 디지털로 만들어진 허상일뿐이다.


그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꿈보다 허망한 가짜다.


그래도 젊어지니 발걸음마저 가볍다. 지현우 팀장은 다른 거주민들이 눈치 못 채게 홈타운을 옮길 것을 제안했지만 박장우는 거절했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인적 네트워크가 얼마인데, 이사를 가? 그래서 자신의 아들 행세를 하기로 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박민혁의 이름을 그대로 쓰기는 찜찜해서 이름을 새로 만들었다. 박시후.

이제 영혼 나이 71세의 박장우는 겉모습 35세, 박시후로 변신했다.


오늘은 젊은 거주민들이 주로 모인다는 홍콩 네크워크의 클럽이 목표다. 이동은 순식간에 이뤄진다. 일등석 비행기에 몸을 싣고 여자 승무원이 제대로 서빙하는 기내식을 먹고 싶지만 그런 서비스는 없다. AI가 제어하는 가상 승무원이 있어서 원한다면 비행기 타는 시늉을 해 볼 수 있지만, AI는 AI다. 처음 몇 번은 속아도 그다음은 속지 않는다. 모든 게 어색하고 티난다.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예뻐도 컴퓨터 그래픽이 그린 만화 캐릭터니까.


클럽 입장, 입장료가 꽤 비싸다. ‘죽은 부자들만 모인다 이거지? 아니면 죽은 놈 아버지가 부자든가’

뒤가 맞았다. 클럽 안에는 젊어 죽은 영혼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돈 많은 아비들은 죽어서도 클럽에서 몸을 부벼대는 젊은 것들의 유흥비를 대주고 있는 것이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AI 종업원에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박장우는 자신의 청력 센서티브를 낮추기로 했다. 살 것 같기는 한데 이제 다른 놈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전부 속삭이는 것 같다.


비슷하게 춤 춰 보지만 어색해서 미칠 것 같다. ‘젊어지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할 수 없이 구석에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고소한 탄산 느낌은 나는데 확실히 아니다. 이젠 진짜 맥주맛이 기억나지 않으니 도리 없다.


춤추는 영혼들을 보고 있는데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진다. 상대의 옷을 찢어발기는 건 예사고, 시끄러운 비트에 맞춰 상대를 학대하는 커플도 있다. 철창에 가두고 때리고, 맥주를 붓고.


‘아무리 메인터넌스(maintenance) 돌리면 원상태로 복구된다 해도 저리할 필요까지는..’


보다 못한 박장우가 달려가서 채찍 휘두르는 남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이래?”


붙잡힌 놈이 눈을 부라린다.


“그만두시지. 아무리 무법천지라도 안 되는 건 있는 거야!”


제법 신사 같은 멘트를 날렸는데 반응이 시원찮다.


“뭐래? 웃기지 말고 혼자 왔으면 저기 가서 찌그려져 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다. 박장우는 주먹을 날렸다. 젊어지니 주먹 나가는 스피드가 다르다. 턱을 얻어맞은 불한당은 뒤로 나자빠져 클럽 바닥을 뒹굴었다. 포에버월드의 좋은 점이다. 어지간히 패서는 아무 문제되지 않는다. 파손이 너무 심할 경우 유지보수 비용을 쏴주면 그뿐이다.

박장우는 엎드려서 채찍을 얻어 맞고 있던 여자에게 손 내밀었다. 그랬더니,


“어디서 이런 미친 인간이 굴러와서.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미친새끼야!”


감사하다는 말은 못 들어도 고맙다는 미소 정도는 받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건 개소리보다 못한 쌍욕이다.


“뭐야? 너 미쳤어?”


그렇지 않다. 미친 건 박장우 본인이다. 그를 둘러싼 썩은 영혼들이 죄다 박장우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다. 합의 하에 가학놀이를 하고 있는데 왜 끼어들어 분위기 망치냐는 것이다.


박장우는 클럽을 나왔다. ‘맨하탄 클럽도 같으려나?’


이동하기 전에 검색부터 했다. 이용후기와 사진들이 올라온다. 선진국일수록 광란의 강도가 더 커진다. 몇몇 사진은 보기조차 힘겹다.


젊어진 첫날은 대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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