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Soul Transferring - 영혼전송

by 시sy

지현우는 40시간째 깨어있다. 포에버월드 거주민은 코어 뉴런에 누적된 비활성 메모리를 삭제하기 위해 20분 이상만 ‘의식정지’ 상태에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인간은 의식을 유지한 채 20시간이 넘으면 그의 뉴런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돼 있다.


그러나 지현우는 조금도 피로하지 않았다. 윤지호의 의식전송 프로세스를 모니터하면서 에러나 버그가 없는지 뜬 눈으로 이틀 밤을 새고 있었다. 절차가 완전히 끝나려면 아직도 10시간 이상 남았다. 모든 사람은 세부적인 뇌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의식전송에 걸리는 시간도 천차만별이다.


“팀장님.”


기술팀 직속 후배가 지현우를 부른다.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서 쉬라는 것이다.


“괜찮아. 조금만 더 보고.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의식전송 최장 기록은 얼마지?”


40시간이 넘었는데도 윤지호의 전송 프로세스가 마지막 단계로 들어가지 않았다. 조금은 걱정된다.


“작년 것은 뒤져봐야 하고요. 올해 최장은 52시간 39분입니다. 나이 68세 남자, 직업은 의사. 확실히 전문직은 오래 걸려요. 그죠?”


나이는 많을수록, 직업은 전문직일수록 전송시간은 길어진다.


“그럼 마지막 단계 돌입시간은?”


현우는 세부적으로 물었다. 컴퓨터에 접속하면 금세 알 수 있는 데이터지만 갑작스런 피로가 몰려오면서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잠깐만요.”


후배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가장 늦게 들어간 사람이 38시간 51분. 79세 여자. 직업은 없고. 이것도 중요한 데이터인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최종단계라는 것도 우리가 피시술자 뇌파를 보고 임의적으로 정한 것이니까. 최종이라는 말도 우습긴 하지. 그래도 통계적으로 의미는 있을 것 같은데.”


걱정이 증가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맡기고 집에 가서 쉬었겠지만 이번 피시술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윤지호다.


“피시술자하고 아는 사이라고 하셨죠? 어떤 사이세요? 혹시 애인?”

“아니. 애인은 무슨. 그냥 부탁을 받아서 그래. 보호자가 이게 많은... 있잖아. 그거.”


윤지호의 보호자는 지현우가 아니다. 박민혁이다. 결혼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고, 모든 비용을 지불한 사람이 박민혁이기 때문에 컴퍼니 측에서는 박민혁을 보호자로 등록했다. 현우로서도 그게 편했다. 자신과 피시술자가 특수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제한만 늘어날 뿐이다. 더구나 박민혁이 보호자가 돼야 윤지호와 면회가 자유롭다. 그리 많은 면회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때까지 지현우의 생각은 그랬다.


“아.. 부자? 역시 돈이 장땡이죠. 혹시 잘못되더라도 팀장님이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죠?”


소울 트랜스퍼링 시스템, 즉 의식전송 시스템은 무척 안정됐다. 상용화 전에는 에러발생률이 제법 높아서 100명 중 한 명은 제대로 전송되지 못하고 의식소멸 절차를 진행했다. 어차피 의식이라는 게 100% 전송되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영혼만 있는 저승에 살면서 반편이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에러발생률은 0.01% 이하, 만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하필 재수없이, 지호가?’ 지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동의 받았으니까 본인책임이지. 보호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사인했고.”

죽은 사람이 자기 죽음에 책임져? 이상하다. 더 이상한 것은 컴퍼니는 왜 의식전송을 굳이 영혼(Soul) 전송이라 칭하는 것일까?


“그럼 이제 퇴근하시죠? 어차피 지켜보기만 하는 건데요. 잘못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사실이다. 의식전송이 시작되고 나면 모든 프로세스를 수퍼컴퓨터가 자동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지현우일지라도 중간에 개입할 방법은 없다. 중단도 안 되고 취소도 안 된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에러가 발생했을 때, 에러코드를 확인하고 보호자를 불러 소멸절차를 진행하는 것뿐이다.


지현우는 우울해졌다. 만분의 일이지만 에러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잃은 것 같다. 힘이 빠지고 머리도 무겁다. 그냥 자고싶다. 자고 나면 모든 게 깔끔하게 해결돼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도 힘을 내야 생기는 것이다.



의식전송이 시작되고 60시간이 넘어가자 지현우는 퇴근하지 않았다. 최장 기록은 진즉에 넘었다. 그렇다보니 컴퍼니 내에서도 자기가 꼭 필요한 프로세스만 직접 처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팀원에게 맡겼다. 고객 상담실 같은 곳에는 기웃대지도 않았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식사도 모니터를 보면서 빵이나 햄버거로 대충 때웠다.

시스템에는 아무 문제 없었다. 에러메시지도 없고 프로그램에 버그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직 느리게 진행될 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생사(生死)가 신의 영역이라면, 디지털은 컴퓨터의 영역인 것이다.


“팀장님.”

“괜찮다니까!”


“그게 아니고. 보호자가 찾아왔는데요?”

“보호자라니?”


착각했다. 서류상 보호자가 박민혁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윤지호의 유일한 보호자는 지현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지현우와 달리 박민혁은 조금도 심각하지 않고 반대로 명랑했다.


“현우씨 일이 잘 안된다면서?”


‘일? 일이 잘 안 돼?’


현우는 능글거리는 박민혁의 얼굴을 때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그랬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지현우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눈은 충혈됐고, 옷은 이틀째 그대로. 머리도 감지 않았다. 입을 열면 욕 나올 것 같아서 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마. 가끔 그런 일도 있다면서? 잘 안되면 이번에는 내가 한 명 섭외해볼게. 곧 죽을 젊은 여자를 찾기는 어렵겠지만. 돈 많이 준다면 여기 말고 거기서 살겠다는 여자는 있지 않을까? 세상살기 X같잖아?”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참지 못했다. 현우가 화난 기색이 역력한데도 민혁은 웃는 표정이다.


“왜 그렇게 화내? 어차피 죽은 사람이잖아. 설마 현우씨도 포에버월드가 살아서 가는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냥 영혼의 카피 같은 거 아니야? 복사본.”


현우는 진정해야 했다. 더 나갔다가는 윤지호와 자신의 관계를 들킬 수 있었다. 지호가 현우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박민혁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미인계는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잠을 못 자서 잠깐 흥분했어요. 불쌍한 여자라서 내가 너무 감정이입했던 것 같아요.”


사과했다. 박민혁이 쿨하게 받는다.


“괜찮다니까. 일하다 보면 화도 내고 그러는 거지. 그래도 지금 포기할 단계는 아닌 거지? 완전히 끝났다 싶으면 말해. 이쪽도 작업 들어가야 하니까. 오케이?”


박민혁이 힘내라며 지현우의 어깨를 두드리고 떠났다. 마땅히 화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지호의 의식인지 영혼인지.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조차.


혹시 지호의 의식전송은 윤지호를 위한 게 아니라 지현우 본인을 위한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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