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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Aug 19. 2024

도대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영화 <인셉션>

어떤 것은 아무리 잘 알아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필즈상을 수상한 고명한 수학자라 할지라도 수학의 난제 중 하나인 리만 가설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하다. 현상학이 그렇다. 

도대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내 서재에도 후설의 두터운 책 3권이 위압적으로 꽂혀있다.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 첫 페이지부터 난해한 설명이 가득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혼란에 빠트린다. 


어떤 책들은 어려워도 '내가 이해 못해서 그래. 조금만 더 읽다 보면 멋진 이야기를 들려 줄거야~' 기대하게 만들지만, 어떤 책들은 '이거 잘못 쓴거 아니야? 뭘 알고 쓰는 게 맞아?' 또는 '이건 몰라도 되겠다' 고 지레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책은 후자에서 전자로 옮겨 가는 것이 있으니 <현상학>이 바로 그렇다.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책은 무조건 소리 내어 읽었다. 눈으로만 읽는다든가 마음 속으로 읽지도 않았다. 

책을 음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문자에는 띄어쓰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가 없다보니 단어 간 구분이 어렵고 모든 문장은 발음을 통해 주어, 술어, 목적어 등 격이 정해졌다. 즉, 소리 내어 읽어야만 문장의 구조와 의미 파악이 됐던 것이다. 


또 당시 교육이나 사회적 교류도 암송과 낭독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책은 언제나 밖으로 읽는 것이지 안으로 읽는 법이 없었다. 


실제 4세기말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록에 보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히포의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조용히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정도면 속으로 책읽기는 금기 수준이다.


문제는 음독하는 습관이 속으로 말하는 것 역시 위축시켰다는 점이다. -일설에 따르면 속으로 말하면 신탁과 헷갈릴 위험이 있어서, 속말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다는 가설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근대 이전까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현상은 바깥의 현상과 달리 '현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칸트 이전에는 인식의 주체가 외부 세계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을까?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우리의 인식 구조가 외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현상학은 외부의 현상뿐 아니라 머릿속의 현상도 실질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적 의미가 있다. 

후설이 주창한 현상학의 핵심 개념은 바로 '지향성'이다. 지향성은 의식이 항상 무엇인가를 향해 있다는 것인데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낀다는 뜻이다. 

의식은 바깥 세상과 항상 연결돼 있으며, 때문에 의식이 사물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중요해진다.  

영화 <인셉션>을 보면 꿈 설계자가 등장한다. 설계자가 만든 꿈은 현실과 무척 유사하지만 물리적 법칙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다르고, 꿈이 깰 때가 되면 세상이 함께 무너진다. 

인간이 지각하는 세계가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는 현상학적 설명이 영화 속에서 리얼하게 묘사된다. 

또 꿈속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흐르는데 이 역시 인간의 인식이 시간과 경험을 재구성한다는 현상학적 설명과 맥을 같이 한다. 


주인공 코브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토템(회전하는 팽이)을 사용한다. 꿈속에서는 팽이가 멈추지 않고 끝없이 돌기 때문에 이를 통해 꿈인지 현실인지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일체의 배경지식이나 편견, 선입관을 배제하고 현상 그 자체에 집중하라는 현상학적 탐구를 상징한다. 


에포케(epoche),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에 대한 판단을 일시 중지하라! 

그리고 경험 자체로 돌아가서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이 어떤 방식으로 경험되는지 그 본질을 분석하라!

팽이가 멈추는지..  아니면 계속 도는지. 


그럼에도 코브는 죽은 아내 멜의 기억에 사로잡히면 현실과 꿈의 경계를 깨닫지 못하고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다. 팽이를 돌려볼 생각도 하지 못한다. 경험을 통해 현실과 자신을 규정하는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    


현상학이 후대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 본다면 우리가 왜 현상학 타령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현상학은 정신분석학과 실존주의 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경험이 단순한 정신적 과정이 아니라, 신체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정했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신체적 감각과 경험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자크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 조차 언어적 구조로 파악하려 했다. 현대의 정신의학에서 환자가 느끼는 감정, 생각, 감각 등을 중요한 관찰 요소로 여기고 이를 분석한 것은 현상학과 자크 라캉의 공헌이 크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실현된다면서 존재론적 성찰을 방법론으로 제시했는데 이 역시 지향성 개념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샤르트르도 의식의 지향성을 통해 인간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처럼, 인간이 선택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유롭고 능동적으로 자기 존재를 형성하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정리하자면, 의식의 경험 또 이 경험이 우리의 존재와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모두 현상학적 전통 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분석하는 오늘날의 연구방법은 모두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다. 아마 현상학이 아니었다면 내면의 목소리는 바깥의 실재와 별 상관없는 미친자의 아우성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너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너를 멀리 데려갈 기차를. 너는 이 기차가 어디로 데려가길 바라는지 알고 있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확실히 알 수 없어. 하지만 상관없지. 왜 그런지 말해봐."  <인셉션> 중


주인공은 기차가 어디로 가기를 바라는 것일까? 알지만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그곳은 어디일가? 나는 정말 그곳으로 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셉션>의 대사처럼 마음의 소리, 무의식의 소리는 늘 명확하지 않다. 희망에 차 있는 것 같지만 불안하고, 즐겁지만 우울하다. 영화 속 기차가 향하는 곳은 둘 중 하나다. 진짜 현실, 아니면 죽음. 그러나 상관없다고 말한다. 왜 상관없지?  현실과 죽음은 전혀 다르지 않나? 편견인가? 그 둘은 같은 것인가? 

죽음 같은 현실이라면...


나의 현실은 무엇인가? 내 의식이 구성한 세계인가? 그렇다면 이 세계는 진짜(실재)인가? 

아, 그런 구분은 의미 없나? 어차피 나는 구분하지 못할 것이니까.  


그럼 편안한 마음으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뭘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데 맥락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다. 무의식이거나 신탁이거나. 


어, 들린다. 뭐라고?  

'도.망.쳐!'    


만만치 않은 세상, 진짜든 가짜든 간에 도망치는 게 상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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