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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sy Nov 12. 2024

37. 죽어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장우가 떠나고 지호는 다시 집에 혼자 남았다. 소설을 다 썼고, 책도 다 읽었다. 현실 세계는 아니지만 여행도 하고 싶은 만큼 다녔다. 생각도 충분하다.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멍하게 앉아서 산책을 나갈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지루하다. 뻔한 산책길, 오른쪽에 흐르는 강, 드문드문 인사하는 거주민, 커피하우스, 다운타운, 완벽한 석양, 산책의 여정 전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떠오르며 굳이 산책을 나가지 않아도 머릿속 상상만으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었다. 


웃긴다. 포에버월드도 상상속이나 다름없는데 그 속에서 다시 상상의 산책을 하다니, 거울 안의 거울처럼, 이런 식으로 얼마나 무한히 반복할 수 있을까? 

‘내 의식 속의 나, 나 속의 나, 그 나 속의 나...’


무한의, 무한의, 무한의.. 생각의 꼬리물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두통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양쪽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두통을 완화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두통은 점점 심해져서 살아있을 때 느꼈던 고통의 크기로 그녀를 찍어 눌렀다. 의자에 앉아있기도 힘들어 침대에 엎드렸지만 두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호는 할 수 없이 고통 센서티브를 낮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무 소용없었다. 고통을 0으로 세팅했는데도 두통은 여전했다. 그녀의 고통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혹시 계약해지를 해서?’


제이든이 말하길, 강제로 ST칩을 뽑는다고 해서 고통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왜? 혹시 제이든이 말했던 환각? 고통을 느낄 머리가 없는데 두통이 있다니, 그럼에도 분명한 두통, 거부할 수 없는 고통이 지속됐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고통을 느끼는 자아가 누구인지, 그녀 자신인지 아니면 제 3자인지 구분되지 않는데 고통 자체가 있다는 것은 점점 분명해졌다. 


초인종이 울렸다. 박장우가 돌아온 것이다. 박장우는 벨을 세 번 울린 후 지호의 응답을 듣지 않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침대에 누워 머리를 잡고 신음하고 있는 윤지호를 발견했다.


“지호씨,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요.”

“머리가 아프다니.. ”


박장우는 당황했다. 지호의 얼굴을 보니 아픈 게 분명한데 아프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아프다고 해서 병원을 갈수도 119를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호씨,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콜센터에 전화해 볼게요. 아니, 기술지원을 요청해볼게요.”


콜센터 AI는 머리가 아프다는 거주민의 호소에 동문서답으로 응하더니, 시스템 엔지니어 연결을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박장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지호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나를 백색공간에 데려다줘요.”


지호는 전화기 앞에서 초조하게 기술지원을 기다리는 박장우에게 말했다.


“어디를 데려가 달라고요?”

“전에 같이 갔던 곳 있잖아요. 세상이 온통 하얘서 아무것도 없던 공간. 그곳으로 가야겠어요.”


“그건 왜...?”

“더 묻지 말고.. 아, 아, 제발,, 나를 그곳에..”


박장우는 윤지호를 업어 자동차에 태우고 운전을 시작했다. 윤지호가 원하는 목적지는 어디인지 명확했다. 도로의 끝, 포에버월드의 경계선.

박장우의 승용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윤지호는 머리를 창문에 기대고 정신을 잃었다.

---

“저는 의식전송에 걸린 시간이 남들보다 훨씬 길었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80시간이 넘었다고 하던데, 그게 많이 긴 건가요?”


지호의 대답을 들은 제이든은 생각에 잠겼다.


“지호씨는 시한부였다고 했죠? 머리와 관련된 질환이었나요?”

“네, 의사들은 비정형성 뇌종양의 일종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병명은 모른다고.. 그게 왜요?”


“지호씨 친구가 위치코드가 없다고도 했구요?”

“맞아요. 난 위치추적이 안된다고..”


제이든은 지호의 눈동자를 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지호씨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닐 수 있어요. 그것도 병이라면 병이겠지만, 뇌가 특이하게 분화한 거죠. 무슨 말이냐 하면 의식전송은 두뇌의 세부구조를 스캔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컴퓨터에 복사하는 과정인데, 지호씨의 뇌에는 정상적인 스캔이 불가능한 구조가 있었던 거죠. 만약 컴퓨터가 그 부분까지 똑같이 스캔해서 복사했다면 지호씨는 포에버월드에서도 똑같은 두통을 느낄 가능성이 있어요.”


“두통을 일으켰던 부분도 복사됐기 때문에요?”

“맞아요. 다시 말해 지호씨의 두통은 실제 두통이 아니라 의식이 느끼는 환각 같은 거죠. 지금은 어때요?”


“전에 두통 비슷한 게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럼 조심하는 게 좋아요. 코어 뉴런이 언제 그 부분을 활성화시킬지 모르니까.”

---


제이든과 있었던 꿈을 꾸고 나니 박장우의 차는 도로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박장우가 눈을 뜬 그녀를 발견하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좀 괜찮아요? 도착했어요.”


지호는 몸을 일으켰다. 두통이 남아있긴 하지만 정신을 잃기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다만 잠을 잔 것처럼 불필요한 감정들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여기부터는 나 혼자 갈게요.”


지호는 차에서 내려 진입금지 표지판 앞으로 걸어갔다. 박장우도 따라 내렸다.


“나도 같이 갈게요.”


그러나 윤지호는 박장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표지판을 넘어 안개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박장우 역시 그녀 뒤를 따랐다. 


“조금만 천천히 가요. 지호씨.”


박장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가 빨라 손을 잡기는 커녕 점점 멀어져서 놓칠 것 같았다. 


“지호씨!”


하필 그녀의 옷은 흰색이라 더 보이지 않았다. 박장우는 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호는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박장우는 하얀 안개 속으로 지호의 자취를 쫓았지만 헛일이었다. 뒤를 돌아봤다. 타고 왔던 승용차 안전등이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박장우는 조금 망설이다 뒤돌아서 불빛을 향해 걸었다. 이 공간 안에서 그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차에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지호는 그녀가 얼마만큼 깊숙이 백색공간 속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박장우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던 것은 기억하는데 그때 당시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 혼자였다.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그녀의 무엇이 두통을 일으키는 것일까? 포에버월드 데이터필드에 복사된 그녀의 두뇌 이미지 중 어느 곳이 활성화됐기에 있지도 않은 두통을 느끼는 걸까?  떠올리지는 못해도 그녀의 기억 속 어딘가에 그녀가 모르는 뭔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호는 두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포에버월드에서는 그녀의 지식과 기억이 모두 디지털로 저장됐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세세한 것까지 불러낼 수 있다고 했다. 

---

“신기한 곳에 가본 적 있어요. 안개가 자욱한 도로의 끝이었는데, 차단 표지판을 넘어 들어가니까 하늘도 바닥도 모두 하얘서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처럼 보였어요. 그곳은 건설 중인 장소라고 하던데, 제이든도 가봤어요?”

“아, 그곳은..”

제이든은 잘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는 백색공간이라고 불러요. 디자이너들의 작업공간이죠. 건설 중이라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그런데 조금 달라요.”

“어떻게요?”

“뭐든지 가능한 공간이라고 할까요? 디자이너들은 그 안에서 모든 걸 창조하거든요. 컴퓨터의 하얀 배경화면 같은 것이라고 비유하면 될 것 같군요. 지호씨 같은 작가에겐 한 글자도 쓰지 않은 백지 같은 것이구요.”

“그래요? 그럼 저도 그 안에서 상상하면 상상하는 대로 그 공간에 구현되나요?”

지호의 질문에 제이든은 고민했다. 

“그런 식으로 동작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언제 다시 그곳에 가면 시도해 봐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


지호는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천천히 돌아봤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만약 그녀의 손과 발이 보이지 않았다면 시력을 잃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디자이너, 즉 포에버월드 설계자의 작업공간에 온 것이다. 


지호는 눈을 감고 X축 Y축 Z축 세 방향으로 눈금이 매겨진 3차원 공간을 상상했다.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구현된 3차원 공간을 백색공간에 투영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눈을 떴다. 그랬더니 입체영화를 보는 것같이 눈앞의 백색공간은 눈금이 새겨진 3차원 공간으로 변했다. 그렇게 있으니 그녀가 포에버월드 컴퓨터 프로그램 속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 다음은 그녀가 죽기 직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모털 컴퍼니 클리닉 의식전송실, 걱정이 가득한 지현우의 얼굴과 의식전송을 동의하느냐 묻는 변호사의 무미건조한 음성, 모든 것이 현재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게 나타났다. 


다음은 장기입원했던 병원에서 몰래 퇴원해 서울시내 한복판을 혼자 걸었던 오후를 떠올렸다. 모털 컴퍼니 클리닉이 사라지고 아픈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십자형 교차로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갈까 고민했던 순간이 똑같이 재현됐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유난히 맑았던 가을하늘, 높이 솟은 빌딩, 바쁘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 광고판 그 모든 것이 보인다.


조금 더 과거로..

지호가 공모전에 당선됐던 날이었다. 시상식을 겸한 축하연이 끝나고 그녀는 혼자 라운지바에 들렀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공모전에 당선되면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이었다. 레인보우 칵테일을 주문하자 바텐더는 맨 위의 브랜디에 불을 붙여 촛불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녀는 기뻤다. 옆에는 축하인사 해줄 친구 하나 없었지만 그날만은 그녀를 위한 날이었다.


“좋은 일은 함께 축하해야죠.”


지현우와 첫 만남이었다. 그는 드레스 차림의 지호 곁에 다가와 함께 불을 끄고 진심으로 그녀의 공모전 당선을 축하했다.   


“그쪽은 뭐 하시는 분이에요?”


현우의 직업을 묻자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답했다. 


“모털 컴퍼니라고 들어봤어요?”

“혹시 비싼 값에 저승을 판매한다는 그 다국적 기업 말이에요?”


“저승판매라니.. 너무해요. 우리는 살아생전에 못 해보고 아쉬웠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인데요. 그냥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들에게 말이에요.”

“죽기에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항적으로 되묻는 윤지호의 당당함에 지현우는 반했다. 

“그렇죠. 다 아깝죠. 특히 당신처럼 재능 있는 소설가는 더더욱.”


행복했던 기억이다. 이런 기억이 그녀에게 두통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지호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해야 했다. 끝까지 돌아간 영화테이프를 거꾸로 감으면서 다시 보고 싶은 순간의 영상을 재생하는 것처럼 되감기와 재생을 반복하며 그녀의 과거를 되짚어갔다. 대학시절, 첫 소개팅, 수능시험 보던 날,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와 떡볶이 사 먹었던 일까지  기억 속 모든 날을 남김없이 회상했다. 


그녀는 꼭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시절까지 살면서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까마득한 과거까지 걸어 들어갔다. 

죽을 때부터 태어날 때까지 기억에 있는 모든 순간을 역순으로 불러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왜 살았던 걸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녀가 썼던 소설들을 떠올렸다. 다 쓴 소설뿐 아니라 쓰다가 만 소설, 구상만 했던 소설, 쓰고 싶었던 소설까지... 그것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도 경험하고픈 기억일수도 있고 조금 더 살았더라면 경험했을 수 있는 기억이나 다름없었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소설에 집착했던 것이 혹시 소설이 내 삶의 의미였던 것일까?’


지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백색공간은 그녀 이외의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지울 것처럼 여겨졌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조금씩 지워지고 버려져서 더 걷다가는 그녀 자신조차 지워질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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