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여자> 마지막 회.
윤지호가 안개 속에서 돌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박장우는 머리가 텅 빌 것 같았다. 진입차단 표지판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뒤로 돌아봐도 외길로 이어진 아스팔트뿐이었다.
‘왜 안 오지? 뭘 하고 있지? 어딘가에서 쓰러진 건 아닐까? 찾으러 들어갈까? 콜센터에 신고할까? 소용없어! 그놈들은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럼 어떡하지? 역시 나도 들어가야 하나? 전혀 찾을 수 없을 텐데. 왜 안 오지? 들어간지 얼마나 지났지? 쓰러진 거 아니야? 머리가 많이 아파 보였는데. 이대로 안 돌아오면? 아니야. 돌아와. 전에도 돌아왔잖아. 아냐. 이번에는 느낌이 안 좋아. 안 돌아올 수도 있어. 안 돌아오면? 난 어떻게? 돌아올 거야. 그렇게 믿어야 해. 그런데 왜 안 오지? 몇 시간 지났지?’
어떻게 된 일인지 박장우가 있는 도로의 끝은 극지방의 백야처럼 해가 지다가 다시 밝아졌다. 차 안의 시계를 보는데 2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후 2시인지, 새벽 2시인지, 아니면 하루가 지난 오후 2시인지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기다리다 지친 박장우는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현우와 연결해 윤지호의 생사나 행방을 묻기 위해서였다.
지호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끝없이 걷고 있었다. 걷다가 죽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죽으면서 삶의 대부분을 버렸고 백색공간에서 그녀의 과거와 기억조차 지우고 있었다. 그렇게 버리고 버리다 보면 마지막 버릴 수 없는 나머지 하나가 ‘삶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심정이었다.
앞으로 걷고, 나아가고, 그 외의 것은 전부 잊었다. 지금 그녀에게는 걷는다는 사실과, 움직이는 두 팔과 두 다리만 남아 있었다.
마침내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녀의 발과 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겐 걷고 있다는 의식만 남았다.
‘앞으로 한 발 더, 한 발만 더, 그리고 나아간다’
그녀의 생은 꺼져가고 있었고 동시에 나아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나아간다. 다음으로 나아간다. 다음으로 나아간다’
...
지현우는 박장우의 아웃라인 전화를 받았다.
=지현우 팀장, 윤지호가 건설 중인 맵 안으로 들어갔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녀가 살아있는지만 알려주게.
지현우는, 윤지호는 진즉에 죽었고 포에버월드 안에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박장우가 살아있다고 믿는다면 살아있는 것이다. 그에게 현실이란 포에버월드니까. 살아도 거지같은 자신의 현실에 비하면 더 나을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다시피 윤지호는 특이 케이스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최대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천만에요. 선생님. 혹시 제가 못 전하면 다른 사람이 연락할 수 있게 해 두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모털 컴퍼니를 떠나는가?
“그건 아닌데, 아무래도 경찰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뭐가? 무슨 일 있어?
“연락 드리겠습니다.”
지현우는 의아해하는 박장우와 연결을 끊고 시스템 모니터실에 가서 윤지호의 신호를 체크했다. 그녀가 포에버월드에서 활동 중이라는 시그널이 불안하게 깜빡거렸다. 켜있거나 꺼지거나 둘 중 하나이지, 시그널이 깜빡거리는 일은 없었다.
윤지호의 상태창을 모니터에 띄웠다. 모든 것이 삭제됐다. 그녀는 최소한의 정보도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사라졌다. 영면에 들었어도 최소 기록은 남는다. 그런데 그것조차 없다는 것은...?
지현우는 초조한 마음으로 윤지호의 시그널을 지켜봤다. 깜빡거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1초에 한 번 들어오던 파란 불빛은 10초에 한 번으로 바뀌더니, 1분에 한 번, 5분에 한 번, 10분에 한 번으로 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불빛은 소멸됐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