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sy Nov 26. 2024

기억은 영혼이 아니다.

<죽어야 사는 여자> 에필로그

제이든은 모털 컴퍼니의 공동 창립자이자 친구인 지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미의 얼굴은 지나치게 평온해 곧 죽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오히려 제이든 쪽이었다. 그는 또다시 이런 식의 이별이 익숙하지 않았다. 허망하게 자식을 잃었을 때, 얼마 전 스무 해를 함께 했던 아내마저 자신을 떠났을 때, 끝없는 무력감이 그를 몇 번이고 죽였다. 


"제이든, 이제와 보니 하이네가 왜 자기 병실을 매트리스 무덤이라 불렀는지 알겠어."

"무슨 말이야?"

"나를 보게. 살아만 있지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나? 흙만 덮지 않았다 뿐이지 난 무덤 속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무슨 소리야? 곧 훌훌 털고 일어나게 될 것인데. 현대 의학을 우습게 보지 마. 자네는 절대 안 죽어."


지미는 허탈한 듯 미소 지었다. 웃고 싶었지만 그에겐 웃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당신은 과학자이지 의사가 아니야. 조금 전에 주치의가 다녀갔어. 오늘이라더군."

"안 그래도 그거 말인데. 조금만 더 연기해. 이제 곧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지미는 연명치료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자발적 안락사를 신청했다. 


"날 속일 생각 말게. 아직 소울 트랜스퍼링이 불안정하다면서. 나도 여전히 보고 받고 있어. 죽기 전까지 모털 컴퍼니의 CEO는 나란 사실을 잊지 말게. 그것도 몇 시간 후에는 당신 차지가 되겠지만. 아, 오해 말아. 난 진심으로 네가 CEO가 되어 회사를 이끄는 것을 찬성하니까 말이야."

"조금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시스템은 아무 문제없어. 그러니까 자네가 1호 거주자가 되면 어떨까? 먼저 가서 직접 경험하면서 날 도와주는 걸세."


제이든은 간절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도 생각 안 해 본 게 아니야. 하지만 결론은 No일세.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아."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우리가 만들어 놓고 시스템을 못 믿으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포에버월드를 권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런 문제가 아닐세. 난 그냥 사라지고 싶어. 너무 지쳤어. 게다가.."

"게다가? 혹시 나한테 말하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나?"


지미의 눈동자가 떨렸다. 


"포에버월드로 전송된 의식이 나일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냥 기억의 뭉치일 뿐이지. 내 영혼이 아니야."

"그건 이미 논의가 끝난 문제 아닌가? 기억이 자아동일성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도대체 인간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이야? 설마 죽으면 사라질 DNA를 말하지는 않겠지?"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을 잃었다고 생각해 봐. 그 사람이 기억이 없다고 해서 내가 사랑한 사람이 아닌 건 아니잖아."

"말도 안 돼. 자네는 육신이 살아 있을 때의 삶과 혼동하고 있어. 육체가 기능을 다하고 나면 인간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건 기억밖에 없어. 달리 뭐가 있겠나?"


제이든은 답답해 미치겠다. 하나 남은 친구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이해해 줄 유일한 사람마저 없어진다면 삶을 지탱할 무엇이 남나?  


"다른 게 있겠지. 이를테면 영혼 같은 것."

"기억이 영혼이야. 그래서 소울 트랜스퍼링이라고 명명한 것이고."

"우리가 틀렸어. 인간의 영혼은 결코 기억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을 거야."

"자네가 다 맞다고 하자고. 그럼 영혼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결코 모르겠지. 그렇다고 없다는 것은 아니야."


제이든은 곧 죽을 친구와 이런 논쟁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이제 와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자신 있어? 내기할 수 있어?"

"내 전 재산을 걸지."

"오케이. 난 남아서 끝까지 찾아볼 테니 자네는 잘 가게. 이제 1호 거주민의 영광은 내 것일세. 그리고 영혼을 찾거든 꿈에라도 나타나 봐. 기다릴 테니."

"그래, 잘 있게. 친구."

 

그렇게 지미는 떠나고 제이든 남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포에버월드에서 영원히.  




"죽음은 갈라놓지 않고 하나로 합친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삶이다."

하인리히 하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