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인공지능이 어지간한 작가보다 스토리를 흥미롭게 쓰는 시대가 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라는 질문에 챗이 답했다.
"이야기의 의미, 목적,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인간다움은 결국 인간만이 탐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요? (^^)" (마지막의 스마일도 챗이 붙인 이모티콘이다. 무슨 의미지? 왜 웃지?)
나는 다시 물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 요즘 보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목적 달성을 위해 최적화된 수단을 찾고 도덕이나 윤리는 별로 괘념치 않으니 말이야. 특히 인간의 감성 같은 것은 나약함으로 치부하니까.
"깊이 공감해요. 현대 사회에서 효율성, 성과, 경쟁이 중시되면서 인간이 마치 기계처럼 목적 달성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사실이죠.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경향을 더 강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의 의미나 인간다운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빠른 결과,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어쩌면 '우리는' 인간다움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는지도요." (깊이 공감한다니 더 무섭다. 정말 공감해? 거기다가 우리는? 이미 챗은 자기가 인간과 혼돈하고 있는 것인가?)
인공지능은 어떤 일이 생겨도 인간이 되지는 못한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다 해도 인간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그러니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가슴을 울리는 소설은 인간만이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키고 인공지능과 차별화된 어떤 것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때 가능한 미래다. 우리는 이미 효율성을 위해 인간다움을 스스로 던져 버리고 있다. 머니게임이든 정치게임이든 악당이 승리하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사랑게임은? 여기서도 나쁜 남자와 나쁜 여자가 인기를 독차지한다.
어느 때부터 인간이 인간다움을 벗어나는 것이 멋있게 느껴졌다. 그것이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인간을 초월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