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주말을 2% 유쾌하게!
박서우의 행운은 마침 그녀 옆에 조안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건 진상 의뢰인의 불행이기도 했고요.
“뭐야? 아는 남자?”
“이 애가 그 진상. 깜빡이 안 켜고 운전한 애.”
“뭐, 애? 넌 또 누구야?”
자기를 신고한 인간을 찾아 복수하겠다며 캘러한을 찾아온 의뢰인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보는 사람도 없고 CCTV는 등 뒤에 위치. 상대는 겨우 여자 둘.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냅다 따귀를 갈겨도 말릴 사람 없겠다는 계산이었죠.
진상 의뢰인이 박서우의 어느 쪽 뺨따귀를 먼저 때릴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오른손이 머리 위로 올라간 순간, 조안나의 왼쪽발이 정말 반달처럼 허공을 가르며 의뢰인의 면상에 먼저 떨어졌습니다.
“얘가 걔라고?”
조안나의 왼쪽 발은 여전히 꼴사나운 모습으로 엎어진 의뢰인의 등짝 위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심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완벽한 평안함을 유지한 채.
“조안나! 너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했지? 넌 꼭 먼저 걷어차고 생각을 나중에 하더라! 그래 이 인간 맞아. 어서 가자. 누가 보기 전에.”
“이 인간이 지금 경찰서 일로 복수하겠다고 너 찾아온 거? 이거 실화임? 진짜 이런 인간이 있어? 너 사는 데는 어떻게 알고?”
“몰라. 이상한 세상이잖아. 어서 가. 죽지는 않았지?”
“응, 숨 쉬어. 한 5분 기절했다가 일어날 거야. 그럼 갈까? 내가 여기 이사 와서 처음에는 못 봤는데 바로 이 오피스텔 뒤에 목살김치떡볶음 잘하는 데가 있다더라. 이 세상맛이 아니래. 어서 가자. 홍홍!”
그렇게 두 여인이 한 남자의 면상을 처참하게 짓이기고는 목살김치떡볶음을 먹으러 도망치려 할 때, 이를 목격한 캘러한이 묵직하게 외쳤습니다.
“거기 스탑! 도망치는 두 여자분, 잠깐 이쪽으로 와 볼까?”
박서우는 멈칫해서 멈췄지만 조안나는 못 들은 척 회전문을 통과하려 했습니다.
“거기! 키 크고 가슴 작은 여자, 도망치는 거 다 보이니까 이리 와 보래도?”
캘러한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동훈 씨는 쓰러진 남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죠. 역시 의사!
“누구 가슴이 작다고 그래??”
조안나는 회전문을 들어가다 말고 발끈해서 고무공처럼 반대로 튀어 캘러한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봐,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 말하지? 후회하기 전에 정정할 기회를 줄게! 내 가슴이 어떻다고?”
“됐고, 지금 이 남자, 네가 이랬지? 잠깐 기다려.”
“뭣이? 진짜 이 인간이 대리석 바닥은 얼마나 차가운지 얼굴로 느끼게 해 줄까?”
그러나 캘러한은 조안나를 신경 쓰지 않고 의뢰인의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확인했어요.
“맞네. 내 의뢰인. 자, 그럼 계산해 볼까? 내 의뢰인을 이렇게 만든 분이 저쪽은 아닐 테고, 이쪽, 맞지?”
“맞다. 어쩔 건데?”
이때 분위기가 험악해진 것을 느낀 김동훈 씨가 끼어들며 조안나에게 어설프게 인사했죠.
“아. 트레이너님. 여기서 또 만나네요. 여기 산다고 했죠? 이 자빠진 사람이 몹쓸 짓이라도 했나 보죠?”
어색해진 조안나도 아는 얼굴이 나오자 일단 성질을 한 단계 낮췄습니다.
“뭐, 이 인간이 우리 서우를 먼저 때리려고는 했지. 맞지? 서우야.”
박서우는 간단하게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일이 커지는 건 정말 원치 않았으니까요.
“캘러한, 내가 뭐랬어? 이런 인간들은 꼭 이런다니까. 공익신고자를 찾아서 복수하겠다더니. 아주 잘됐다. 그냥 가자. 어차피 의뢰는 안 받기로 했잖아.”
그러나 캘러한은 정색하고 답했습니다.
“아니,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지.”
그러면서 기절한 의뢰인의 지갑을 열어 그 안에 있던 현금을 모두 빼 자기 주머니에 넣었죠.
“캘러한,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도 상담료는 받아야지. 선금도 안 받았는데. 자, 그러면 이제 여기는 계산이 끝난 것 같고. 다음은 이쪽!”
캘러한이 몸을 일으켜 제대로 조안나 앞에 서자 10센티 이상 큰 키에 다부진 체격에서 찌릿한 포스가 풍겨져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수많은 격투와 실전을 겪은 조안나는 알 수 있었죠. 자기 앞의 남자는 허우대만 그럴듯한 가짜가 아니라 진짜 싸움꾼이라는 것을.
“진짜 해보자는 거지?”
조안나는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서며 양손을 올려 자세를 취했습니다. 좀 전의 남자처럼 아무렇게나 돌려 차도 되는 그런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죠.
그때 캘러한의 손이 허리 뒷춤으로 향했습니다. 김동훈 씨는 느낌이 왔습니다.
‘총인가? 킬러라더니 총을 갖고 다니는 거야. 이거 진짜 큰일인데. 막아야 하는데. 그런데 내가 총을 어떻게?’
긴장된 순간, 캘러한의 손이 얼마나 빠른지 보이지도 않더니 그 안에 흰색 명함이 한 장 들려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이웃에 사는 것 같은데 싸게 해 드리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반만 살려 놓고 아무렇게나 가버리면 여기 주민들한테 예의가 아니지 않나? 최소 보이지 않게는 치워 놓고 가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오늘 의뢰가 꽝 나는 바람에 싸게 해 주는 거야. 20 어때?”
“뭐래?”
조안나는 긴장이 갑자기 풀리면서 뻐근해진 뒷목을 잡았습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박서우도 비슷했습니다. 그녀는 전투자세를 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조안나 대신 캘러한의 명함을 받았죠.
“무엇이든 맡겨주세요! 킬러 한 사무실, 혹시 전문 해결사 같은 건가요?"
“뭐, 비슷해. 원래는 킬러인데 죽이면 보통 해결되니까 겸업하는 거지.”
“아.. 그렇구나...”
박서우가 끄덕이는 사이 조안나가 명함을 낚아챘습니다.
“뭘 그걸 긍정하고 있어? 제 입으로 킬러라는데, 이 말 믿는 건 아니지?”
“왜? 맞는 말이잖아. 죽이면 다 해결되는 거.”
“그게 뭐가 맞아?”
이때 그 명함을 김동훈 씨가 살펴봤습니다.
“명함도 있어? 이걸 왜 난 처음 보지?”
“당연하지. 동업자한테 누가 명함을 줘?”
캘러한의 말에 조안나의 표정이 꿈틀!
“동업자? 그럼 그쪽도 킬러? 아무리 봐도 그렇게 안 보이는데?”
김동훈 씨가 사색이 돼 두 손을 가로저었습니다.
“아뇨. 아뇨. 오해십니다. 난 킬러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진짜 킬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는 뭔데요?”
“동거인! 맞아요. 이 친구는 내 오피스텔에 세 들어 사는 동거인에요. 그리고 진짜 직업이 킬러도 아니고. 당연하죠. 요즘 같은 시대에 킬러라니.. 말이 되나? 우리나라는 총도 없는데.”
“나 총 있어.”
“총 있다네요. 하지만 총 있다고 꼭 킬러는 아니죠. 뭐 총이 있어? 어디에?”
김동훈 씨는 또 당황! 조안나는 어이없었죠.
“서우야. 이 사람들 좀 이상한 거 같아. 같이 여기 있다가 이상한 거 엮이면 골치 아프니까 어서 사라지자. 힘썼더니 더 배고파.”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에 김동훈 씨가 살짝 열받음을 느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기는 아무 일도 안 했고 치과의사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는데 말이죠.
“저기요. 잠시만요. 이상한 건 우리가 아니라 그쪽이죠. 멀쩡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도망치는 게 그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내가 이렇게 했다는 증거 있어요?”
조안나 특유의 잡아떼기가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는 상대를 잘못 골랐죠.
“내가 다 봤거든요.”
“뭘 봤는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까 저기서, 조안나 씨의 왼쪽 발이 허공을 이렇게 돌아서 이 남자의 코를 정확하게 가격했죠. 그 때문에 이 남자는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상부 코뼈와 간접 충격을 받은 아래턱에 전치 4주에서 6주 사이의 골절상을 입었고요.”
김동훈 씨가 팔을 들어 조안나의 발동작을 유사하게 따라 하며 설명하자 조안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서우야, 이 남자들 뭐지? 당신들 대체 정체가 뭐예요?”
“킬러라니까.” / “치과의사.”
김동훈 씨와 캘러한이 동시에 대답하자, 박서우는 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해했어요. 이쪽은 킬러, 이쪽은 치과의사, 두 분은 같은 오피스텔 동거인이고요. 킬러씨는 20만 원만 주면 이곳을 깨끗하게 정리해 주겠다고 제안하셨고, 치과 선생님은 동업자 아니니까 상관없고. 맞죠?”
그러면서 박서우는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현금은 지금 없고, 계좌로 보낼게요. 대신 오늘 본 것은 비밀로 하는 거겠죠?”
“의뢰인에 대한 비밀유지는 기본이지! 그런데 난 계좌 없고 현금이나 수표만 받아. 대신 후불도 오케이니까 우선 이걸 치우고 나중에 받으러 갈게. 몇 호에 살지?”
캘러한도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박서우가 말을 끊었습니다.
“아뇨. 우리가 갈게요. 몇 호에요?”
2시간 후, 드디어 이 이야기의 주인공 4명이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진짜 치과의사예요? 월급 받는 거 아니고 개인병원이 있는?”
김동훈 씨에 대한 조안나의 호감도가 30% 증가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조금 잘생겨 보이나?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저기 윗동네에 조그맣게 하고 있어요.”
“윗동네면 어디? 업타운?”
“강북.”
“아~ 그렇구나아↘”
조안나의 호감도가 20% 감소했습니다.
“조안나 씨는 운동 많이 했나 봐요. 아까 보니까 발차기가.. 오우..”
“뭐 좀 차는 편이죠.”
“PT강사는 오래 했어요?”
“오래는 아니고. 부업 삼아 하는 임시직이에요.”
“임시직이면 원래 하는 일은 뭐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해결사.”
조안나의 대답에 김동훈 씨는 마시던 커피를 코로 넘겼습니다.
“농담 아니고, 진짜 해결사. 뭐 힘든 일 있으면 말해요. 싸게 해 드릴게요.”
반사적으로 김동훈 씨는 캘러한을 쳐다봤습니다.
‘이 인간을 내 오피스텔에서 쫓아내 달라고 하면 될까? 안 되겠지?’
모든 것에 상관없이 캘러한은 박서우가 가져온 현금 20만 원에 대만족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난 좀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잠시만요.”
옆에 앉았던 박서우가 캘러한을 잡습니다. 실제로 팔꿈치를 잡았어요.
“응? 왜? 또 시킬 일 있어?”
“킬러라면, 실제 사람 죽여본 적 있어요?”
분위기가 싸해집니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묻지 못했던 것을 박서우가 물어본 것이죠. 조안나도 귀가 쫑긋했어요.
캘러한은 일어나려다 멈췄어요.
“뭘 그리 진지하게 묻나 했더니.. 그래 죽여봤어. 됐지?”
그리고 캘러한은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다시 가려던 곳 가려하네요. 돈 생겼으니 돈 없애러.
“몇 명이나 죽였어요?”
의외의 질문에 캘러한이 날카롭게 돌아봤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움찔했어요. 조안나를 포함해서 말이죠. 순간이지만 솜털이 서는 것 같은 기분 나쁘고 예리한 느낌을 모두가 느꼈던 거죠.
“그걸 왜 말해야 하지?”
“20만 원 더 드릴게요.”
모두 침묵. 1초.
“오케이. 의뢰인이 원한다면 말해야지. 일곱 명, 그중에서 확실히 나 때문에 죽은 인간은 넷, 셋은 좀 애매해. 그러니까. 왜 그런 거 있잖아. 여러 명이서 우당탕하다가 죽으면 누가 결정적으로 죽였는지 알 수 없잖아. 그리고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인간도 둘 더 있어. 이 정도면 대답이 된 것 같은데. 그럼 보수는?”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고 거짓말일 게 뻔한 그의 대답에 박서우는 지갑을 열고 수표 2장을 더 건넸죠. 동시에 캘러한은 그녀의 지갑 속에 더 많은 수표가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뭐든 다 물어봐! 전부 말해줄게.”
“아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그래? 더 말할 수 있는데. 쩝.”
캘러한이 입맛을 다셨습니다. 정확히는 돈맛이겠지만.
뭔가 어정쩡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조안나가 일어나자 박서우도 일어났어요. 김동훈 씨는 배웅하기 위해 따라나섰습니다. 그때 박서우가 돌아보며 다시 물어봅니다. 도저히 참지 못했던 거죠.
“얼마면 돼요? 사람 한 명 죽이는데.”
캘러한은 박서우의 질문을 이미 예상한 듯합니다. 주저 없이 대답했죠.
“10억.”
김동훈 씨의 얼굴에 의아하다는 표정이 스쳤습니다.
‘그땐 분명히 1억이라고 했는데.. 뭐 이것도 농담이겠지?’
“생각보다 비싸네요.”
“사람마다 값이 다르니까.”
“누굴 죽여달라고 할지 어떻게 알고요?”
“글쎄, 당신은 알지 않을까?”
조안나가 놀란 눈으로 박서우와 캘러한을 번갈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