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안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걱정도 팔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걱정은 타고났다. 어릴 때는 볼일 보러 나간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집에 돌아오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그리고 청소를 했다. 기껏해야 엄마를 기다리며 몇 가지 물건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했는데 그것을 본 엄마가 좋아하며 칭찬했던 것이 학습된 것이다. 청소를 하면 엄마가 돌아와서 좋아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시설 출신 아이들을 처음 보고 나도 고아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엄마 아빠가 동시에 사고라도 당하면 바로 고아, 그러면 동생을 내가 돌봐야 하나? 아니면 우리도 시설에 들어가야 하나?
길거리에서 왜소증 어른을 보면 나도 키가 자라지 않고 저리 되면 어쩌나 불안했다. 그뿐 아니다. 드라마에서 백혈병 환자를 보면 나도 백혈병을 의심했다. 침대에 누워 책만 읽는 시한부 환자를 상상하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의 불안은 과학적으로 변모했다. 러시아의 고장 난 위성이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자 세계 지도를 펴고 내 머리 위로 떨어질 확률을 따져보며 걱정했다. 천둥이 치면 벼락이 유리창 철제 난간으로 떨어져 내가 감전될 가능성을 염려했다. 벼락 맞을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벼락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것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걱정은 이 걱정에서 저 걱정으로 옮겨갈 수 있어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서도 오만가지 쓸데없는 걱정으로 불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그런 걱정이 대부분 실현될 가능성 없는 허황된 걱정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참고 남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훈련도 했다. 마인드컨트롤, 이런 게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나만큼 장시간 지속적으로 훈련한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망상이야. 제발 걱정하지 마.
아주 가끔은 걱정이 실현될 때가 있었다. 크건 작건 수없이 많은 걱정을 하다 보니 당연히 맞는 것도 생긴다. 문제는 어쩌다 맞은 걱정이 다른 모든 걱정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거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라니까!
이제는 걱정 연구자가 돼서 몇 가치 걱정의 법칙을 알게 됐다.
1. 소유-불안 증가 법칙
"가진 것이 많을수록 걱정도 늘어난다."
즉 가질수록 잃을 것이 많아진다는 손실 회피 이론(loss aversion)이다. 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행동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훨씬 더 민감하다. 그래서 성공할수록 그것을 잃을 가능성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드라마에서 재벌이 조그만 실수도 참지 못하고 주변인을 제거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2. 정보-불확실성 법칙
"정보가 많아질수록 걱정의 가지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다 보니 정보를 많이 접할수록 선택과 판단이 어려워지고 걱정이 늘어난다. 걱정을 줄이고자 하는 행동이 오히려 더 많은 걱정을 양산하는 것이다. 이를 정보 과부하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선택이 많아지면 인간은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대로 불안해지기도 한다. (배리 슈워츠의 ‘선택의 역설’)
3. 통제 불능-걱정 증가 법칙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수록 걱정은 커진다."
심리학에서는 ‘통제 위치(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이 있다. 외적 통제(운명, 타인)에 의존하는 사람은 걱정이 더 많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이 걱정이 되는 것인데 정부나 기업 등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크면 클수록 걱정이 커진다.
4. 시간 투영 법칙
"걱정은 현재보다 미래에 투사될 때 더 강해진다."
인간의 뇌는 미래를 예측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있다. 이때 ‘상상된 위협’이 현실보다 더 큰 걱정을 유발할 수 있다. 즉, 실재하는 문제보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사람을 더 괴롭히는 것이다. 소설가적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걱정이 많아진다는 것인데 꽤 위로가 되는 가설이다.
5. 비교-상대적 박탈 법칙
"남과의 비교가 많을수록 걱정도 커진다."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는 자존감뿐 아니라 걱정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보통 SNS가 촉매로 작용한다. 남의 삶과 나를 비교하면서 생기는 박탈감이 걱정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나는 저렇게 못되면 어떡하지?
게다가 걱정이 많은 것은 꼭 자기 잘못이 아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났을 가능성이 꽤 있다.
뇌의 측두엽에 위치한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는 공포, 불안, 위협 감지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것이 민감하게 작동하면 걱정이 많아진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은 편도체가 과활성화돼 있다.
또 편도체는 전전두엽의 통제를 받는데 전전두엽의 편도체 조절 기능이 약화돼도 불안 장애가 유발된다.
대부분의 질병이 그렇지만 걱정도 장애라고 한다면, 스스로 극복할 방법이 없지는 않다.
첫 번째는 걱정과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Exposure & Acceptance)
이 방법은 인지행동치료, 수용전념치료, 불안 노출 요법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핵심 아이디어는 걱정은 회피할수록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의 원천을 구체적으로 마주하고 체험함으로써 걱정을 둔화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내일 면접을 망치면 어떡하지?"에서 면접을 망쳤을 경우를 가정하고 "에이, 망치면 어때. 인생 전체를 망치는 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사고를 전환하다 보면 편도체의 반응이 점차 줄어들고 전전두엽의 조절력이 향상된다.
두 번째는 걱정과 불안을 재서사화하는 것이다. (Narrative Rescripting)
이 방법은 인지 재구성 이론과 내러티브 치료에서 착안됐다. 쉽게 말하면 걱정의 원인을 다른 시각이나 이야기로 다시 구성하여 걱정의 강도를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난 이직할 때마다 너무 불안해."에서 "난 변화를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잘해왔고 또 성장했어. 이번에는 내가 얼마나 배우고 성장할지 보자!"로 재서사화한다. 자기 합리화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지만 통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합리화해도 좋다.
세 번째는 명상과 마음 챙김이다. (Mindfulness)
너무 뻔하다 생각하지 말자. 당연하게 보이는 만큼 효과도 확실하다. 걱정거리가 생기면 우선 심호흡부터 한다. 그리고 호흡을 조금씩 느리게 하며 들이마신 공기가 눈을 거쳐 이마로 정수리까지 도달하는 상상을 한다. 아무 생각하지 말자. 숨 쉬는 것만 생각한다.
명상의 생리학적 효과는 뇌과학으로 입증됐다. 전전두엽과 편도체의 연결을 강화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한다.
네 번째는 가설적 사고 실험이다. (Cognitive Defusion)
제목은 거창해도 앞의 3 가지 방법보다 하기 쉽고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다.
"엄마 아빠 탄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지? 그럼 난 고아가 되는데."
"야, 비행기 사고 날 확률이 얼마야? 사망 사고로 따지면 8천만 분의 1이거든? 로또 1등 맞을 확률보다 열 배나 적어. 그거보다는 벼락 맞아 죽을 걱정을 해, 인간아!"
"벼락 맞을 확률이 얼마인데?"
"200만 분의 1."
이 방법은 철학적 회의주의와 유사하다. 실제 걱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스스로 납득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일단 행동하기다. (Behavioral Activation)
이게 뭐냐고? 말 그대로다. 그냥 생각 말고 아무 짓이나 하라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할 시간이 줄고 걱정도 줄어든다. 심리 상담을 가면 테니스공을 선물할 때가 있다. 불안할 때마다 손에 쥐고 움직이라는 것이다. 내 책상 위에는 언제나 악력기가 놓여 있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악력기를 움켜쥐고 그 감각에 집중한다. -테니스공을 놔두면 자꾸 도망 다닌다.
"여름날 파도들이 층층이 쌓였다가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것과도 같다. 한데 모였다가 무너지고, 그럴 때마다 온 세상이 점점 더 육중하게 '그게 전부야'하고 말하는 성싶다. 마침내 해변의 뙤약볕 속에 누워 있는 몸속의 마음도 그게 전부야,라고 말할 때까지.
더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음은 말한다. 더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마음은 말하면서 그 짐을 어느 바다엔가 내맡겨 버린다. 바다는 그 모든 슬픔을 대신해 한꺼번에 한숨지으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층층이 쌓이고 무너져 내린다."
아름다운 여인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쌓아 올린 걱정이 큰 파도의 거품이 되어 무너져 내린다. 그게 전부란다. 별거 아니란다.
그리고 더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나의 모든 걱정과 불안은 바다가 대신해서 가져갈 것이니. 가져가서 무너뜨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