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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릴 자유를 찾아서

by 시sy

내 오랜 소망은 생각에 스위치를 다는 것이었다.

망상에 가까운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를 때,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을 염려할 때, 그냥 생각이 많을 때, 눈을 감듯이 생각 스위치를 꺼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평안을 얻는다. 얼마나 좋나?


도무지 왜 생각은 맘대로 되지 않나? 기억하고 싶은 것은 자꾸 까먹고, 생각하기 싫은 일은 잘만 기억난다. 특히 부끄러웠던 기억은 정말이지 모두 잊고 싶다. 아무도 모르는데 나만 기억하는 수치심들.


요즘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생각 안 나는 것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피티야, 어떤 드라마에서 '망각 또한 신의 배려'라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드라마 제목이 뭐지?"

>>드라마 <도깨비> 초반부에서 저승사자가 말했어.


그러나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흐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안 하려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그 생각이 선명해진다.

'절대 백곰 생각하지 마!'라고 명령하면 더 하얀 백곰을 생각하는 '백곰 딜레마'처럼 이놈의 생각은 늘 거꾸로 간다.


반면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너무 쉽게 잊힌다. 뇌는 불필요한 기억들을 일종의 잡음으로 분류해 슥삭 지워버리는데 이 분류 기준이 완전히 제멋대로다.

제일 불만은 감각 기억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멋진 장면, 멋진 음악, 맛있는 음식이 주는 감각은 황홀하지만 그런 기억들은 길어야 3~4초 정도 뇌에 머문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이 다았을 때의 느낌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말짱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전화번호 같은 일련의 숫자 정보는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개수가 겨우 7~9개다. 무슨 꿩도 아니고 슈퍼에 가서 서너 가지 사고 나면 또 뭘 사야 할지 모르겠는 게 결코 건망증이 아니다. 원래 평범한 인간의 버퍼는 8비트 수준인 것이다. '인간아 5개를 못 외워서 또 전화해?'


그래서 시험공부할 때는 반복 강화 학습을 통해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미치겠는 건 아무리 열심히 기억해도 가만 두면 삽시간에 지워지는 점이다.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20분이 지나면 학습한 정보의 40%를 까먹고, 1시간이면 절반 이상, 하루가 지나면 70%가 소실된다. 이러니 배움에 끝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잊는 게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잊고 싶은 것을 못 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Funes el memorioso)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무것도 잊지 못한다. 포토그래프 메모리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일반인은 3초면 잊어버릴 '감각 기억'까지 죄다 기억한다. 한 번 본 구름의 모양은 물론 하루의 모든 순간을 비디오로 녹화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다 보니, 어제 하루를 온전히 복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제만 가능할까? 그제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앉아서 지난 일주일을 머릿속으로 정주행 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기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고 생각할 수조자 없다. 생각의 기본은 일반화와 추상인데 모든 것을 기억하면 개별 기억의 차이를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일반화와 추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푸네스의 기억은 어떤 측면에서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푸네스의 이야기와 같이 망각은 너무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가 '망각'에 최적화되지 않은 이유는 생존 의지 때문이다. 독초를 먹었을 때의 괴로움, 불에 데었을 때의 고통, 이런 것들을 기억해야 반복되는 위험에 스스로를 빠뜨리지 않는다. 게다가 애매한 경험은, 기억해? 잊어? 선택지가 있어도 뇌는 일단 기억하는 방향으로 세팅돼 있다. 위험을 과소평가하기보다는 과대평가한다는 뜻이다.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 교통사고, 화제와 같은 강렬한 충격은 정신적으로도 각인되는데 그것이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이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물리적 충격과 심리적 충격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좋아했던 사람이 죽었던 기억은 PTSD로 남아 줄곳 사람을 괴롭힌다. 누가 다치지 않을까, 누가 병에 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뿐만 아니라 사랑하기도 전에 이별을 염려하고 다른 사람을 믿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최악은 기억력이 좋은 데다 상상력까지 뛰어난 경우다. 좋은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부정적 기억이 가득한데 상상력이 뛰어나다 보니 카드로 만든 집과 같이 기억에 기억을 쌓아 위태롭고 아찔한 망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게다가 백곰의 딜레마처럼 그 망상을 외면하려고 애쓰다 보니 망상은 더욱 또렷하게 형태를 갖추고 구체화돼서 현실과 구분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이제 그만! 생각 그만!

이렇게 말하면 생각이 멈췄으면 좋겠다. SF영화처럼 나의 모든 기억을 영상편집기에 집어넣고 잊고 싶은 기억만 마우스로 선택해서 지울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은 선택할 수 있는데 망각은 왜 안 되나? 너무 불합리한 뇌구조다. 꼭 인간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기억상실증에 걸려야만 다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유일한 회피 수단은 멍 때리는 것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의 가장자리를 응시하면서 코끝을 간지럽히는 공기의 움직임에만 집중한다. 그런 식으로 처음에는 10초를 버티다가 점차 적응도를 높이면 10분도 가능하다. 요즘에는 적당한 강도의 완력기도 이용한다. 손바닥에 힘을 주고 완력기를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까먹는다. 불안과 망상도 줄어든다. 그러면서 혼잣말한다.

망각은 좋은 것이다. 지금 생각 안 해도 돼. 중요하지 않아. 중요하면 이러고 있겠어? 벌써 뭔가 행동했겠지. 나중에 생각해. 그러다 잊히면 별거 아닌 것이야. 그래, 잊어지면 별거 아니야.


망각은 배신하지 않는다. 나를 배신하는 건 언제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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