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sy Jun 22. 2024

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3

"대만 위스키 어때?"

"별로인데."

"마셔봤어? 마셔 봤구나. 하긴. 난 안 마셔봤는데 대만 위스키 마시면 안돼?"

"그러던지."

"(바텐더에게) 여기 카발란 클래식으로 2잔. 사이드는 치즈플레이트 주시고. (시영에게) 치즈 좋지?"

"왜 하필 대만 위스키야?"

"넌 대만 위스키가 왜 싫은데?"

"값에 비해 별로라서. 특징도 없고."

"그래? 니가 가성비 따지니까 안 어울리기는 한데. 여튼 난 안 먹어봤으니까. 오늘 마셔보면 알겠지. 그런데  너 진짜 모르는구나?"

"뭘?"

"우리나라에서 대만 위스키가 왜 유명해졌는지."

"왜 유명한데?"

"<헤어질 결심> 안 봤어? 거기서 탕웨이가 죽인 남편이 마시던 위스키가 카발란이야."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유명해진다고?"

"BTS 알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가수잖아."

"RM도?"

"FM?"

"아니 표준FM아니고 RM, BTS 멤버야. 봐. 모르면서. 그 RM이 카발란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아미가 좋아하고.."

"요즘 군대에서 술도 마셔?"

"군대? 아미? 아미가 그 아미가 아니고. 말을 말자. 여튼 그런 것 때문에 대만 위스키가 뜬 거야."

"정말?"

"요즘이 딱 그렇거든. 아무것도 아니다가 한 순간에 확 뜨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인스타에 학점 잘 준다고 슬쩍 올리기만 해도 상황 역전될 거야. 뭐 안되면 다른 수도 있고."

"그게 말이야.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왜? 인스타에 그런 거 올렸다가 걸릴까봐? 걱정마. 너 팔로워 25명이라며? 누가 본다고?"

"아니라, 나한테 너무 수강생이 몰리면 서양철학사가 힘들어질텐데 미안하잖아."

"뭐가 미안해? 어차피 경쟁인데. 너 아니면 그놈. 그놈이 살면 니가 죽고."

"누가 그놈이야?"

"서양철학사 강의하는 놈이 있을 거 아니야."

"여자인데."

"그럼 그.. 그 여자. 그 여자를 물리치란 말이야. 여자라서 그래? 요즘 그런게 어딨어? 무한경쟁사회에 일단 이기고 보는거지."

"안돼."

"왜 안돼?"  

"그 여자가 그녀야. 내가 좋아하는."

"(할 말을 잊었다. 당황하다가 바텐더에게 말한다) 여기요! 뭐 좀 물어볼게요. 대만 위스키는 왜 비싼 거에요? 마셔보니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바텐더 말을 가로챈다. 정작 본인은 가로챘다는 것도 모른다) 엔젤스 쉐어 때문일거야."

"엔젤스 쉐어? 위스키에 천사 몫도 있어? 아, 나 알아. 들어본 것 같다. 엔젤스 쉐어. 그게.. 그러니까.."

"대만은 스코틀랜드 같은 곳에 비해 온도가 높잖아. 그러니까 오크통에서 숙성할 때 알코올이 더 많이 증발하거든. 그래서 숙성도 오래 안 하는 편이고."

"아, 원가가 비싸다는 거구나.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여튼 넌 쉬운 것도 어렵게 설명하는게 문제야. 그러니까 수강생이 없지."

"내가 언제?"

"지금도 그렇잖아. 처음부터 네가 좋아하는 여자하고 강의를 다투고 있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복잡하지 않았을 것 아니야."

"처음에 말했어도 복잡함이 사라지지는 않아. 그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 머리 아파."

"하긴 그렇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정정당당 좋아하시네. 남녀 대결은 처음부터 정정당당할 수가 없어. 더구나 예쁘다며?"

"예쁜 게 왜?"

"야, 여교수가 예쁘기까지 하면 너보다야 훨 낫지. 평판은 어때?"

"나야 모르지."

"그녀에 대해 아는 게 뭐야?"

"내 얘기를 잘 들어줘."

"듣기만 해? 자기 이야기는 안 해?"

"별로. 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대. 그리고 유산을 받아서 자기 집이 있고. 어머니하고는 따로 살고."

"유산이 얼만데?"

"그것까지 알아야 해?"

"너하고 수준이 비슷한지는 봐야지."

"글쎄, 옷 입는 것 보면 명품도 더러 있고, 지갑이나 가방도 다.. 잘 사는 것 같아."

"모른다더니 꼼꼼히도 봤네."

"그리고 가끔 밥을 사줘."

"밥을 사? 너한테? 왜?"

"왜냐니, 그냥 내가 몇 번 돈 내면 그녀도 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얻어 먹었어? 네가?"

"응."

"헐, 별일이다. 솔직히 말해봐. 너 살면서 밥 얻어 먹은 적 몇 번이나 있어?"

"그녀 빼고?"

"당연히 빼야지."

"글쎄, 약속이 많지 않으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데. 맞다. 너도 예전에 밥값 한번 내지 않았어?"

"내가? 그랬나?"

"기억 안나? 아닌가. 너 맞는 것 같은데."

"봐. 기억조차 없잖아. 그런데 너한테 밥을 샀다? 이거 사건이다. 사건."

"무슨 사건?"

"너 좋아하는게 확실해."

"진짜?"

"아니다. 반대일 수도 있겠다. 선 긋는 거지."

"헷갈려. 그만해."

   



이전 12화 나의 모든 조각을 모아도 온전한 내가 아닌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