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펫시터 라이프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하고 싶을까.
나이 상관없이,
다시 공부한다치고,
그냥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거.
나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
타고난 성품이 측은지심이 많은데다 진심으로 온갖 동물들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키웠는데 캐나다 오는 길에는 못 데려오고 친정에 맡겨둔 상태였다. 동물 관련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하게된 또 다른 이유는 캐나다가 동물, 특히 개를 키우기 너무 좋은 환경이란 점이다. 캐나다는 ‘개나라’라고 했던가. 캐나다 어디든 강아지들이 뛰어놀 넓은 잔디가 있고 아이스크림집에는 당연히 dog icecream 메뉴가, 유명한 맛집에는 대기 중에 이용하라고 당연히 강아지 음수대가 있었다. 내가 본 캐나다 개들은 모두 목줄은 하고 있지만 늘 웃는 얼굴에(개들은 진짜 웃는다!) 꼬리를 흔들며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짖지 않았다. ‘캐나다 개들은 진짜 스트레스가 없나봐.’ 나와 남편은 길에서 마주치는 개들을 볼 때마다 말했다.
캐나다에서 처음 찾아간 큰 공원은 알고보니 Dog Park 였고 카누를 탈 거 같은 아름다운 호수에 사람 이 아닌 개들이 뛰어들어 신선노름하듯 수영을 했다. 이 걸 보고 우리가 개보다 못 논다며 이방인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안그래도 인적이 드문 길에 눈비가 오면 오직 한 종류의 사람들만이 산책을 한다. 바로 개 산책 시키는 사람들. 캐나다 사람들은 그만큼 개를 사랑했고 개들도 행복했다.
여튼 캐나다에 와서 다시 태어난다면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더 꽂히게 된 나는 수의학과 수업을 알아보았다. 역시 쉽지 않다. 휴직 기간동안 수의학을 마스터하고 의사가 되기란…안될 일이구나.
대신, 나는 펫시터를 시작했다.
평소에 키우고 싶었던 코코스파니엘, 골든 두들, 래브라도 리트리버, 치와와, 푸들, 그리고 진돗개를 돌봐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생각해보니 캐나다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눈이 떠지지 않아도 무조건 길을 나서서 긴 산책을 해야하는 강제적인 건강한 삶도 좋았다. 강아지들이 아니었다면 안 가봤을 아름다운 산책길을 얼마나 많았던지, 타지에서 외로운 시간들을 털복숭이들이 따듯하게 안아주었다.
우리 펫시터만 하고 살자
강아지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따듯했다. 너무 빨리 제 2의 일을 찾았는데?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있나. 다행히 우리를 찾아온 강아지들은 모두 착하고 똑똑한 녀석들이었지만 어쩌다가 TV에 나오는 무서운 개들이 찾아온다면? 음… 이것도 전문성이 필요하겠구나. 우선 강형욱님처럼 근육 먼저 키워놓고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돌봐준 진돗개의 목줄에는 태극기가 달려있었다. 산책길에 그 태극기를 본 캐나다 애견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개도 한국에서 왔어. 덩치가 크다고 아무도 데려가려하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거야.’ 이런 말을 건네는 경우가 너무 잦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한편으론 역전견생이 너무 다행스러웠고 한편으로 매우 부끄럽기도 했다. 어느 산책길에서 만난, 다리 한쪽을 잃었거나 눈이 불편한 대형견도 한국에서 캐나다로 입양 온 아이들이었다. 동물이 좋다고 동물을 키울 수 있나. 나도 행복해야 하지만 동물도 행복해야지. 그러기위해서 나는 시간과 건강과 돈과 책임감이 있는가.
나는 다시 태어나면 수의사나 펫시터가 되고 싶다. 이번 생은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그렁그렁하게 바라보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야겠지만.
나는 새삼 직업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잘 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사람들은 그 어디 즈음에서 직업을 선택한다. 펫시터는 내가 가장 행복한 일이었지만 내가 특출나게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20대로 돌아가 제로베이스에서 선택하라고 하면…꼭 도전해보고 싶은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직업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날 사랑해줬던 캐나다의 강아지들이 보고싶고 그리운 날이다. 언젠가 영원히 퇴사를 하게 된다면 한국에서 강아지 간식을 잔뜩 사서 그때 만난 강아지들과 재회 투어를 다니자고, 그때까지 그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남편과 나는 자주 꿈처럼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