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나의 가족들 그리고 짧은 포옹

상파울루, 브라질

by 팡동이




루시아나의 동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루시아나는 집으로 가는 길 중간중간 친척들 집에 들러 인사를 했다. 5분 정도씩 나누는 짧은 인사. 그들은 서로에게 궁금한 게 많아 보였지만 긴 말 대신 서로를 꼭 껴안아주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내가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낡고 허름한 동네였다.


'여기 만은 아니겠지. 여기 만은 아니겠지. 제발 여기 만은 …! '

“여기야!”


조수석에 앉은 루시아나가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동네는 붉은 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비행 탓인지, 가방을 잃어버려서인지- 아니면 이 붉은 집들 때문인지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황량한 공기 만이 동네를 텁텁하게 메꿨다. 내가 차 안에서 쉽사리 내리지 못하자 루시아나의 약혼자 호나우두는 뒷문을 직접 열어줬다.


파란 문. 둔중한 소리를 내는 파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루시아나의 열 명 가까이 되는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어떤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내 오른쪽 볼에 키스를 하며 나를 꽉 안아줬다. 마치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미 만나기라도 했던 사이인 양. 낯설다는 생각에 앞서 따뜻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낡고 허름한 집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가족들은 루시아나의 엄마를 비롯한 큰 오빠의 가족들과 둘째 오빠의 가족들이었고. 나머지 식구들은 일터로 나갔거나 타지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집을 방문한 막내딸을 위해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고 음식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루시아나가 제일 좋아한다던 엄마의 음식.




상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를 특유의 소스에 재서 구운 메인 요리에 브라질인들이 항상 곁들여 먹는다는 콩 요리. 그리고 몇 번 씹기도 전에 입 안에서 흩어져 버리고 마는 남미식 쌀밥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음식은 내가 여행을 하며 먹은 음식들 중 가장 맛있는 밥이 되었다. 가장 ‘브라질다운’ 음식이었고, 여느 식당에서 먹은 요리들보다 남아메리카를 추억하기에 정직하고 정확한 맛이었다.





루시아나의 조카들은 쑥스러움을 많이 탔다. 생전 처음 보는 동양인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늘 내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과일까지 다 먹고 앉아있는데 아이들이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루시아나의 엄마, 그러니까 아이들의 할머니가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는 코코넛 맛의 하얀색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초콜릿 맛이 더 맛있는데 …”


아이가 속으로 삼키듯 건넨 말 한마디가 너무 어리고 또 귀여워서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조차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밥과 과일, 아이스크림까지 먹자 몸에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루시아나가 동네 이웃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다. 한 스무 걸음쯤 걸어가자 중년의 브라질 아저씨들이 모여있었다. 루시아나와 먼저 반갑게 인사한 그들은 거칠지만 유머러스한 사람들이었다.



파벨라의 PC방, 상파울루

"너만 괜찮다면 내 두 번째 부인 해보는 게 어때?"


놀란 루시아나가 한 아저씨를 있는 힘껏 때렸고 그들은 깔깔 웃어댔다. 루시아나는 내게 몇 번이고 대신 사과했다. 그런 말이 브라질에선 평범한 농담 중 하나이고 나쁜 뜻이 담겨있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농담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진짜 남아메리카 그리고 브라질을 보고 싶어 떠나온 내게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루시아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

우리가 만난 다음 해, 루시아나의 페이스북에는 결혼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축하한다는 코멘트를 남기자 루시아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마워. 근데 사진을 봐서 알겠지만- 네가 작년 브라질에서 만났던 그 남자(호나우두)는 아니야. 나는 여기 미국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되었고, 우린 지금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이지. 아이도 곧 태어나게 될 거야! 난 너무 행복해. 무슨 말인지 알지? "


1년 반 사이 루시아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마음은 괜찮은지, 마지막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루시아나가 친척들 집을 돌며 나눴던 5분간의 따뜻한 포옹, 그 포옹이 생각났다. 긴 말 대신 루시아나를 꼭 껴안아주고 싶었다.


루시아나는 현재 멕시코 남자와 결혼해 미국 휴스턴에서 살고 있다. 루시아나와 남편을 반반씩 닮은 두 딸과 함께.


루시아나는 그 이후 브라질에 가지 않았다. 가족이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를 미국으로 초대할 뿐. 루시아나의 집은 더 이상 브라질이 아니어 보였다.



삶이 이렇게도 흘러갈 수 있는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