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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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상파울루 공항에 내렸을 때 내 몸을 향해 불어왔던 그 뜨거운 바람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5시간의 긴 비행 끝- 지친 몸을 이끌고 비행기 게이트를 빠져나왔을 때 이곳이 지구 정 반대편, 브라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늦겨울이었던 서울과 달리, 브라질은 비가 자주 내리고 머리 위로 태양이 뜨겁게 떠오르는 한 여름이었다. 온몸에 달라붙는 끈적끈적한 공기의 느낌이 이곳이 '남미'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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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행 비행기에서 내 뒷자리에 앉았던 루시아나는 미국 휴스턴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고 있는 브라질인이었다. 가족을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곧 다가오는 엄마 생신도 축하드릴 겸 상파울루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루시아나는 약혼자가 공항에 마중 나와 있기로 해서인지 한껏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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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의 입국심사대는 한국이나 일본, 미국과 달리 많이 허름했다. 질서 정연하지 않았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공항 안에 에어컨도 틀지 않아 후덥지근한 공기만이 사람들 사이를 오고 갔다. 사람들은 두 개의 줄로 구분 지어졌다. 브라질 국적의 사람들과 브라질 국적이 아닌 사람들. 브라질 국적의 사람들보다 여행이나 취업 등 어떤 목적을 가지고 브라질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다.
내가 서 있던 외국인 전용 줄은 몇몇의 배낭여행객들과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콜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브라질 주변국 사람들이 좋은 급여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브라질로 입국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브라질은 기회의 땅이었다. 그들은 브라질을 남아메리카의 희망이자, 구원 투수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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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하나 메고 온 배낭이 일본을 경유하는 과정에서 부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이지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90 달러 정도를 받고 배낭을 포기하겠단 각서를 쓰든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배낭을 하염없이 기다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요."
직원은 표정 없는 얼굴로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작별인사를 나누기 위해 나를 기다려주던 루시아나는 내 상황을 듣자마자 포르투갈어로 공항 직원에게 항의해 주었다. 직원은 영어로 말할 때보다 포르투갈어로 말할 때 훨씬 더 많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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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 기다리겠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너는 이제 그만 가봐도 괜찮아."
하지만 루시아나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가방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그들의 뻔한 답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루시아나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너만 괜찮다면 우리 집이라도 가 있을래? 우리 가족은 영어를 말할 줄도 모르고,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그게 중요치 않다는 것쯤은 우리 둘 다 알고 있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냥 어떤 생각을 하고 선택을 내리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자 루시아나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있잖아, 생각해보니 이건 엄청나게 좋은 생각 같아. 넌 진짜 브라질 사람들이 어떻게 밥 먹고, 잠자고, 청소하며 사는지 볼 수 있는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 그래도 될까?"
"그럼! 우리 집은 상파울루의 파벨라라고 불리는 곳에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가자! 모두들 너를 좋아할 거야."
난 그때 브라질이 어떤 곳인지, 파벨라가 무엇을 뜻하는지, 여행 중 하면 안 되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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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을 나가니 루시아나의 약혼자 호나우두가 루시아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승용차 트렁크에 장미꽃을 한 가득 실어 놓고. 둘에게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이었을까. 그런데 저기 저 먼 동양에서 온 어린애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옆에 멀뚱히 서 있으니….
그렇게 어색했던 서프라이즈 파티가 끝나고- 우리 셋은 차를 타고 루시아나의 집으로 향했다.
상파울루의 파벨라로, 슬럼가를 뜻하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