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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l 05. 2021

만나는 모든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프레데릭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프랑스에서 온 프레데릭을 알게 된 건 티모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날은, 트레킹을 억지로 따라나선 날. 티모시는 아침 식사 시간에 알게 된 사람들을 더 모아 그룹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온 프레데릭과 스위스에서 온 로빈, 로빈의 친구 다니엘이 있었다. 그리고 루크와 나. 이렇게 우리 6명은 우수아이아에 있는 설산을 올랐다.



너는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를 하니 프레데릭이 맨 처음 물었던 질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동양에 있는 나라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같은 것들은 알지 못했다.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팍 차눅! 킴 키덕!" 이런 말을 하며 자신들의 영화 지식을 뽐내고 싶어 했고. 그게 아니라면 "쌤송! 횬대!" 이렇게 친구 이름 부르듯 기업 이름을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밖에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 중국이나 일본과 많이 다르냐, 너네 나라 전쟁 중 아니냐, 이런 질문들이었는데 - 처음엔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다가 얼마 지나고 나서부터는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던 것 같다.



프레데릭도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  


"넌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 너희 나라 전쟁 중 아니야? 통일을 위해 젊은 친구들은 무엇을 하고 있어?"




프레데릭은 아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친구였다. 특히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것 치고 공산국가인 북한에서 여행을 온다는 게 정말 가능할 거라 생각하나. 그 정도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올 답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했다. 똑똑했지만 서유럽 열강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프레데릭.


하지만 프레데릭이 밉지가 않았던 것은 여린 모습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레데릭은 체력이 강하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남자들 사이에서 자신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지만 … 바람과 달리 늘 뒤처졌다. 때때로 나보다 뒤처질 때도 많았다.





네가 너무 뒤처져서 내가 따라 맞춰주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난 알았다. 프레데릭도 앞서고 싶지만 그러기엔 체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프레데릭은 내 옆에 서서 한국에 대한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다 짜내고 있었다. 체력은 앞서가는 저들보다 뒤처질지 몰라도, 지식은 뒤처지지 않았다. 학위만 4개가 있다고 했다.


프레데릭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 말고는 다른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러니 계속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학위에 대하여 이야기했겠지.


하지만 프레데릭의 진짜 매력은 남을 도와주는 모습에 있었다. 프레데릭은 남들보다 키가 크지도, 몸이 다부지지도, 체력이 좋지도 않았지만 - 도중에 다치거나 낙오되는 멤버가 생기면 살뜰히 챙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트레킹을 할 때도, 바이크를 탈 때도 다른 사람들은 최종 목적지를 찍는 게 가장 중요했는데 - 프레데릭은 그러한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목표 지점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으면  자전거에서 내려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향기를 맡아보라며 손짓을 했다. 꽃은 절대 꺾지 않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무리 좋은 향기를 내뿜고 있어도 꺾지 않았다. 나는 그런 프레데릭이 좋았다.




나 너를 사랑하는 것 같아.


"뭐라고?"


프레데릭이 고백을 했다. 문제는 내게만 한 게 아니었다. 호스텔에서 프레데릭과 이야기를 나눴던 여자들은 대부분 한 번씩 고백을 받은 모양이었다. 프레데릭은 내게 늘 사랑이 삶의 전부라고 말했다.


"네가 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줘."


너무 '사랑, 사랑, 사랑' 얘기만 하는 프레데릭에 지쳤던 나는 프레데릭이 한 사랑들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들으면 프레데릭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공통점이 있었다. 프레데릭이 말해준 사랑들은 모두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프레데릭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계속 사랑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며칠 동안 겪은 프레데릭의 캐릭터와 겹쳐졌다. 프레데릭을 미워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데릭의 사랑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우수아이아 호스텔에서 만난 중국계 영국인 베베를 나중에 칠레에서 다시 만났을 때, 베베는 프레데릭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혹시 너도 프레데릭한테 고백받았어? 사랑에 빠졌다는 말과 함께?"

"아……."


프레데릭이 베베에게도 고백을 했구나. 또 참지 못하고 사랑에 빠졌구나, 프레데릭.


"얼마 전에 누가 사랑하는 것 같다고 메일을 보낸 거야. 프레데릭이 누구지? 프레데릭이 누구지? 계속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 보는데- 그 우수아이아에서 만났던 프랑스 남자더라고. 좀 소름 끼치지 않아?"



나는 프레데릭 편에 서서 베베의 이해를 도왔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사랑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게 삶의 목적인 사람들. 내가 생각할 때 프레데릭은 그런 사람 같아."


베베가 너까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얼른 다른 주제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 프레데릭. 더 이상은 나도 너를 대변해주지 못하겠어.'




프레데릭은 우수아이아를 떠난 뒤, 그토록 바라던 사랑을 찾았을까? 몇 명이나 더 찾았을까? 혹은 진정한 한 명을 찾고 난 뒤- 사랑이라는 게 10명을 만나면 9명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까?



사랑을 찾았든, 아직 찾지 못했든 프레데릭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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