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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l 02. 2021

수억 년 전을 궁금해하던 루크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약속대로 오늘은 루크가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같이 따라 나서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피곤하다며 호스텔에서 쉬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나중에 유명 레스토랑에서 만나 킹크랩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우수아이아 시내로 나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는 또 다른 울적함이 존재하는 곳 같았다. 뭐랄까, 물을 잔뜩 머금은 느낌. 손가락으로 살짝만 찔러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아이의 표정, 그 표정을 닮았다. 우수아이아는.



루크는 연신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과 스포츠를 좋아하는 네덜란드 사람. 아기자기한 샵들을 구경하고, 사람을 관찰하고 그러한 일들에 루크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슬슬 짜증이 몰려왔다. '아 이럴 거면 왜 따라온다고 해서.'


우리는 한 동안 말없이 걸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많았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 표정이 많이 굳어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루크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념품 샵에 들어가서 엽서들을 사기 시작했다. 루크는 나처럼 엽서 사는 걸 좋아했다. 드디어 하나의 공통점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엽서를 팔 것 같은 가게란 가게들은 다 들어가서 예쁜 엽서들을 사 모았다. 가장 우수아이아가 잘 느껴지는 엽서들로.

 



우수아이아. Fin del Mundo,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 남극과 가장 가까운 땅.  


우수아이아의 우체국은 유명했다. 모두들 '세상의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를 부치고 싶어 했다. 루크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체국으로 갔다.



"넌 왜 안 보내?" 루크가 물었다.


나는 이걸 혼자서 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급하게 적어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지금까지 뭘 느끼고 경험했는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이날은 루크 혼자 엽서를 부쳤다. 그 엽서들은 네덜란드로 향했겠지. 세상의 끝에서 네덜란드로 부치는 편지.



우리는 우체국을 나온 뒤, 항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버려진 배들을 보았다. 바다를 보니 루크가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루크는 고생태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것도 바닷속 고생물을 연구하는 학생. 나는 고생태학이 무엇인지 이때 처음으로 찾아봤다. 루크는 그동안 내가 전공으로 하는 것들에 많은 관심을 보여줬는데, 나는 루크의 전공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색 한번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수천, 수억 년 전을 궁금해하는 일. 사라진 생물들을 연구하는 일. 물속에 잠겨있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 의미를 찾아주는 일.


길 위의 사람들 표정에는 관심이 없던 루크였지만 -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들,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것들,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잠겨서 존재하는 것들에는 관심이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이었다.


루크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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