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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다시 시작하는 용기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남들보다 더 삐뚤빼뚤 굽은 길,

더 힘든 길을 걷다 보면 스스로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길을 오래 걸어왔습니다.
남편의 폭력 속에서 삼 남매를 키우며 30년을 버텼습니다.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였던 날들.


의자가 날아왔습니다.
세 살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나는 그 소리에 귀를 막았습니다.
두려움에 밤마다 방문 앞에 침대를 막아 세워두고, 아이들을 꼭 안은 채 숨죽여 지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


내 안에는 아주 오래된 꿈이 있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접어야 했던, 대학이라는 꿈.


50살이 된 어느 날, 나는 다시 원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합격자 발표 창에 떠오른 문구.


‘합격을 축하합니다.’


그 순간, 세상이 다시 빛났습니다.

그 한 문장이 제게는 세상 모든 위로 같았습니다.
합격증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포기하려는 내게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포기하지 마요.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 보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낮에는 디자인 일을 하고, 밤에는 새벽 물류센터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냉장고 속 국수와 김치로 한 달을 버티며 모은 돈을 고스란히 통장에 넣었습니다.


결국, 등록금을 냈습니다.
아들의 희생과 응원 덕분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미안하면서도 내가 왜 다시 살아야 하는지 더 분명해졌습니다.


아들은 연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아들에게 기적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매니저가 되어 아들과 함께 다녔습니다.
아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는 카페 구석에서 노트북을 펼쳐 디자인을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나를 치유했습니다.


나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부모님 산소에 가보고 싶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놀이공원에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픈 딸의 건강을 돌보고, 커가는 아들의 성장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아주 소박한 소망입니다.


내 인생은 곧은길이 아니었습니다.
상처투성이였고, 수없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배웠습니다.
삐뚤빼뚤한 길도, 넘어져도, 늦어도, 멈춰도,

중요한 건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50살의 대학 합격, 아이들의 웃음, 아직 채워지지 않은 소망들
삐뚤빼뚤하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삶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순간,

다시 꿈꾸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용기 뒤에서, 나도 용기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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