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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Sep 11. 2022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는 참지 않는다 下

SNS에 포스팅을 올린 바로 다음 날 N에게 메시지가 왔다. 한국어로 쓰자니 그의 말이 너무 유치하게 느껴져 원문을 붙인다.


"My dear. I'm very surprised and sad to see your post about me. I was never a person like you said. I apologies 1000 times. Appreciate if you could delete the post for me and my family. Trust me, I will never meet a stranger and will never happen again."


나에 대해 올린 게시물을 보고 너무 슬프고 놀랐어. 난 그런 사람이 아냐. 너한테 1000번 사과할게. 제발 나와 가족들을 위해 그 게시물을 지워줘. 앞으로 잘 모르는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을게.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공개적인 공간에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단 걸 다시 한번 배웠다.


"I heard from one of staffs that you did similar thing to another staff before. I'm sure you tried many times in your life but I guess nobody complains because no one want to get in trouble. that's why you're still working as a manager.


But you chose the wrong partner this time. I'll never delete the post for your family and you. If you have any problem with my post, tell your boss. When your boss send me official apology letter, I'll think about it again.


Now I'm thinking about my experiences of sexual harassment on Trip Advisor together. For sure I'll put your name. If you don't want, find the way to make me feel better by yourself."


네가 예전에 다른 직원한테 비슷한 짓을 했다고 들었어. 넌 삶에서 비슷한 일을 많이 했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겠지. 아무도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하니까. 그래서 네가 여전히 매니저로 일하고 있잖아.


근데 넌 이번에 상대를 잘못 골랐어. 난 너랑 네 가족을 위해 절대 게시물을 삭제해 주지 않을 거야. 난 다른 사이트에도 관련 게시물을 작성할 거고, 거기에도 네 이름을 올릴 거야. 네 보스한테 말해서 공식 사과문을 보내. 그 외 내 기분을 낫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 놔.


N과 함께 일하는 인턴에게 메시지가 왔다.

"당신이 쓴 글을 기업 회장도 봤어요. N은 거의 미쳐가고 있네요. 제가 당신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오늘 제게 잘리고 싶냐고 협박했어요. 저는 N 아내한테 연락해 보려고요."


마무리를 해야 했다. 일하던 회사의 대표에게 메일을 보냈다.


"대표님은 제가 말할 때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지요. 지금부터 집중해서 똑바로 읽어요. 저는 거기서 일하며 느꼈던 내부 문제들, 그리고 제가 겪은 경험을 한국과 중국 사이트에 올려서 보이콧 운동을 주도할 거예요. 양 국가는 요즘 페미니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이게 진실이건 아니건, 이에 대한 대표님 입장이 어떻건 아무도 문제가 있는 곳으로 돈을 써서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 해요. 대표님은 지금 뭐가 중요한 지 아시나요? 잘 생각해서 대응책을 가져와요."


한국과 중국 고객의 수가 많은 5성 리조트였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대표는 공문을 보내왔다. 나름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내가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A와 N에 대해서 각각 일시적인 직무 정지를 가한다. A는 이번 달 월급의 절반, N은 월급의 3주를 감봉하고, 둘 다 계약 만료 전까지 승진과 월급 인상이 없으며 보너스도 받을 수 없다. 추가로 계약 갱신 여부에 관해선 더는 두 직원에게 발언권이 없으며, 회사의 권한으로 넘어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깔끔하고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중간에 연락해 회유하려던 사람들에게 나는 몇 번 더 화를 냈고, 변호사를 언급하며 잔머리 굴릴 생각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답안을 가져오라고 대표를 압박했다. 이처럼 실컷 화를 내는 건 속이 시원하긴커녕 고통스러웠다. 나 자신을 활활 태우고 나자 재만 남은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A는 사내 다른 사건에 연루돼 결국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나를 잊지 못하겠다고 가끔 연락해온다. N은 소식을 알 수 없다. 친했던 동료는 정말 많은 사람이 퇴사했고, 자꾸만 체제가 바뀌어 혼란스럽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누군가는 나를 두고 손가락질을 했다.

“당신은 과연 남들을 자신 있게 비판할 만큼 떳떳한가요? 성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같이 공격하면 그야말로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내부 문제에 대해 폭로하는 건 다른 구성원에게 피해를 주잖아요.”


난 진심으로 궁금해 물었다.

“비정상적인 일을 겪었는데 정상적인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상대는 가만히 있던 저를 비겁한 방식으로 공격한 거고, 전 공격에 대응한 건데 이 둘이 어떻게 같죠? 명백히 차이가 존재하는데 똑같다고 무마하는 건 결국 더 잘못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됐을 것이라고. 선례가 되어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일도, 피해자에게 섣불리 네가 참으라고 말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환경에 자신을 맞추고, 미련한 사람은 자신에게 맞게 환경을 뜯어고친다. 결국 나처럼 미련한 사람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훗날 친한 선생님께 이 얘기를 말씀드리자 마구 웃으시며 "회사에서 화가 난다고 진표 씨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상사와 대표에게 그렇게 행동한다는 건 조직 생활이 안 맞는 거예요. 근데 그 정도 패기면 회사 밖에서도 충분히 먹고 살 거예요."라고 하셨다.


진작 깨닫고 회사 생활을 포기했다면 좋았을 텐데, 당시 안일하게 다른 회사에서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부당한 일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도무지 잘할 수 없었다. 남들 말마따나 먹고 살려면 결국 꾹 참고 버티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건지 고심했다.



이 글에 쓰인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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