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Jennifer)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 다윈센터 봉사자
갈라파고스. 이 섬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이 섬에 가본 사람들은 그곳을 지상낙원이라 평한다. 에콰도르 본 대륙으로부터 1,000km 떨어진 동태평양의 섬.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인간의 손이 적게 닿았고, 그 덕분에 지구 곳곳에서 멸종되어 가고 있는 수많은 동물 종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갈라파고스에 한 번 발을 디디면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바다사자와 육지거북이 제 집인 양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선착장 계단이나 산책길의 벤치에, 마치 서울의 한 출근길에서 비둘기를 만나듯 일상적으로 이런 동물들을 마주칠 수 있다.
갈라파고스에는 들어가려면 내야하는 ‘입도비’가 있다. 120달러라는 큰돈이지만 섬을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대가다. 대신 섬 내에 무료로 방문해볼 수 있는 다양한 국립공원은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다. 천혜의 낙원 갈라파고스를 보호하려는 에콰도르 정부의 노력이다.
갈라파고스를 찾는 관광객 사이에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는데, 바다사자는 예민해서 한 번 사람 손에 닿으면 스트레스로 끙끙 앓다가 결국 죽게된다고 한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문을 믿는 관광객들은 바다사자로부터 (바다사자가 안전하게 여길 수 있는) 안전거리를 확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 덕에 인간의 위협을 경험해본 적 없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온 동물들은, 인간을 마주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천진난만하게 다가온다. 이 섬 안에서 인간은 수많은 동물과 같은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다.
갈라파고스의 인기, 그 중심에 있는 건 역시 다윈이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에서 수많은 고유 동물종을 발견함으로써 진화론을 확신했다. 갈라파고스 곳곳에서는 다윈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관광거리를 걷다보면, 턱수염이 북슬북슬한 다윈의 얼굴이 일렬로 늘어서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만의 고유한 동물종을 연구하기 위해 세워진 생물학 연구센터의 이름도 ‘다윈센터’다. 커다란 눈을 반짝이는 제니퍼를 처음 만난 것은 다윈센터 내의 거북이 사육장에서다.
“비가 오는 날엔 똥을 모으는 게 조금 힘들지. 그래도 난 이 일이 좋아.”
제니퍼가 맡은 일은 매일 거북이의 배설물을 채취하는 것이다. 다윈센터에서 사육되는 거북이들은 등껍질에 노란색으로 번호가 적혀있다. 특별관리 대상이라는 의미다. 기후, 식사 등 각종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거북 이들의 건강상태를 제니퍼는 자식을 돌보듯 꼼꼼히 살핀다.
스물두 살의 제니퍼는 아직 대학생이지만, 2년 전부터 갈라파고스 내의 연구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사실상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일을 자원봉사를 시작한 셈이다. 동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을 일이다.
“다윈센터로 옮겨온 지는 3개월 쯤 됐어. 거북이와 함께 일을 한 건 보름 정도 전부터인데, 처음엔 거북이와 눈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빙그레 웃는 표정에 관록이 묻어나는 것 같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야.”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 전에 나는 본심을 털어놓는다. 제니퍼와 마주앉아 인터뷰를 시작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삼고초려 끝에 얻게 된 인터뷰 기회. 삼고초려라는 말은 거창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제니퍼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정해진 일정도 내팽겨치고 다윈센터를 세 번이나 다시 찾았던 것이다.
처음 제니퍼를 마주친 것은 인터뷰 날로부터 사흘 전. 나는 관광 차 다윈센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 출구가 아니라 사무실 쪽으로 난 길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사무실에서 나오던 제니퍼는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관람을 마치고, 센터를 떠나기 전에 거북이 사육장 안에 있는 제니퍼를 발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 더 건네자, 그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저기…… 혹시 메일주소를 알려줄 수 있니?”
“나 말이야?”
“응. 나는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거든. 메일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서.”
첫인상부터 해맑았던 제니퍼. 해사한 미소가 반짝 빛난다.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메일주소를 적어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바로 인터뷰를 요청했고, 제니퍼는 선뜻 수락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잘 풀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숙소로 돌아와 인터뷰 시간을 정하려고 보낸 메일에는 한참 답이 없었다. 갈라파고스 섬에선 와이파이도 잘 터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다윈센터를 찾아가 봤다. 하지만 거북이 사육장에 제니퍼가 보이지 않고, 사무실 문을 쿵쿵 두드려봐도 답이 없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나오는 길, 입구를 지키던 경비원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을 건다.
“찾는다는 친구는 찾았어요?”
“아뇨. 안에 없네요.”
“이름이 뭔데요?”
“제니퍼라고, 여기서 자원봉사 하는 친구예요.”
“아, 제니퍼. 잘 알지. 정말 열심인 친구예요. 매일 같이 나오곤 하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열정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아마 오후에 나올 것 같은데. 한 세 시 쯤?”
그때가 오전 10시쯤. 나는 그날 다른 섬으로 옮길 예정이었고, 배는 하루에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오후 배가 섬을 떠나는 시간은 2시. 인터뷰 때문에 오늘 하루를 포기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인연이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오후 배를 포기하고 3시가 되기를 기다려 다시 한 번 다윈센터로 찾아갔다. 그렇게 다윈센터를 세 번씩이나 찾아가 드디어 시작하게 된 인터뷰이니,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숨을 가다듬고 우선 제니퍼의 꿈을 물었다. 그의 꿈은 일단 대학 졸업. 대학을 졸업해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제니퍼는 다음 학기부터 졸업논문을 쓰기 시작할 예정이란다.
“학교를 마치면, 여기 다윈센터에서 일하면 좋겠어. 아니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이나, 다윈재단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공부도 계속 하고 싶고. 분자 생물학 같은 생명기술에 관심이 많거든.”
동물에 대한 애정 만큼이나 반짝이는 배움에 대한 열의가 느껴진다.
“여기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게 힘들진 않아?”
“힘들지. 힘든 건 사실인데, 그래도 여기 있는 게 너무 좋아. 무슨 일이든지 동물들이랑 함께 하는 일이 제일 좋아서 이 일을 택했어.”
“원래 동물을 좋아했어?”
“어렸을 때는 더 좋아했지. 동물들의 입 안에 거침없이 손을 집어넣곤 했대. 이빨이 없는 동물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하하.”
“또 해보고 싶은 건 없어?”
“여행도 가보고 싶기는 하네. 여행에서 내 미래의 구체적인 방향을 찾아보고 싶어. 또, 다윈센터 말고 다른 곳에서도 봉사를 더 해보고 싶어. 봉사라는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 이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가는 협업(colaboracion)이기도 하니까.”
봉사가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 공동의 협업이라고 말하는 그의 눈빛이 올곧아 보인다.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하지만 졸업 이후에 하는 일은 봉사와는 다르겠지?”
“연구실에 들어가면 지금 하는 일과는 분명 다를 거야. 하지만 난 앞으로도 쭉 현장과 실험실을 오가며 일하고 싶어. 오피스에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 싫거든. 어느 정도의 루틴은 괜찮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변주가 있었으면 좋겠어.”
제니퍼는 조금 전에 채취해서 여전히 축축한 거북이 똥을 쓱 훑어보더니, 빙그레 웃고는 덧붙여 말한다.
“물론, 지금은 변주가 너무 많은 것 같기도 해. 하하.”
제니퍼가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은, 크고 작은 갈라파고스의 섬들을 모두 밟아보는 것이다. 갈라파고스는 크고 작은 19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섬으로 산타크루즈, 이세발라, 산 크리스토발, 플로레아나를 꼽는다. 제니퍼는 아직 플로레아나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른 섬에 놀러가면, 캠핑을 꼭 해보고 싶어.”
“갈라파고스에서도 캠핑을 할 수 있구나!”
“응. 국립공원의 허락을 받으면 할 수 있어. 지금도 가려면 갈 수는 있지만, 가족들이 워낙 걱정을 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엄마는 아직도 내가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느껴지시나 봐.”
“엄마들은 다 그렇지. 우리 엄마도 그러시는 걸.”
“참, 하나 더 소원이 있다면 가족들과 다 같이 육지로 여행을 가보고 싶어. 아버지와 할머니는 지금 육지에서 일하고 계시거든. 사실 난 엄마, 남동생과 같이 살긴 하지만 얼굴 보기도 어려워. 남동생도 대학에 다녀서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어머니도 일하시느라 바쁘시니까. 서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소박한 소원들을 조잘조잘 늘어놓는 제니퍼의 얼굴이 설렘으로 가득 찬다. 그녀가 살아 온 갈라파고스 섬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난다.
그녀에게 10년 후 오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달라고 부탁해본다.
“10년 후에 아마 일을 하고 있겠지? 학위도 더 가지고 있을 것 같고. 내 가족,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을 거야. 가족들 먹여 살릴 만한 돈은 벌고 있길 바라고. 하하.”
“하하. 그럼 얼마나 벌어야 될까.”
“글쎄. 대단한 건 아니지만. 원하는 걸 먹고, 필요한 걸 사고. 핸드폰도 살 수 있고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는 정도? 내가 그동안 받은 것들을 내 자식들도 받으면서 자랐으면 좋겠어.”
“그럼 그때는 어디서 살고 싶어? 계속 갈라파고스 섬 안에서 살 거야?”
“음, 가능하다면 갈라파고스에서 살고 싶어. 아이들을 교육하기에도, 내가 일하기에도 갈라파고스가 더 좋을 것 같거든. 내 친한 친구들도 다 여기 살고 있고. 육지에 몇 번 안 가보았지만 위험한 곳이 많은 것 같아. 여기 갈라파고스는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분위기야.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지.”
“넌 갈라파고스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갈라파고스에서 자란 시간들이 참 좋았어. 나도 이곳에서,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이들을 키워가고 싶어.”
“어머니는 어떤 분이야?”
“우리 엄마는… 지금껏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주셨어.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셨고, 항상 나를 도와주시지.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물론 내가 엄마 말을 잘 안 듣지만, 하하.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야.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거잖아.”
어머니를 떠올리는 제니퍼의 눈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앞으로의 40년 후를 묻자 제니퍼는 큰 고민 없이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때 필요한 건 두 가지 아닐까? 직업과 충분한 저축(profección y ahorro sufficiente).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하하.”
제니퍼, 의외로 현실적인 친구다. 그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웃어보이고는 이내 덧붙인다.
“40년이 흘러도 계속 지금 같은 일을 하고 싶어. 나의 삶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함께 한다는 것(colaboracción)이라고 생각하니까.”
“넌 40년 후에도 꼭 오늘과 닮았을 것 같아.”
“하하. 그러면 좋겠다. 계속 지치지 않고 하고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새로운 장소, 사람, 친구들을 알아가면서 말이야. 참, 언젠가 캠핑은 꼭 하고 말 거야. 아무리 나이가 들더라도, 걸을 수 있는 한 어디로든 계속 떠날 테니까.”
이십대 초반의 제니퍼가 그리는 유토피아의 모습은 어떨까. 평생을 육지에 나가본 게 몇 번 되지 않는 그녀가 지금껏 알아 온 세계는 곧 갈라파고스였다.
“갈라파고스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에는 정말이지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isla tranquila)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지. 많은 사람들이 낙원을 꿈꾸면서 갈라파고스로 들어오지만, 3개월 넘게 섬에 머물면 다시 떠나고 싶어해. 옛날보다 한층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이 된 것 같아.”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고향을 잃을 수 있구나. 어릴 적부터 자라온 고향을 빼앗긴 그의 표정이 슬퍼 보인다.
“항구에 가면, 거대한 컨테이너가 잔뜩 쌓여있어. 과야킬(에콰도르의 주요 항구)에서 오는 것들이지 전부. 기술도 계속 들어와서, 예전에는 앞바다에 작은 배들만 있었는데 배들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사실 난 이런 변화들이 불편하고 무서워.”
갈라파고스는 실제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어왔다. 1980년대 1만 명 수준이 었던 관광객 수는 점차 늘어나 이제 20만 명이 넘는 수로 증가했다. 우후죽순으로 호텔도 들어오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오가는 물자도 늘어났다. 세계와 격리된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갈라파고스도 세계화의 파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런 변화가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줬어?”
“그럼. 예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알았어. 하지만 이제 동네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마구 돌아다녀. 차도 이렇게 많지 않았어. 원래 우리집 앞은 온통 풀밭이었거든. 그런데 끊임없이 공사가 생기고 집이 지어지고 있어. 전엔 찾아볼 수 없던 2층 집도 많이 생겨났고, 3층이나 4층 집도 올라가고 있지. 호텔도 여기저기 생겨나고.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은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 동네만 돌아다녀도, 나는 자꾸만 올려다봐야만 해.”
갈라파고스에 찾아온 변화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바꾸어 놓았다. 건물들은 끝없이 높아지고, 어쩔 수 없이 사람은 건물을 우러러 본다.
“새로 갈라파고스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어.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이렇게 많지 않았는데. 그런 것들이 늘어나니까 도로도 늘어나고. 마을의 풍경이 매일 달라지고 있어.”
“원래부터 갈라파고스에서 살아 온 토박이들은 많이 불편하겠네.”
“하지만 놀라운 건…… 모두 이런 변화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야.”
근심어린 제니퍼의 말투에 나는 잠시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가만 들여 다보았다. 제니퍼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풀죽어 보이는 눈이다.
“하지만, 어디엔가 유토피아가 있다면…….”
제니퍼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잇는다.
“바로 이곳, 갈라파고스 같은 곳일 거야.”
역시. 갈라파고스라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여기에는 그래도 폭력도 없고, 시끄러워지긴 했지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나마 보호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전 세계가 온통 오염되고 있잖아.”
온 세계의 변화에 대한 씁쓸한 반응도, 갈라파고스에 대한 깊은 자부심도 부정할 수가 없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변화의 폭풍 속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렇게 둥둥 떠내려가는 것뿐일까.
“딱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자연재해를 모두 없애고 싶어.”
어쩔 수 없는 자연 지킴이, 제니퍼다운 포부다. 지구온난화, 쓰나미, 지진과 같은 재해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단다. 제니퍼는 귀찮게 하는 뾰루지를 시원하게 짜내버리고 싶다는 눈빛으로 박멸의 의지를 드러냈다.
“지구의 기후를 아예 바꿔버리고 싶어. 이왕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아주 급진적으로(radicalmente) 바꾸어놓고 싶으니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해가 갑자기 중단되는 거야. 2025년이 되는 날 땡 하고 지구온난화가 모두 멈춘다! 이런 식으로 말이야. 하하, 생각만 해도 좋다.”
마치 원더우먼이 된 것 같은 제니퍼의 표정. 예기치 못한 재해, 혹은 알고도 내버려 둔 재해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무수한 얼굴들을 기억하는 마음씀이 예쁘다.
“그러면 고요한 안정(calma)이 찾아올 수 있을 거야. 평화(paz)와 평온함(tranquilidad) 속에 놓인 세계를 만날 수 있겠지. 이 섬 안에서 그렇듯이, 동물도 인간도 모두 함께 그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결국 유토피아이고, 파라다이스인 것 아닐까?”
질문지에 적힌 모든 질문이 끝나고도 나는 인터뷰를 마치지 못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이어진 인터뷰를 끝맺기 싫었나보다. 오랜 친구와 한바탕 수다를 나눈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몇 번씩이나 인터뷰를 해도, 첫 질문은 떨리고 마지막 질문은 아쉽다. 제니퍼의 어리고 맑은 눈망울이 또르르 구르더니, 짧은 한 마디를 남긴다.
“당신이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그냥 그걸 하세요.(Cuando te gusta algo, Lo haces)”
- Galapagos, Ecuador
- 인터뷰 날짜 : 2015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