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Adrian) / 콜롬비아 살렌토 / 커피 바리스타
“콜롬비아의 바리스타.” 일본의 스시 쉐프, 프랑스의 소믈리에만큼이나 듣기만 해도 믿음이 가는 이름이다. 바리스타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정돈된 머리칼에 진한 고동색 앞치마를 두르고, 점잖게 한쪽 손등을 허리 뒤에 붙이고 그라인더로 갈아둔 원두에다 온도가 맞춰진 물을 따르는 모습. 옷깃에는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다. 우리는 커피에서 도시의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정말 커피가 그런 것일까?
바야흐로 커피의 시대. 우리는 습관처럼 매일 커피를 마시지만,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영롱하리만큼 진하고 검은 빛깔, 깊숙이 들이마시면 머릿속을 휘감는 따뜻한 향.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행복,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친구인 커피. 콜롬비아에서 마주친 젊은 바리스타는, 우리가 알던 커피와 조금 다른 커피 이야기를 들려준다.
살렌토는 말 그대로 ‘커피 빼면 시체’인 도시다. 콜롬비아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커피 지역(Zona cafetera)’의 대장 도시다. 이 도시는 콜롬비아가 자랑하는 3대 커피 도시 중 하나로, 일대에 광대한 넓이의 커피콩 농장이 있어서 전 세계로 커피를 수출하고 있다. 기후, 강수량, 토양 등 생육환경이 적절해서 맛있는 커피콩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 가려면 근처의 대도시인 아르메니아를 거쳐야 한다. 아르메니아에서 버스로 40분. 나는 메데진에서 버스로 아르메니아까지 가서 다시 살렌토행 버스로 갈아탔다. 이미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간. 아르메니아에서 탄 버스가 살렌토 중앙광장에 멈춰 섰을 때, 온 도시에는 노오란 불빛이 가득 번지고 있었다.
살렌토 중심지는 크지 않아서 오밀조밀 포근한 느낌이 든다. 광장으로부터 격자 모양으로 도로가 가지런히 뻗어있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지붕이 낮고 연한 파스텔톤으로 벽을 칠했다. 광장 가운데 씩씩하게 선 성당도 개나리색 옷을 입고 편안히 웃어준다.
아침이 밝으면 잠들었던 살렌토의 매력도 깨어난다. 마을 구석구석이 커피를 내리는 향으로 가득하다. 아무런 계획 없이 몸을 일으킨 사람들은 일단 주섬주섬 커피를 마시러 간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마냥 평화로운 마을이다.
살렌토에서 머무른 호스텔은 중앙광장에서 멀지 않은 골목의 끝자락에 있었다. 건물 한 켠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로비 겸 공용 공간이다. 기둥에 해먹이 두 개 걸려있고, 명랑한 색으로 알록달록 칠해진 테이블과 의자가 보인다. 아침을 먹는데 테이블 옆에 앉아있던 한 친구가 인사를 건넨다. 인도인인 라울은 최근까지 싱가포르에서 일하다가 1년짜리 휴가를 얻어 여행을 시작했단다. 마땅한 계획 없이 도착한 살렌토. 커피 말곤 아는 게 없던 터라 라울의 계획에 무임승차를 시도해본다.
살렌토의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코라 계곡. 코코라 계곡은 60m가 넘는 팔마데세라(Palma de cera, 왁스야자나무)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잔가지 하나 없이 미끈하게 위로 솟은 야자나무는 마치 사람처럼 꼭대기에만 더벅머리를 얹고 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야자나무의 풍경은 초원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물론 신비로운 코코라 계곡의 풍경을 누리려면 합당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코라 계곡 트레킹 코스는 멋모르고 따라갔다가는 꽤나 깊숙한 골짜기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부터 세 시간 넘는 트레킹을 끝내고, 에너지를 다 소진한 우리는 일찍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버섯 크림 크레페를 파는 곳이다. 식사를 시키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커피가 자연스레 나온다. 따뜻하고 걸쭉한 크레페와 쌉싸름하고 진한 향의 커피가 신기한 조화를 이룬다. 콜롬비아, 그리고 살렌토 사람들에게 커피는 문화를 넘어 일상이며 생활이다.
저녁을 다 먹고, 라울이 전날 보아둔 카페가 있다기에 따라가 본다. 살렌토는 거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길 찾기가 간편하다. 라울이 눈 여겨 본 카페는 우리가 묵던 호스텔의 바로 뒷 골목. 밤이라서 대부분 불이 꺼진 골목의 맨 안쪽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쯤 되는 작은 가게다.
하얀 간판에 적힌 카페의 이름은 베르나베 고메(Bernabe Gourmet). ‘베르나베 최고의 맛’이라는 의미다. 커피 뿐 아니라, 스테이크나 파스타 같은 식사메뉴도 함께 팔고 있다. 노란 불빛이 비추는 테라스에는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도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주문해 본다. 젊은 얼굴의 사장님이 두른 검은 색 앞치마가 왠지 믿음이 간다. 뭐가 뭔지 모르겠을 땐 역시 ‘사장님 추천’을 외친다. 사장님은 빙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무언가 바리바리 들고선 돌아온다. 오늘 볶은 원두를 꺼내 슥 보여주더니 그라인더에 넣는다. 커피콩이 곱게 갈아지며 진한 향을 풍긴다. 라울과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원두 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사장님은 전자저울의 영점을 맞춘다. 오른손에 주전자, 왼손에는 시계를 들고 허리를 곧게 펴고 선다. 눈을 힐끗 돌려 시간을 확인하더니 주전자에 꽂힌 온도계로 물의 온도를 잰다.
“저울은 왜 사용하는 거예요?”
“정확한 물 양을 계량하는 거죠. 최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예요. 작은 변화에도 커피 맛은 민감하게 달라지니까요.”
“그럼 시계는요?”
“같은 양의 물을 사용하더라도, 몇 초에 걸쳐서 붓는 지가 중요하거든요.”
잠시 기다리던 사장님은 온도가 흡족했는지 주둥이가 긴 주전자를 기울인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진 물줄기는 고운 커피가루를 적시고 색을 바꿔 아래로 흐른다. 시계에 시선을 둔 채 주전자의 각도를 조절하는 사장님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똑똑 떨어지면, 커피는 완성된다. 진득한 화이트초콜렛 향기가 테이블을 감싼다. 경건한 기분이 되어 커피 잔을 들어올린다. 입술에 잔을 대자 따뜻한 향이 부드럽게 입안에 퍼진다. 쓴 맛이 없는 커피에서는 수목원의 상쾌한 바람 같은 청명한 냄새가 난다. 원래는 커피의 씁쓸한 향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맑은 나무 냄새가 콧속을 건드리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자꾸 마셔도 무뎌지지 않는 신선함. 이제껏 마셔본 적 없는 잎차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 무겁지 않은 청갈색 향기를 다시금 맛본다.
결국 라울과 나는 원두를 나란히 세 팩 씩 사버렸다. 늘 가방의 무게와 싸워야하는 배낭여행자의 숙명을 잠시 잊게 만드는 커피맛이었달까. 자리를 일어나기 아쉬워 사장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본다.
“아, 이제 닫을 시간인데. 잠시 기다려 줄래요 그럼?”
“그럼요! 기다릴게요.”
라울을 보내고 가게 정리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기다린다. 즉석에서 성사된 인터뷰라 노트도 펜도 없다. 카페의 계산서 몇 장과 펜을 빌려 자리를 잡는다. 사장님은 정리를 마치고 돌아온다. 너무 설레버린 나머지 이름을 묻는 것도 잊은 채 시작한 인터뷰. 콜롬비아의 토박이 바리스타 아드리안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유럽과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퓨전 커피 분야를 개척하고 싶어.”
바리스타 아드리안. 그는 ‘커피의 나라’ 콜롬비아와 전 세계를 연결해주는 접점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커피가 세계의 식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잖아. 커피와 함께 즐기면 좋은 음식이 얼마나 많아. 외국인들이 여기 살렌토를 찾아오는 제일 중요한 이유도 커피니까. 여길 찾는 모든 이들에게 커피와 함께하는 삶의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 그게 살렌토라는 도시를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줄 거야.”
아드리안은 살렌토를 찾는 모든 사람이 커피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돌아가길 바란단다. 그에게 커피란 그저 한 잔의 음료가 아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맛의 문제가 아냐. 커피 한 잔에는 커피콩 재배업자, 커피콩을 고르는 사람, 말리는 사람, 원두 굽는 사람, 바리스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지. 그걸 잊어버리면 안 돼.”
아드리안의 카페에선 특별한 커피만을 판매한다. 아무 커피나 가져다 쓰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살렌토 근방에 펼쳐진 드넓은 커피 구역에선 커피콩이 무수히 재배된다. 하지만 아드리안은 직접 커피농장에 가보고, 커피콩이 재배되는 단계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곳의 커피를 사용할지 결정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땀 흘려 일한 농장 노동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지도 중요한 기준 중 하나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 커피 원가 후려치기로 이루어 낸 ‘원가 절감’은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나는 바리스타야.”
하나의 선언 같은 말이다. 나는 가만히 맞장구를 친다.
“맞아. 넌 콜롬비아의 바리스타지.”
“그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바리스타가 바리스타지, 뭐란 말인가. 커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묻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드리안은 사뭇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동료는 농장노동자(campesino) 들이야. 그래서 나는 농장노동자들의 삶의 질, 또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일종의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어.”
“커피의 인기는 계속 높아지고 있잖아. 왜 그들은 힘들어지는 거야?”
“이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건 커피 가격이 너무 낮기 때문이야. 1년 내내 일해 봤자 수입은 적어. 투입되는 노동에 알맞은 값을 치르고 커피콩을 사려는 기업은 별로 없으니까. 갈수록 농장은 줄어들고, 커피 재배자들은 다른 출구를 찾아 떠나고 있어.”
실제 커피 가격과 커피콩 가격 사이에는 상상 이상의 간극이 존재한다. 보통 커피콩은 커피 원가의 0.5%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지불해 온 커피 값의 대부분은 유통 및 마케팅에 쓰이거나 규모가 큰 커피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 아드리안은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며 말을 잇는다.
“바리스타는 흙냄새가 나는 직업이란 걸 기억해야 해.”
파티쉐는 달콤한 직업 같지만, 그들은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우리는 스시 쉐프가 생선을 밥 위에 올리는 장면만 기억하지만, 그들은 매일 비린내와 핏물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도, 커피가 재배 되는 현장을 떠날 수 없다. 흙냄새를 잊어버린 커피에는 깊은 맛이 담길 수 없다. 그것이 아드리안이 말하는 커피다.
“나의 할아버지는 농장에서 일하셨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를 키우기 위해 참 열심히 일하셨지. 엄마도 같은 농장에서 함께 일하셨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쉬고 계셔. 나는 이분들의 삶을 존경해.”
아드리안의 이야기를 다 듣자, 한 번 더 그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내일 카페 여는 시간을 묻자 아드리안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 내일은 금요일이지만 가게는 휴무야. 내 아내가 졸업식을 하는 날이거든.”
그의 아내는 대학에서 공부중이다.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아드리안.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딱 하나만으로 정하자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집에서 아내와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삶이 바로 내 꿈이야. 그러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서고 말이지.”
아드리안의 꿈은 지금과 같은 삶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뿐이다. 소박한 꿈 같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나는 올해 콜롬비아 커피 재배농 연합 ANUC(La Associación nacional de Usuarios Campesinos de Colombia)의 대표로 선출되었어. 선거가 올해 있었고 앞으로 4년의 임기를 책임져야 하지. 살렌토 지역에는 대략 1000~1500명이 소속되어 있고 전국적으로는 200~300만 명 규모야.”
그저 작은 카페 사장님인줄 알았더니. 콜롬비아 커피 산업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아드리안은 커피 그 자체를 넘어, 커피를 만들어내는 시스템 전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커피라는 문화를 오래도록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가 영원히 인류의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왕 대표가 되었으니까 커피재배농과 그 가족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최선을 다해서 찾는다면 분명 길이 있을 거라 믿어.”
젊은 바리스타, 라는 짧은 묘사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한 청년의 눈이 반짝인다. 그는 커피를 내리는 매 순간 그 안에 담긴 삶들을 떠올린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커피 방울이 곧 하나의 생명인 셈이다.
10년 후 아드리안의 모습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드리안 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의 아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여기 이 카페에서 머무르고 있는 모습. 오늘보다 더 평온한 마음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상상한다. 아드리안에게 행복이란 커피, 그리고 가족이다.
“매일 매일 커피에 대해 배우고 싶어.”
그의 눈은 마치 이제 막 처음 커피를 알아가는 사람처럼 반짝거린다.
“커피를 배우는 일에는 고양이 일곱 마리의 인생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그만큼 깊은 세계라서 모두 배우려면 무수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커피의 모든 것을 알아가고 싶어. 커피콩을 따는 사람, 가공하는 사람, 원두를 갈고 내리는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내 인생 전부를 살고 싶어. 앞으로 40년이 더 흐르면 나는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지낼 것 같아. 여기 이 카페는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나는 가끔 와서 아이들이 내린 커피나 마셔야지.”
“참 멋진 노년이네.”
“맞아. 내가 나고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유토피아의 조건을 물었을 때, 아드리안은 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All you need is love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야). 서로를 형제애로 감싸는 마을이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다.
“전쟁과 증오는 전부 사랑의 결핍을 뜻한다고 생각해. 다들 사랑을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은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야.”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 나는 또 다른 너야, 라는 생각이 곧 사랑이라고. 내가 널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나무를, 꽃을, 바람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의미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신경쓰고 걱정하고 돌보는 거지. 결국 유토피아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이야.”
“그럼 지금 우리 세계는 어떤 것 같아?”
“지금의 세상은 하나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 그 신앙은 서방 세계에서 온 것인데, 바로 돈이야. 우린 금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하잖아. 이젠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졌어. 하지만 세상에 오로지 단 하나의 형식(una forma)만 존재 해야 한다면, 그건 사랑이야. 돈이 아니라.”
그렇가면 아드리안은 뭐든지 바꿀 수 있는 슈퍼파워가 생긴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어할까?
“우리가 동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고 싶어.”
“우리……라면?”
“우리 인간들. 우리는 스스로 동물이기를 거부해왔어. 갖가지 이유를 들어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세우곤 했지. 하지만 우리는 동물이고, 지구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개, 고양이, 풀잎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말이야.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자연을 존중하게 될 거야.”
“내가 아닌 다른 존재, 지구의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는 의미야? 지구가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고 볼 수 있어. 내가 딱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지구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놓고 싶은 거야. 우리는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 속해있는 거니까. 서열로 따지자면 지구보다 아래인 거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만큼 진득하게, 살렌토의 밤은 깊어갔다. 밤이 조용한 마을이라 창밖으로는 11월의 마지막 밤바람 소리만 흐른다. 아드리안은 마지막 포부를 밝히며 인터뷰를 맺는다. 직원들도 이제 퇴근해야 하니까.
“우리는 결국 더 뛰어난 품질의 커피를 만나게 될 거야. 이때 품질이라는 건 맛이나 향을 의미하는 게 아냐. 정당하고 공정한 환경 아래서 생산된 커피를 말하는 거지. 커피라는 결과물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그게 커피의 '진짜' 품질인 거야. 한 알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은 품질?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문득 나는 ‘쉽게 마셔진 커피’를 반성했다. 물론 커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깔끔한 포장재 속에 감춰진 이야기들은 애써 들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할 거야. ‘진짜’ 높은 품질의 커피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
- Salento, Colombia
- 인터뷰 날짜 : 2015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