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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17. 2022

"행복은 지금 이 순간 안에 있어"

후안카(Juan Ca) / 콜롬비아 타강가 / 배 타는 대학생


"오늘 여기 숙박 가능한가요?"

"어쩌죠, 오늘 남은 자리가 딱 하나뿐인데."

"그럼 거기 머물게요. 아... 해먹이에요?"


타강가에 하루 더 머물게 되어서 급히 숙소를 찾던 날. 내가 만난 '침대'는 나란히 걸린 해먹들 중 하나였다. 해먹에 깊이 파묻혀서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는다. 해먹이 그네처럼 좌우로 부드럽게 스윙하면, 엄마 품에서 자장가를 듣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든다. 진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까무룩 잠에 빠진다.


이곳은 카리브해에 숨은 작은 어촌 마을, 콜롬비아 타강가다.


팔뚝만한 굵은 밧줄을 휙 던져 계선주에 걸고 힘차게 당긴다. 배는 조금씩 육지에 가까워진다. 이내 흔들리던 배가 완전히 멈춘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스물셋의 청년 후안 카를로스. 매일 배를 타는 까만 어깨에 바닷물이 수정처럼 맺혀있다. 내 방식대로 행복하면 그만이라면서, 그는 오늘도 이미 행복하다고 말한다.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해를 마주한 매력적인 도시들이 즐비한 곳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인구 65만의 도시 카르타헤나. 여기서 동쪽으로 여섯 시간 달리면 (남미에서 그 정도는 지척이다) 산타마르타라는 도시가 나온다. 다시 색바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30분 더 가면 '타강가'라는 귀여운 이름의 작은 마을이 나온다.


타강가 해변 풍경  / 사진출처 : Google maps


타강가는 말 그대로 '깡촌'이다. 본래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작디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다 스쿠버다이버들이 하나둘 이 마을에 정착하고, 다이빙 샵이 생겨나면서 남미의 다이빙 천국으로 소문이 퍼졌다. 다이빙 자격증 취득 비용도 저렴하고 물가도 낮아 오래 머물기도 좋다. 나도 꿈꿔오던 갈라파고스 다이빙을 하려면 미리 배워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타강가를 찾았다. 그때만 해도 일주일이나 머물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내가 고른 다이빙 스쿨은 언더프레셔(Under Pressure, 줄여서 언프라고 불렀다). 바다에서 한 블록, 걸어서 3분 컷인 최고의 위치를 자랑한다. 위치보다 좋았던 것은 단연 사람들. 나중엔 '언프 가족들'이라고 부를 만큼 편안해졌다. 매튜, 마리아, 오마르, 존, 찰리,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까지.


언프의 주인장, 매튜는 캐나다 사람이다. 다이빙 배우러 왔다가 사랑에 빠져버려서 타강가에 남게 되고 결국 다이빙샵을 차렸다는 다소 클리셰 같은 러브스토리. 하지만 이 스토리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의 여자친구 마리아다. 예쁘고 다정하고 밝은데다 재치까지 있는 사람이다. 매튜는 복도 많지, 어떻게 저런 콜롬비아 미녀를 만나 가지고.


오마르는 내 다이빙 사부. 키가 작고 배가 뽈록 나온 단단한 물개 같은 체형에서 천상 바다사람 같은 느낌이 풍겨진다. 턱을 덮는 까슬까슬한 수염, 짧지만 곱슬기 있는 머리카락. 뭐든 설명을 하나 할 때마다 오케이, 강단 있게 내뱉곤 악수를 청한다. 꾹 힘껏 잡아주는 손의 악력이 왠지 믿음직하다.


바다인간 그 자체 같은 오마르는 의외로 콜롬비아 제3도시인 칼리 출신으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스물네 살에 타강가에서 처음 다이빙을 배우던 순간, 남은 생을 계속 다이버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게 벌써 15년 전이다. 다이빙 강사로 활동한 경력만도 12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매튜도 물론 오마르의 제자였다.


존은 언프에서 다이빙 마스터 과정을 밟고 있는 오마르의 어시스트다. 갈색의 굵은 곱슬머리를 길게 기른 그는 햇볕에 타서 얼굴이 빨갛게 익어있다. 키도 크고 열정은 앞서지만 정작 행동은 어설픈 면이 있어서 귀여운 친구다.


찰리는 나와 같은 날 다이빙 수업을 시작한 '다이빙 버디'로, 금발에 흰 눈썹을 가진 영국인이다. 쿨한 말투와 다르게, 버디인 나를 챙겨 밥도 먹이고 공부도 시키고 성공적인 다이버의 길로 이끌어준 다정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후안 카를로스, '후안카'는 우리를 다이빙 포인트까지 데려다주는 배의 선장님, 그 밑에서 일하는 조수다. 배가 출항하고 정박할 때, 장비를 셋업하고 해체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준다. 다이빙을 나갔던 5일 내내 그는 늘 함께였다. 연이은 뱃일이 고될 법한데도 시원시원한 몸놀림에서 젊음이 뚝뚝 흘러넘친다. 욕심 한 방울 담기지 않은 것 같은 선하고 바른 눈망울, 후안카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은 오픈워터-어드밴스-레스큐-마스터-강사, 단계별로 이뤄져 있다. 원래 2박 3일짜리 오픈워터만 따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드밴스 다이버가 되어있었다. 낯설었던 레귤레이터, BCD 산소탱크와 같은 다이빙 장비들도 익숙해지고, 웨트수트를 반만 벗어 허리에 묶는 여유도 생겼다.


타강가에서의 일상은 단순하다. 아침 8시까지 언프로 출근. 언프 바로 앞의 '켈리 주스'에서 신선한 생과일 주스를 마시는 게 오전 루틴이다. 시그니쳐 메뉴는 망고+멜론 주스. 인심 좋은 사장님은 과일을 갈아 넘칠 만큼 따라준다. 그것도 모자라 얼른 한 입 마시라고 재촉하고, 한 입 들이키고 생긴 빈 자리를 다시 가득 채워준다. 


언프에 사람들이 다 모이면 장비와 웨트수트를 챙겨 바다로 간다. 하루에 다이빙 두 깡. (다이빙은 '깡'이라는 단위로 세는데, 어딘가 강해 보인다) 오픈워터 때는 보통 기본기 다이빙 한 깡, 펀다이빙 한 깡을 하게 되고, 어드밴스는 딥다이빙, 네비게이션 등 매 깡마다 컨셉이 따로 있다.


두 다이빙 사이에 섬에 내려 샌드위치, 사과, 미니 머핀 같은 소소한 점심도 챙겨 먹는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면 오후 두 시 무렵. 쇼파에 퍼질러져서 다이빙 책이나 교육 영상을 보고 시험 준비를 한다. 날씨 좋은 날엔 책일랑 덮어두고 해변에 나가 수영을 한다.


해가 뉘엿해지면 타강가의 숙소 카사 모링가로 간다. 카사 모링가에는 매층마다 해먹이 여기저기 걸린 커다란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 바로 앞으로는 광활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저녁을 다 먹은 사람들은 슬슬 테라스로 모여든다. 각자 책을 보거나 카드게임을 하거나 하나둘씩 모여서 떠든다. 나는 해먹 하나에 골라 앉아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를 배경 삼아 하모니카 연습을 한다. 페루의 숨겨진 고대도시 마추픽추에 올라가면 하모니카를 불어야지. 코앞이 바다라서,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닷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평화롭고 게으른 2박 3일은 금방 흘러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고, 스쿠버 다이버가 되었다! 그렇지만 타강가를 떠나지 않고 싶어져버렸다. 결국엔 핑계반 흥미반으로 어드밴스까지 하기로 했다. 어드밴스 코스에는 캄캄한 밤바다를 탐험하는 나이트다이빙도 포함돼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이 정수리를 적시고, 종일 바위 밑에 숨었던 커다란 랍스터들도 경계를 풀고 바닷속을 헤집고 다닌다. 다이빙을 끝내고 돌아왔더니 마침 콜롬비아 vs 아르헨티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콜롬비아의 노란 유니폼을 입고 신나게 응원전을 펼치며 밤은 깊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자 기분이 쎄하다. 침대 아래로 발을 딛자 바닥이 축축하다. 물이 샜나? 생각하며 화장실로 갔더니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정전이다. 당연히 와이파이도 안 잡힌다. 이상하다. 평소와 다르게 거리도 이상하리만큼 한산하다. 재난영화 속으로 들어왔나? 아직 꿈 속인가? 반신반의하며 언더프레셔로 향하는데, 항상 일찍 문을 열던 캘리 주스도 굳건히 닫혀있다. 이쯤 되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문을 열고 언프에 들어서자 먼저 온 찰리가 나를 돌아본다. No dive today(오늘 다이빙 없대). 특유의 시크한 톤으로 양 어깨를 들썩하며 말한다. 이게 뭔 소리야. 곧이어 매튜가 곤란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어젯밤 폭우가 내려 바닷물이 엉망이라 오늘 수업은 전부 취소란다. 그래서 온 마을도 정전이라는 거다.


결국 마지막 다이빙하루 미뤄지고, 계획에 없게 숙소도 하루 연장했다. 어렵게 구한 '침대'는 나무들 사이 나란히 걸어놓은 해먹이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남미의 여행 리듬에 익숙해진 나는 예기치 못한 변덕에도 당황해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타강가에서 하루를  얻었네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선물처럼 감사히 받아 들고 엽서를 부치려고 산타마르타로 향했다. 산타마르타는 아름다운 골목을 굽이굽이 품고 있지만 시내라서 사람도 차도 더 많다. 더운 날씨에 지쳐 주스를 마시려는데, 경적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울려와서 어색한 기분이 든다. 이미 고요한 타강가에 익숙해져버렸다. 결국 나는 두 시간 만에 산타마르타를 탈출해 타강가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여전히 타강가는 정전이다. 해가 저물어서 평소라면 노란 가로등이 마을을 밝혀줄 시간. 오늘의 바다는 칠흑같이 캄캄하다. 하지만 빛이 없다고 일찍 잠들 수는 없는 . 어차피 와이파이도 없는 , 모두들 테라스에 모인다. 흘러내리는 은은한 달빛에 의지해서 서로의 흐릿한 얼굴들을 보고 웃으며 노닥거린다. 그래서일지 파도 소리도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렸다.


마지막 밤이네, 생각하며 빛 한 점 없는 타강가의 밤바다를 내다본다. 그 순간,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에 모든 조명이 주르륵 켜진다. 와---! 모두가 한껏 탄성을 내질렀다. 노란 조명들이 비춰 까만 파도에 일렁인다. 전기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아름다운 타강가의 마지막 밤이다.


타강가의 밤   /  사진출처 : Google maps - Casa Moringa




드디어 마지막 다이빙 날. 오늘의 다이빙은 딥다이빙과 물고기 식별하기. 딥다이빙은 보통 내려가던 18m보다 더 깊은 수심으로 내려가게 된다. 질소의 농도가 올라가 움직임이 느려지고, 높은 수압으로 모든 물건의 색과 모양이 밖에서와 다르게 보인다. 당연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낯설어진다. 물고기 식별 다이빙에서는 난생처음 바닷속에서 거북이와 독대했다. 느림의 대명사인 거북이의 움직임이 매끈하고 날랬다. 오돌토돌한 등껍질의 굴곡와 물살을 가르는 헤엄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온 육지. 다시 중력을 온전히 받자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정신없는 장비 정리가 끝나자 모두들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샤워를 마치고 웨트수트를 널어두는 야외 테라스로 나가본다. 오늘도 함께 배에 탔던 후안카는 나무 밑 해먹에 누워 한가로이 나뭇잎을 뜯고 있다. 바다는 이동하고 쉬고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그간 얘기도 많이 했고, 마지막날 인터뷰를 하기로 입을 맞춰둔 상태였다.


"이제 인터뷰 시작할까? 준비됐어?

내가 다가가자 후안카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나도 각 잡고 앉기에는 두 번의 다이빙에 체력을 많이 쓴지라 그 옆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인터뷰래봤자 그동안 나누던 수다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넌 꿈이 있어? 꿈이 뭐야?"

"꿈? 글쎄, 대학부터 졸업해야지. 번듯한 일을 구해서 그동안 부모님이 도와주신 걸 갚아드리고 싶어."

후안카는 아직 대학생. 체육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망설임 없이 전공을 골랐다고 한다.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도 역시 선생님이다. 아이들이야말로 무엇이든지 될 수 있으니까, 그 무한한 가능성의 길을 함께 가주고 싶단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별다른 건 없어. 내 방식대로 행복해지는 거. 그거면 됐어.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 엄마나 가족들을 볼 때 행복하거든."

후안카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진심 어린 눈빛이다.

"삶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해? (Qué es la vida?)"

문득 후안카가 질문을 한다. 질문은 인터뷰어인 내 몫인데. 내가 갸우뚱 바라보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지금 이거야. 지금 이 순간들 모두. 우리가 먹는 거, 이야기하는 거, 생각하는 거. 이 전부가 삶이야. 그 모든 순간을 뜻깊게 보내면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해."

그의 말에 인터뷰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이 특별한 이름표를 얻는다.


"넌 여기서 선장님의 조수로 일하잖아. 그건 네게 어떤 의미야?"

"좋은 알바. 돈을 벌기 위한 거니까. 이 돈으로 대학 등록금도 내고, 나나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도 쓰곤 하지. 여자친구를 위해서도 쓰고. 하하, 물론 이 일을 억지로 한다는 건 아냐. 나는 배에서 일하는 게 좋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아. 그래서 이 알바를 계속하는 거야."

"그럼 돈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도 있어?"

"나는 춤추는 걸 좋아해. 지금은 그냥 파티에 가면 막춤 추는 정도지만.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R&B, 힙합, 쿰비아(cumbia), 마팔레(mapalé)... 장르는 안 가리는데 흥이 나는 노래가 좋아. 쿰비아랑 마팔레는 이쪽 지역 음악인데 어떤 느낌인지 알아? 한 번 들어볼래?"

후안카는 휴대폰을 꺼내 검색하더니 좋아하는 노래를 몇 개 들려준다. 둠칫 둠칫, 하나 같이 댄스 유발 곡이다.

"또 악기도 계속 배우고 싶어. 사실 탐보라(Tambora), 구아체(Guache) 같은 악기는 아버지랑 남동생들이랑 가끔 같이 연주하긴 하는데."

순박하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인데 어딘가 믿음직한 구석이 있다 했더니. 역시 동생을 둘이나 둔 장남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내가 5살 때부터 종종 넷이서 같이 연주하곤 했어. 이 악기를 연주하는 건... 내가 아빠를 기억하는 방식이야. 나도 우리 아빠가 해준 것만큼 내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


 콜롬비아의 전통 타악기 : 탐보라(좌), 구아체(우)  /  photo by Unsplash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건 뭐가 있어?"

"음... 스카이다이빙. 하늘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그리고 프랑스 여행.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는 한 번 가보고 싶었거든."

"프랑스 가면 뭐하고 싶은데?"

"그냥... 하루 종일 걸어 다닐 거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아무것도 안 해도 돼."

후안카가 장난스레 웃자 원래도 선해 보이는 눈매가 더 둥글게 보인다.

"아, 그리고 아빠한테 오케스트라 음악을 선물하고 싶어. 우리 아빠한테는 오케스트라가 아이돌이거든."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을 짓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그리고, 나한테는 우리 아빠가 아이돌이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후안카. 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호텔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해왔다고 한다. 항상 후안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야?

"어떤 분이냐면... 오마르 같은 분이야."

이 한마디로 납득했다. 첫 다이빙에서 산소 조절을 잘못해 당황했던 내가 버둥거리자, 오마르는 보조호흡기를 건네주고 괜찮다며 천천히 숨쉬라며 안심시켰다. 물 속이라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금방 안정을 찾았다. 그게 오마르 사부님이 가진 힘이었다. 후안카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이구나. 깊은 바다, 험한 조류가 몰아칠 때 버팀목이 되어주는 바위 같은 아버지가 있다는 건 이십 대 청년에게 큰 위안일 테다.


"나는.... 아빠한테 뭐든지 드리고 싶어. 내가 가진 거라면 뭐든지. 다 드릴 거야."

그의 어린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괜찮냐고 물을 새도 없이 눈물이 차올라서 후두둑 떨어진다. 늘 웃고만 지내던 후안카의 눈시울이 빨갛다.


후안카에게 유토피아란 국가, 머리색, 피부색에 상관없이 누구나 행복한 곳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만큼만 모두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곳. 그렇게만 된다면 질병, 기아,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한다. 평화가 당연히 따라온다는 것이다.  

"우주선을 한 번 띄우는 데 1,000만 달러가 든다더라? 그 돈을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보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텐데. 우리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데 말이야."


측은지심이 가득한 후안카는 세상의 단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것을 없애겠다고 말한다.

"사람을 잃는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98세셨는데, 아빠도 동생도 그 자리에 없어서 할아버지께서 눈감으시는 모습을 나 혼자 봤어.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

후안카는 또 눈물을 흘린다. 험한 뱃일은 잘도 하면서, 여리고 섬세한 부분이 참 많은 친구다.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많은가 보구나."

"우리 할아버지는 평생 타강가에서 사셨어. 할아버지 때의 타강가는 이제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서 좀 슬퍼. 내가 12살이던 때만 해도 타강가는 지금 같지 않았어. 평화롭고 조용하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파라다이스였는데. 타강가는 바뀌었어. 외부인도 많아졌고, 처음부터 타강가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다 죽었으니까."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게 이어져 내려온 아름다운 마을을 후안카는 붙들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후안카 자신도 타강가에 머무는 것은 방학이나 학교를 쉬는 지금 같은 때뿐이다.


후안카는 이듬해 졸업하면 산타마르타의 초등학교에서 일할 예정이다. 꼬맹이들 축구 가르쳐줘야지, 라면서 웃는 모습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앞으로 10년 후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퇴근하면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후안카는 미래를 그린다.  

"사실, 내 여자친구가 진짜 이쁘거든. 하하. 난 좀 못생기지 않았어?"

사랑꾼 후안카, 영락없이 푹 빠진 눈빛이다. 누군가를 못내 사랑하면 스스로 작아보이는 법. 없는 자리에서도 여자친구 칭찬에 여념이 없는 후안카의 마음이 더 잘생겨 보인다.


오늘이 행복하니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는 후안카. 누군가는 더 큰 야망을 가지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꿈을 이뤘고 스스로 꿈속에서 살고 있다.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타강가에서의 매일매일처럼, 오늘 하루의 행복을 조약돌 줍듯이 주워나가면 되겠구나. 반질반질 자그마한 추억의 조약돌들이 손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 Taganga, Colombia

- 인터뷰 날짜 : 2015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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