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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05. 2022

"지금과 다른 길을 보여주고 싶어.
그런게 예술이니까"

만수(본명 Joel) / 쿠바 아바나 / 미대생


쿠바.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떠오르는 나라.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진 공간. 머나먼 과거가 아직 살아숨쉬는 곳. 그곳에서 만난 파아란 청춘과 함께 예술과 현실에 대해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행운이다.  


쿠바에 도착하면 이전과는 다른 여행공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부킹닷컴, 호텔스닷컴은 잠시 꺼두자. 와이파이 돼요? 라는 질문도 넣어둬야 한다. 쿠바에서 가장 일반적인 숙소는 호텔이 아니다. ‘까사’라고 불리는 소규모 민박이다. 물론 와이파이는 없다. 수도 아바나에서 와이파이가 있는 곳은 대형 호텔 앞, 또는 큰 공원 뿐이다. 그래서 공원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밀린 연락에 답하거나 먼 소식을 전해 듣는 여행객들의 집합소가 된다.


쿠바를 여행했던 한국인이라면 ‘호아끼나’를 모를리 없다. 아바나 중심에 위치한 '까사 호아끼나'는 쿠바 한국 여행자들의 성지로 불린다. 쿠바 어느 지역을 가려고 하더라도 수도 아바나를 거치지 않을 수 없고, 어지간한 마이웨이가 아니고서야 온갖 한국인들이 모여드는 까사 호아끼나를 피해갈 수 없다.


호아끼나의 거실은 작은 한국이다. 거실에 들어서면 몇명의 한국인들이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몸보다  배낭을 메고 들어오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유 오셨어요? 인사를 건네며 반갑게 맞아준다. 직원인가? 싶지만 그 사람도 그냥 손님이다. 사람들은 거실에서 구하기 어려운 쿠바 여행정보를 나누며 금세 친해진다. 그런 시간이 쌓이고 쌓여, 호아끼나에는 한국인들이  마디씩 남겨 만들어진 한국어 정보북이 벌써  권째였다.


숙소에 와이파이가 없으니 일정을 마치면 할 일이라고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는 것뿐이다. 밤새 빈 맥주 캔은 쌓여가고, 이야깃거리는 끊임없이 풀려 나온다. 쿠바 여행의 매력으로 ‘와이파이 없는 밤’을 꼽는 사람도 있었다. 와이파이 없는 게 어떻게 불편이 아니라 매력이냐고?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법이다.




만수를 처음 만난 건 바로 이 호아끼나의 거실이었다. 호아끼나의 거실엔 직원도 손님도 아니면서 지박령처럼 언제 가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애리와 만수는 그 중 하나였다. 모두 애리와 만수라고 불렀지만, 사실 이 둘은 따로 이름이 있는 쿠바 사람이었다. 애리는 한국어를 곧잘 하고, 한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다는 발랄한 여자였고, 만수는 한국어를 하나도 못 하면서도 늘 자리를 지키는 엉뚱한 남자였다.


하루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면 애리는 상큼한 목소리로 “언니!”하고 싱긋 웃으며 맞아준다. 만수는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슥 고개를 든다. 처음 소개할 때, 만수는 대학교에서 예술철학을 공부했다는 내 말에 눈을 반짝였다. 여행 중에 매일 한 장씩 그리던 내가 서툰 그림을 보여주자, 선뜻 그림 수업을 해주겠다고 나선다. 만수는 대학에서 미술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다.


쿠바의 미대생에게 미술을 배운다는 게 신기해서 큰 기대없이 응했는데,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유익했다. 무얼 그리더라도 뼈대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이 한 시간 남짓 이어진 미술수업의 핵심이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남의 예술을 돕는 젊은 예술가. 그가 꿈꾸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만수에게 꿈이 무어냐고 묻자 아직 어린 얼굴에 진지함이 스친다. 만날 때마다 늘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라서, 일순간 깊어지는 눈이 생소하다.


의외로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신앙에 관한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숙명이 있다고 믿어. 그 길을 따라 묵묵하게 끝까지 가는 것이 내 가장 큰 꿈이야.”

젊은 예술가라면 기상천외한 꿈이나 예술적 포부를 말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섣부른 편견이었다. 그래도 한 번 더, 확인 차 물어본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잖아. 그쪽에서는 어떤 꿈을 이루고 싶어?”

“전에는 예술을 좋아했지.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예술이라는 영역에 실망했다고 해야할까. 물론 예술은 예술이고, 위대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예술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갈 출구를 찾고 있어.”


“미술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다그치듯 묻고 말았다. 예술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만큼 도중에 그만두는 것도 어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부딪히는 현실이었다.

“음… 예술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이 분야에선 운이 중요해. 실력보다도. 게다가 다른 곳은 어떨지 몰라도 여기 쿠바에서는, 운이나 실력보다도 돈이 중요하거든.”

그가 예술에 실망한 걸까. 아니면 예술계에 실망한 걸까. 돈이 중요하지, 라고 읊조리는 만수의 표정이 씁쓸해 보인다. 예술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표정에서 역설적으로 예술에 대한 끊을 수 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씁쓸해진 나머지 인터뷰어로서 책임을 잊고 잠시 정적을 지켰다. 다른 꿈을 찾아도 상관없다고 해줘야 할지, 돈이 없으면 어떠냐고 꿈을 계속 쫒으라고 말해야 할지. 아무래도 둘 다 적절한 답은 아니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만수가 문득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린다.

“참, 나 사실 한국에 가본 적 있어.”

진지한 표정으로 고백하듯이 말하는 바람에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뭐, 정말? 언제? 어떻게? 무슨 일로?”

소란스레 호들갑을 떨며 되물은 게 부끄럽게, 만수는 깔깔 웃으며 대답한다.

“2013년에 한국의 소하갤러리라는 곳에 내 작품이 전시된 적이 있어. 그 갤러리에서 일하는 분이 여기 놀러왔다가 내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어. 그래서 그 중 하나를 한국에서 전시하겠다고 가져갔지.”    

“정말? 대단한데. 역시, 재능이 있다니까.”

눈을 크게 뜨고 칭찬하자 만수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하하. 내 그림이 한국을 밟았으니 내가 간 것과 다름없는 것 아니겠어?”




- photo by Unsplash -

만수를 비롯한 까사 호아끼나 지박령들과 저녁을 먹고 난 어느밤. 웬일인지 만수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하다. FAC(Fabrica de Arte Cubano)에 함께 가잔다. 한껏 신이 나서 앞서 걸어가는 모습이 흥겨워 보인다.


FAC는 직역하면 ‘쿠바의 예술 공장’이라는 뜻으로, 아바나의 대표적인 클럽이다. 말이 클럽이지 사실 회화, 음악, 공연이 모두 이뤄지는 복합 예술공간이자,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다. 공장 건물이었던 걸 개조한 것이라서 겉에서 보면 투박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펼쳐진다. 한쪽에서는 공연이 열리고 반대편에서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무엇보다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4-5층 건물 높이로 높게 위로 뻗은 천장까지 젊은 축제의 온도가 가득 차오른다.


이제 보니 FAC는 만수의 본진이었다. 곳곳에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종횡무진하는 만수. 그동안 호아끼나에서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내가 본 얼굴 중에 가장 밝게 웃는다.

“자, 이제 저 위로 올라가 보자. 최근에 새로운 전시가 시작된 것 같아.”

만수가 마치 자신의 전시에 나를 초대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안내 해준다.

“여기 갤러리는 주기적으로 작품을 교체하는 거야?”

“그렇지. 뜻이 맞는 작가들끼리 함께 전시를 준비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고 싶은 전시를 할 수 있어. 저 계단 뒤로도 그림들이 있으니까 잘 살펴봐.”


계단 바로 뒤에는 가로로 긴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흑인, 백인, 인종을 망라하는 30여 명의 중년 여성들이 하나같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빨간 가방을 어깨에 걸고, 빨간 구두를 신고, 빨간 머리장식을 달고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일렬로 서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린 여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해 보인다.

 

반대편으로 가보니 흑백사진 몇 점이 눈에 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찍은 것이다. 성냥개비들이 일렬로 누워있는 작품의 제목은 Unitario(통일된). 성냥 끄트머리의 빨간 머리들이 색감을 잃고 힘없이 누워있다. 쿠바의 젊은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한 걸음 더 알고 싶어졌다.


그때 만수가 다시 와서는 아래층 한쪽 벽에 상영 중인 영화를 보러 가자며 내 소매를 잡아 끈다. 함께 예술을 고민하던 친구들을 만나서인지 물 만난 고기처럼 숨통 트여보인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20대 초반의 젊은 예술가. 돈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겠다던 슬픈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만수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다소 심오한 질문에 그는 ‘평화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것(enseñar el camino de la paz)’이라 답한다. 어떤 생각을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여주는 것.

“내가 생각하는 길에 반대한다? 그건 오케이. 충분히 인정해. 예술은 어차피 정답을 찾기 위한 게 아니니까 괜찮아. 다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길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나는 그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예술을 포기할 거라는 말로 운을 뗀 만수였지만, 결국 그의 꿈 속에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진하게 녹아있다.

“언젠가 예술가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어. 지금의 많은 예술가들은 정신(mente)이 깃들지 않은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회화라는 예술은, 문자로 된 언어에선 느낄 수 없는 남다른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만수는 믿고 있다. 관람객이 '생각'보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이란, 생각하기보다 느껴야 한다고(No pensar y sentir) 생각해.”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고 마음이 맞는 친구, 동료들과 함께 예술가 모임을 꾸리는, 그 안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을 만수가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진다.


“죽기 전에 해야 할 게 있다면…….”

만수는 버킷리스트를 묻는 질문에 잠시동안 망설인다. ‘죽기 전에 반드시’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고민에 빠지게 되나보다.

“카나리아 제도에 가보고 싶어.”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설명을 덧붙여준다. 카나리아 제도는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의 서쪽 해안에 있는 섬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사하라 사막에 가깝지만 공식적으로는 스페인령이다.

“카나리아는 내 마음 속의 고향이야.”

“왜?”

“내 근본이 있는 곳이지. 나의 할아버지가 예전에 그곳에서 사셨대.”

멀리로 시선을 던지는 만수의 눈빛을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증조할아버지가 프랑코랑 친구였대. 프랑코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스페인 내전을 주도하고 36년 간 스페인을 독재했던 바로 그 프란치스코 프랑코? 프랑코가 처음 스페인 내전의 기치를 든 곳이 카나리아 제도니만큼 그럴 듯도 했지만, 과연 둘은 정말 친구였을까? 같은 90년생이니 김연아와 친구라고 말하던 한 선배가 떠올랐지만 초롱초롱한 만수의 눈빛에 굳이 되묻지 않기로 한다.


“나는 내가 스페인 사람인 것 같아.” 만수가 짐짓 선언하듯이 말한다.

“증조할아버지가 스페인 사람이라서?”

“음… 글쎄.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왜냐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지 않거든. 쿠바에서 태어났으니 스스로 쿠바 사람이라고 생각하셔.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스페인에 강한 애착이 느껴져.”

만수는 자기도 왜인지 모르겠다며 골똘히 생각에 빠진다. 남미의 각국에는 여러 이유로 스페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세대마다 가족마다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간다. 우리가 떠나보냈던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3세, 4세는 어디를 고향으로 느낄지 궁금해졌다. 내 또래의 그들도 만수만큼이나 간절하게 한국을 다시 찾고 싶을까.


쿠바는 닫혀있었다. 쿠바가 문을 닫았는지, 다른 국가들이 쿠바와 연결된 문을 잠가버렸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됐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국가 사이의 첨예했던 대립 속에서, 쿠바는 다른 서방 국가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몇 십 년 간 얼어붙은 걸쇠 때문에, 쿠바는 미지의 세계로 남았다. 우리가 쿠바를 궁금해 하는 만큼, 쿠바도 다른 세계가 궁금하다.


만수에게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어디인지 물었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야. 여행을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어쩌면 당연한 말에 속으로 흠칫 놀랐다. 같은 20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어 같은 표정으로 같은 농담에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우리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다는 사실.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

“가보고 싶은 곳들이 있지. 멕시코나 미국처럼 가까운 나라라도. 물론 유럽, 사우디, 영국 같은 곳들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멋대로 누비며 여행하던 게 괜히 미안해져, 희망적인 방향으로 화제를 돌린다.

“하지만 쿠바도 이제 변하고 있잖아?”

쿠바는 최근 10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빠르게 통합되는 세계의 흐름에 굳건히 버텨왔었지만 조금씩 개방의 가능성을 열었다. 2014년 12월부터는 미국과의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고 이후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치며 외국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쿠바의 젊은이들에게도 더 자유로운 왕래의 길이 열린 것 아닐까.


“쿠바는 변하고 있지. 하지만 그 변화가 우리들의 삶에 와 닿지는 않아. 내 친구들이나 내 삶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기대한 대답을 듣지 못해 나는 시무룩해졌다. 만수는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쿠바의 많은 변화들은 정부나 기업을 위한 변화들일 뿐이야.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지금까지 살아온대로 살아가고 있지.”

여전히 쿠바 사람들은 여권을 발급받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여기에는 정치경제적인 문제도 섞여있다. 법적으로 출국을 허가받는다고 해도, 높은 여권 발급비나, 쿠바 물가에 비해 턱없이 비싼 항공료를 감당할 사람은 많지 않다. 변화의 빛을 보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쿠바가 맞이한 새로운 물결은 사람들의 피부에 닿지 못한 채 상공을 떠돌고 있다. ‘기회의 땅’ 쿠바로 몰려든다는 천문학적인 부는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쿠바의 치명적인 매력 중 하나는 과거에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다. 1940년대 올드카가 거리를 달리고, 이마에 주름을 머금은 노인이 시가를 물고 낡은 탁상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창문 틈으로 보이는 가정집 안에는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세월이 묻은 흔들의자가 놓여있다. 흔들의자에 편안한 자세로 기댄 백발의 할머니는 방 안을 채우는 따뜻한 온도에 맞춰 끄덕거린다.


모두 변화할 때 멈춰있던 세계라서 매력적인 쿠바. 앞으로 다시 10년이 지나면 지금 남아있는 모습들도 많이 사라질지 모른다. 이 모습들이 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사실 이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에 나는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보면서 밥을 먹고 있겠지.”

만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나는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여유롭게 흔들리고 있는 만수를 상상한다.

“더 자세히 말해줘 봐. 그때 넌 어디에 있을까?”

“예쁜 딸 하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크진 않아도 좋은 집에 살고 있을 거야. 10년 후쯤엔 갤러리를 하나 열고 좋은 아내와 많—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

만수는 ‘많은’이라는 단어를 숨이 차도록 길게 늘여 발음한다. 사람 욕심도 참 많은 친구다. 하지만 만수라면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을 게 분명하다.

“갤러리를 연다는 건, 계속 미술을 하겠다는 거야?”

“글쎄. 낡은 그림들을 사고팔고, 가끔은 직접 그림도 그리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이어서 40년 후를 묻자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짓는다.

“40년이 지나면 나, 그때쯤엔 무지 유명할 거야.”

“왜?”

“그냥. 왠지는 아직 몰라. 그치만 어마어마하게 굉장히 유명해질 거야.”

그렇게 뜬금없이 원대한 포부를 펼치고, 만수는 재밌다는 듯 아이 같은 웃음을 짓고는 계속 말한다.

“그렇게 되면, 올드 아바나에 살아보고 싶어. 지금은 그냥 아파트에 살지만, 돈이 많아지면 저택(Casa colonial)에서 살아보고 싶다. 거긴 진짜 비싸거든. 아마 앞으로도 그곳에 살기는 어렵겠지만.”


올드 아바나, 아바나의 구도심은 깔끔하게 잘 닦여 있고 번쩍거리는 오래된 건축물들로 가득한 관광명소다. 하지만 역시 서민과 중산층들에겐 상상에서나 꿈꿔볼 수 있는 멀고 먼 곳이다. 쿠바 역시 빈부격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방의 물꼬가 트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유입된 이래로,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노동자와 관광산업 종사자의 빈부 차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자들은 직업에 상관없이 봉급을 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의 봉급은 평균 20달러 내외라고 하니 생필품을 구하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다. 때때로 특정 공산품 수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마트를 몇 군데나 들러도 생수를 찾을 수 없던 적도 있었다.


내게도 그걸 실감하게 해주는 믿기지 않는 일이 한 번 있었다. 아바나 최대 관광거리, 오비스포 거리에서였다. 한 가계에서 맘에 드는 노트를 발견하고 얼마인지 묻자 20쿡(약 20달러, 24000원)을 불렀다. 비싸다고 하자, 공산품을 가져오면 깎아 주겠단다. 샴푸, 비누, 수건, 뭐든 상관없다며. 이 황당한 사건의 정확한 전말은 알 수 없지만, 화폐보다 급한 게 공산품이었던 게 아닐까.


쿠바에서는 의사보다 택시기사가 훨씬 부자라는 말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합의되지 않은 불균등은 사회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네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이야?”

“유토피아는 없어.”

대답은 심플했다. 만수는 무표정인지 우울한 표정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대답은 반칙이다. 세상에 유토피아기 있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물어본 거니까.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그 세계는 어떤 모습이냐구.”

“음……그런 거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집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일이 있고, 가족 없는 아이들이 없고, 종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곳.”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사실 거창하지도 않은 조건인데, 우린 그런 세계를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다. 순간 무력감이 스쳐 지나갔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굳이 설명해보라고 재촉한 대가는 이런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곳. 빈부의 차이가 좀 있더라도 말이야. 시리아나 팔레스타인 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죽지 않는 그런 세상. 돈이 있고 차가 있으면 뭐해, 내 아이가 옆에서 죽어 가는데.”

이 세상에서 단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만수는 전쟁을 없애기로 택한다.

“전쟁은 영토, 자원, 권력의 문제야.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거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도 사실 석유와 돈이 문제잖아.”

“그럼, 전쟁을 끝내면 우리는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전쟁을 끝낸다고 평화가 완성되진 않을 거야. 전쟁을 끝내는 건, 평화의 길로 들어서는 첫 걸음일 뿐이지.”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만수가 성큼 어른스러워 보였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었던 눈빛이, 속 깊은 눈빛으로 달라져 보인다.


처음 내가 까사 호아끼나에 도착했던 날, 3층에서 열쇠를 던져준 것은 만수였다. 호아끼나를 떠나던 그 날, 그날도 만수는 3층 테라스에 몸을 기대고 멀어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그와 눈을 맞추며 나는 확신했다. 만수는 예술을 그만두지 않을 거라고. 어쩌면 그저 내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분명 예술로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꿈꾸는 숙명의 길이 되기를.




- Havana, Cuba

- 인터뷰 날짜 : 2015년 11월 4일

- 참고 : 쿠바예술공장(FAC) 소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oNugvVoW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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