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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운 Oct 03. 2022

“꿈? 투잡 쓰리잡 안 뛰고도
먹고살 수만 있다면…”

후안(Juan) /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 초등학교 교사


"Nos Faltan 43, Nos Faltan 43 (우리에겐 아직 43이 남았다)"

 크리스토발의 작은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함성. 모두의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함께 서려있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스페인어로 까사(casa)는 집. 직역하면 ‘집의 크리스토발 성인’이라는 이름의 멕시코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이름답게 야트막한 집들이 붉은 게들처럼 등을 붙이고 옹기종기 웅크려 있다. 지붕 색은 바래고 길은 낡았다. 낮은 건물과 옅은 색감은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다. 색 바랜 풍경은 가난의 흔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감성에 빠지게 만든다. 그 때문인지 산 크리토발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자유의 영혼들로 채워져 ‘히피들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가 산 크리스토발을 찾은 이유는 달랐다. 죽을 듯이 아파서. 남미를 떠도는 장기 여행자라면 한 번은 겪는다는 관문. 몸이 펄펄 끓고, 뭐든 먹으면 토해냈다. 물갈이인지 감기몸살인지 따질 여력도 없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산 크리스토발에 한인민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기만 하면 죽진 않겠지, 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민박이 있는 작은 골목에 들어서자 처연한 빛이 가득했다. 여행 중엔 한 번씩 그런 곳을 만나게 된다. 처마의 모양이, 벽의 색감이, 거리의 휘어짐이 이유 없이 슬프게 하는 곳.


민박에 다 죽어가는 모양새로 들어서자, 사장님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달려왔다. 증상을 말하자 곧바로 뜨끈한 버섯죽을 손수 끓여주셨다. 사장님과 한국인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은 밤.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산 크리스토발의 하늘에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다들 숟가락을 내던지고 옥상으로 뛰어올라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봤다. 빨강, 초록, 노랑…… 다채로운 색들이 작은 마을의 넓지 않은 하늘을 채운다. 하나의 점이었다가, 설렘을 주는 불꽃이었다가, 하늘과 꼭 같은 색으로 물들어 번지는 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나는 씻은 듯이 회복했다. 지금이라도 사장님을 만난다면 버섯죽 레시피를 물어봐야겠다. 에너지가 생기자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달째 민박에서 머물고 있던 윤재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묻는다. 언니, 여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 대답을 듣고 마냥 마을을 걷기로 했다.


오후 세시 무렵. 민박 근처에 보아뒀던 학교로 향한다. 두시에 수업이 끝난 오전반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세시부터 또 수업이 시작된다. 아직 수업 시작 전인지 해맑은 표정의 학생들은 마당에서 와글거린다. 200명 남짓 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산크리스토발의 한 작은 초등학교다.


제일 먼저 마주친 젊은 교사에게 말을 건다. 길게 설명하기 전에 교무실로 가라며 손짓해준다. 교무실에서는 인상 좋은 중년 남자가 나를 맞는다. 일단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주고는 찬찬히 내 얘기를 듣는다. 간단한 나의 소개와 이곳의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말을 건넨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교장선생님과 이야기해보라고 말해준다. 교장 선생님은 네 시 반에 돌아온단다. 나는 예감이 좋아서 숙소로 돌아가 인터뷰 준비를 마치고, 네 시 반이 되어 다시 학교로 간다. 교장실에 앉아서 기다리자 Buenas tardes(안녕하세요), 힘찬 인사가 들리고 풍채 좋은 교장선생님이 들어와 악수를 건넨다.


패기 있게 뛰어든 교장선생님과의 독대. 교장선생님이 웃는상에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하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하고, 무작정 인터뷰이가 되어줄 선생님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소문난 부자에게 찾아가서 무작정 만 냥을 빌려달라고 외쳤던 허생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황당한 부탁이었을 법도 한데, 교장선생님은 곧 교사회의가 있으니 가서 물어보겠다고 말해준다.


혼자 교장실에 남아 기다리는데 심장이 마구 쿵쾅거렸다. 회의에서 돌아온 교장선생님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곧 후안이라는 선생님이 여기로 올 거라며 행운을 빌어준다. 곧이어 선하고 듬직한 인상의 후안이 교무실로 들어온다. 나는 그 순간까지도 9월 25일에, 멕시코에서, 교사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세시, 다시 학교를 찾았다. 후안은 언제나처럼 수업을 시작한다. 나는 교실의 맨 왼쪽 줄, 맨 뒷자리에 앉아서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 후안은 간단히 나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바로 수업에 들어간다. 교실에 모인 20여 명의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들여다보고 이내 수업으로 신경을 집중한다.


“자, 지난 시간에 과제를 내주었죠?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살펴볼 테니까  모두 책을 꺼내서 보여주세요.”


후안은 꼼꼼히 책을 들여다본다. 고쳐야 할 부분을 알려주거나, 잘한 내용을 칭찬해준다. 숙제를 해오지 못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도 나무라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교실을 둘러보자, 한 교실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나이가 제각각이다. 나중에 물어보자 후안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가르치는 반에는 아홉 살부터 열세 살까지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해. 이 지역 가정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불안정하기 때문이야. 누구나 매년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란 거지. 돈이 없으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든. 저 아이들의 부모 중에선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 그런 아이들은 학교 교육이 정말 중요해. 그래서 아이들이 계속 학교에 올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교통비를 지원해준다던가 하는 방법들로 말이야.”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인데, 한 여학생이 자꾸 내게 손짓한다.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는 듯 한 제스처를 취한다. 곤란한 표정으로 후안을 바라보자, 후안이 가서 다정하게 달래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는 다른 책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용 색칠놀이 책이다.

“그 아이는 장애가 있는 학생이야. 나이는 13살인데, 지능은 아직 5살이지. 수업 내용을 따라오기는 어려워해서 다른 활동을 하도록 해주고 있어.”

하지만 조별 활동을 시작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학생을 조에 끼워  함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애가 있더라도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그래서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한 교실에 두는 거고. 그렇게 하는 게 그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믿어.”


본격적인 인터뷰는 수업을 마치고, 후안이 아이들을 하나하나 챙겨서 집에 보내고 나서야 시작됐다. 아이들이 돌아간 교실, 알록달록한 원형 책상 위에서였다.


“네 꿈은 뭐야?”

“선생님으로서 꿈은, 교육의 발전을 통해서 멕시코를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 개인적으로는, 평온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간단명료한 대답이다. 교사로서의 꿈을 밝히는 모습에서 직업에 대한 강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교사로서의 삶은 어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내게 큰 기쁨을 줘.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것, 그런 사실들이 참 좋아.”

“학교에서는 수업을 몇 시간이나 하는 거야?”

“사실 나는 총 세 군데의 학교에서 일하고 있어. 여기 초등학교에서는 오후반을 맡고 있고. 다른 두 곳에서는 사범대학교 학생들을 교육하지.”

“세 군데나? 그럼 너무 힘들지 않아?”

“흠, 나만 그런 건 아냐. 정규 교사 교육과정을 마치고 교육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 중에 50퍼센트 이상은 2개 이상의 학교에서 일하고 있어. 하나의 학교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는 급여가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거든.”


후안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아침 일찍 출근해 사범대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시 이 초등학교로 출근해서 아이들과 수업을 한다. 퇴근할 때가 되면 이미 늦은 밤이다. 쳇바퀴 같은 ‘쓰리잡’ 중에 하나만 멈춰도 벌이가 넉넉지 않은 상황이라 별다른 도리가 없다.


“버킷리스트라면 세계여행! 영국도, 아시아도 가보고 싶어. 또,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싶거든. 마지막으론, 책을 쓰고 싶어. 고등 교육학을 깊이 연구해서, 그 결과를 책으로 내는 게 꿈이야.”

“그럼 그것들을 왜 지금은 안 하고 있는 거야?”

나의 순진하거나 바보 같은 질문에 후안은 한마디로 간명하게 대답한다.

“돈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은 돈이 필요하거든.”


후안도 3년 전까지는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내겐 아이가 있고, 그건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의미야. 이제 나만을 위해서 살 수 없다는 뜻이고. 내가 세 곳의 직장 중에서 한 곳에서만 일한다면, 나머지 시간에는 내 공부를 할 수 있겠지. 내겐 좋은 일이지만, 내 아이에게는…….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내 꿈을 이룰 거야. 꿈을 꾸고 이루는 데 늦은 나이는 없으니까.”


책임감 가득한 아빠였던 후안은, 그 순간 다시 꿈꾸는 청년 후안이 되어 눈을 반짝인다.

“꿈을 꾸는 순간만큼은, 누구든지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믿어.”


“10년 후에 넌 뭘 하고 있을까?”

“10년 후에 나는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을 거야. 또, 최소한 두 나라 이상 새로운 곳을 방문해 봤겠지.”

꿈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미래를 그리며, 후안의 얼굴엔 설렘이 차오른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을 거야. 다양한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주고, 듬뿍한 관심과 사랑을 줄 거야.”

후안은 학생들만큼이나 자식들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딸바보’다.


“40년 후는 어떨 것 같아?”

“40년 후엔 집에서 쉬고 있지 않을까? 편안히 쉬면서. 아-주 평온하게.”

이 말을 하면서 천진한 웃음을 짓는 후안. 집에서 편히 쉬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게 아닐까 싶어 나도 함께 웃는다.

“아냐, 생각해보니까…….”

“생각해보니까?”

“살아있기나 했으면 좋겠네. 하하.”

농담을 던지고 깔깔 웃던 후안은 다시 구체적으로 미래를 그려본다.

“나는 그때가 되어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부딪쳐 보고 싶어. 뭔가 시도해보고 맛보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싶어. 기술도 배워보고 싶고.”


이렇게나 꿈이 많은 후안인데. 육아, 가족, 먹고 살기라는 현실의 장벽이 아무리 높아도 그가 꿈꾸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자연 깊은 곳 어딘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고 싶어. 굴뚝이 멋들어지게 솟은 그런 집 있잖아. 따뜻한 집에서 책도 원 없이 읽고. 책을 읽는 건 항상 흥미롭거든. 그런 공간에서 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한참 소원을 쏟아놓던 후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지막 말을 꺼낸다. 마지막 소원으로는 제일 간절한 것이 등장하는 법.

“그때가 되면 하루에 딱 5시간만 일하면 좋겠어. 나머지는 내 시간으로 쓰고 싶어.”

후안이 교사로서의 일을 시작한 것은 17년 전. 오전반 수업까지 하게 되면서 ‘투잡’, ‘쓰리잡’ 교사가 된 것도 어느새 9년째가 되었다.

“언제 교사가 되기로 처음 결심한 거야?”

“사실, 결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 순간 아이들과 함께였어.”

“그럼 왜 계속 이 길을 걷고 있는 거야? 항상 일도 많고, 바쁘고, 처우도 그렇게 좋지 않은데도 말이야.”

“글쎄, 배우가 되고 싶던 적도 있었어. 그것도 하나의 꿈이었지. 하지만 배우는 쉽지 않은 길이잖아. 꿈을 잃고 방황하다가,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어. 그러다가 교사가 되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교사 일이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계속할 수밖에 없었지. 아이들이 좋아서.”


인터뷰를 마치고 후안과 인사를 하고 나온다. 와글거리는 교정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대문으로 향한다. 그때 갑자기 여섯 살 배기 꼬마 소녀가 내게 쪼르르 달려온다.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자 고사리 손을 내민다. 손바닥 위에는 사탕과 쪽지가 놓여있다. Para mi?(나 주는 거야?) 하고 묻자 올려다보며 끄덕끄덕. 찡해지는 마음에 팔을 감아 꾹 안아준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이렇게도 쉽다. 멀리서 후안이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한다. 후안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난다.


그렇게 이 이야기가 끝날 줄 알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에는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미지 출처 : Google map / San Cristobal de Las Casas


인터뷰 다음날인 9월 26일. 다시 관광객 모드로 돌아온 나는 산크리스토발의 골목들을 마냥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거리가 슬픈 기운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씁쓸해졌다. 그도 그럴것이, 마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거리마다 뜻을 알 수 없는 벽보로 가득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부터 이쪽으로 행진해 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Uno, Dos, Tres, cuatro, cinco, seis, siete……”

수백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1부터 수를 하나씩 세 나가고 있었다. 숫자들을 소리 높여 외치는 까닭은 무엇일까. 언제까지 숫자를 외치려는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힘에 이끌려 계속 같이 걸었다.

“…… Cuareta, Cuarenta y uno, Cuarenta y dos, Cuarenta y tres.”

 40을 넘어서도 계속 이어지던 카운트는 43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멈추었다. 그제야 사람들 손에 들린 종이, 거기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Nos faltan 43”

우리에게 43이 부족하다, 우리는 43을 잃었다, 무엇인가 온전해지기까지 아직 43이 남아있다. 그런 의미를 담은 짧은 한 문장. 이들이 찾는 43이란 무엇일까. 오래 생각하기도 전에, 누가 설명해주지도 않았는데 문득 깨달았다. 아, 사람이구나. 43이란 마흔셋의 생명이구나. 어쩐지 그냥 알 수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잃어버린 43명의 얼굴이 남았다.”

구호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도 Nos faltan 43이라고 적은 종이를 내걸고 눈빛으로 응원했다. 행진의 중앙부에는 마흔세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슬프거나 화나 있었다.


그 행진은 멕시코 전역에서 함께하는 아요치나빠(Ayochinapa) 사건 추모 집회였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인 2014년 9월 26일, 아요치나빠에서는 시골 교사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의 진압 과정에서 학생 6명이 사망했고, 학생 43명이 실종됐다. 알려진 바로 경찰이 붙잡은 43명의 학생들을 갱단의 손에 넘겼고, 갱단은 학생들을 쓰레기 매립장에서 총살하고 시신을 밤새 불태웠다.


이후 멕시코 전역에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러나 명쾌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멕시코 정부도, 아요치나빠 지역 시장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행렬을 걷는 이들의 얼굴에 담긴 슬픔과 분노와 답답함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행진을 따라 걸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과 함께 걷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43명의 얼굴로 가면을 만들어 쓴 사람들이 함께 행진을 했다. 그 뒤로 멕시코 국기가 커다랗게 펄럭였다. 초록, 하양, 빨강이었던 원색의 멕시코 국기가 이날엔 흑백으로 변해있었다.


아요치나빠의 학생시위가 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에 후안과의 인터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후안은 하나의 직장만으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교사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숨 쉴 틈 없이 ‘투잡’, ‘쓰리잡’을 뛰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고작 그것을 요구한 죄로 43명의 학생들은 처참하게 희생되었던 것이다.


행진을 마치고, 터벅터벅 돌아오는 거리에는 43이라고 새긴 붉은색 그래피티만 남아있다. 아득한 과거로 여겼던 우리의 40여 년 전을 떠올린다. 우리에겐 과거이지만, 이 세계의 어디선가는 아직도 생생한 현재다.


“Justicia, justicia. La lucha sigue, sigue.”

정의, 정의. 투쟁은 계속되고 또 계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직 되찾지 못한 43명의 학생들이 남았으니까.



-  San Cristobal de las casas, Mexico

- 인터뷰 날짜 : 2015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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